양덕환 (1895 ~ 1950?)

梁德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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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목구 신부. 세례명은 안드레아. 1895년 10월 30일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에서 태어나 예수성심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1924년 6월 14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풍 수원(豊水院) 본당 보 좌(1924. 6~1927. 4)와 약현(藥峴) 본당 보좌 (1927. 4~1930. 11)를 거쳐 횡성(橫城)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 였다. 양덕환 신부는 이곳에서 공소 건물을 기와 지붕의 목조 성당으로 증축 하였다. 이어 1933년 5월 해주(海州) 본당의 6대 주임 으로 부임하여 이듬해 2월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으며, 1936년에는 대대적인 성당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한 편 1934년 1월 가톨릭 소년단을 결성하고 청소년 사목 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며 본당 주보인 <편신>(片信)을 발간하여 주일 성서 해설을 게재하는 등 신자 재교육에 힘썼다. 1936년 5월 안악(安岳) 본당 초대 주임으로 전 임된 양덕환 신부는 신장리에 3,000여 평의 부지를 매 입하여 성당을 건립한 데 이어 벽돌조 사제관도 신축하 였다. 안악 지방은 전통적으로 프로테스탄트 교세가 강 한 곳이었으나, 그의 적극적인 선교로 교세가 점차 증가 하였다. 양덕환 신부는 또 예비 신자 교리반을 활성화하 였고 미신자 가정까지 방문하였으며, 매주일 신자들에게 《성교 요리 문답》(聖敎要理問答)을 숙제로 내주어 암기 하도록 하는 등 신자 재교육에도 힘썼다. 그 후 1946년 5월 재령(載寧) 본당으로 전임되었는데 당시는 공산 치 하로 교회 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이듬해 본당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철수했고, 양덕환 신부 혼자 서 본당 사목과 성심의원(聖心醫院)을 담당하였다. 그러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1950년 10월 5일 저녁 사제관 근처에서 납치되어 행방 불명되었다.(→ 침묵의 교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교회와 역사》 105호(1984. 3. 25), 한 국교회사연구소, pp. 11~12/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황해도 천주교 회사》,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84.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