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본당
梁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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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부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양산군 양산읍 북부동 365 소재. 1967년 12월 27일 동래(東萊)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상북면 전 지역과 하북면, 동면 일부 지역. 〔교 세〕 1967년 489명, 1972년 284명, 1978년 520명, 1982 년 729명, 1989년 1,432명, 1993년 2,104명, 1999년 2,804명. 〔역대 신부〕 초대 박유식(朴裕植) 안드레아 (1967. 12~1971. 10), 2대 왕영수(王永秀) 프란치스코 (1971. 10~1972. 11), 3대 유창호(劉昌鎬) 토마스(1972. 11~1973. 1), 4대 이홍기(李洪基) 요한(1973. 7~11), 5대 김만수(金萬洙) 요한 보스코(1973. 11~1974. 6), 6대 에스 피노자(J.Espinoza, 노) 요셉(1974. 6~1980. 2), 7대 이옥군 (李玉君) 타데오(1980. 2~1981. 2), 8대 박태식(朴泰植) 프란치스코(1981. 2~1982. 2), 9대 이병만(李炳萬) 요셉 (1982. 2~1983. 2), 10대 박제원(朴帝源) 알베르토(1983. 2~1986. 2), 11대 이기정(李基正) 안드레아(1986. 2~1989.1), 12대 이옥군(1989. 1~1990. 2), 13대 한영일(韓永日 니콜라오(1990. 2~1992. 2), , 14대 김옥수(金玉洙) 도미니 코(1992. 2~1995. 2) 15대 장효강(張孝强) 안토니오 (1995. 2~1999. 1), 16대 김종엽(金鐘燁) 바르나바(1999. 1~현재). 〔전사와 공소 시대〕이미 기해박해 · 병오박해 때부터 소수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지금의 양산 본당 관할 구 역에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며, 병인박해 때에 이 르러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많은 신자들이 원효산 동쪽, 범실(현 양산읍 호계리) 등 깊은 산간 벽지로 이주하여 신 앙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 결과 1884년에는 병인박해 때 대구에서 피난 온 남 가롤로 일가와 김 요한, 박 마리 아 등 60여 명의 신자들이 범실 공소를 설립하였다. 이 어 1896년 11월에는 대석(大石, 현 양산읍 상북면) 공소 가 설립되었고, 1923년에는 남부동 변한준(프란치스코) 의 집에서 양산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1927년 5월 언양 (彥陽) 본당이 설립됨으로써 부산진(釜山鎮, 현 凡-) 본 당 관할이었던 이 공소는 신설 본당 관할이 되었다. 이후 신자수가 증가하자 대구 대목구는 양산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계획하고, 1936년 양산읍 중부동에 성당 부지(902평)를 마련하였으나 일제의 종교 탄압으로 성당은 설립하지 못하였다. 광복 후 1947년 강태원(빈 천시오)은 양산읍 북부동 소재의 건물을 매입하고 다시 공소의 본당 승격을 시도하였으며, 1957년에는 공소를 양산읍 북부리로 이전함에 따라 공소가 삼랑진(三浪津) 본당 관할이 되었다. 1950년대 말, 부산 대목구가 '1군 1교회 정책' 을 추진하게 되자, 1958년 당시 양산 공소 를 관할하던 동래 본당 3대 주임 김준필(金俊弼, 아우구 스티노) 신부는 현 본당 소재지의 가옥을 매입하는 등 본당 설립을 추진하였다. 1963년부터는 '인보 성체 수 도회' 가 파견되어 공소 사목을 도왔는데, 이에 공소가 활성화되고 신자수가 증가하자 1967년 12월 양산 공소 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본당 설립과 발전〕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유식 신부는 1968년 4월 공사를 시작하여 그 해 11월 2층 성당 (117평)을 완공하였으며, 1969년 11월에는 본당 관할이 었던 물금(勿禁)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3대 주임 으로 부임한 유창호 신부는 1973년 2월 성당 건물 내에 어린이 집을 설립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신병 치료차 전임하였다. 이에 그 해 4월 이갑수(李甲秀, 가브리엘) 주교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수녀 3명을 파견하여 신부 공석인 본당과 공소 및 어린이 집 을 돌보게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6월 6대 주임으로 과 달루페 외방선교회 소속 에스피노자 신부가 부임하자, 1975년 9월에 수녀원은 폐쇄되었다. 한편 에스피노자 신부는 1974년 6월 부산교구 성년 대회를 양산에서 개 최하는 등 주임 신부의 잦은 교체로 침체되었던 본당의 발전을 이루려고 노력하였으나, 신자들과의 언어 소통 문제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1980년부터 양산 지역에 공단이 조성되면서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하자, 7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옥군 신부는 가정 방문 등을 통해 냉담자를 회두시키고, 사목 협의회 · 성모회 · 레지오 마리애 등 다양한 단체들을 조 직하였다. 그 결과 본당은 점차 활성화되었고, 8대 주임 으로 부임한 박태식 신부는 1981년 2월 본당 사제관 및 교리실 공사를 시작하여 9월에 2층 건물(53평)을 완공하 였다. 이어 10대 주임 박제원 신부는 1984년 1월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의 분원을 마련하였다. 11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기정 신부는 신자 재교육을 위하여 1988년 6 월 교육관 공사를 시작하여 11월에 2층 건물(224평)을, 교육관 동쪽에는 성모 동굴을 완공하였다. 1992년 7월 에는 역대 신부와 수녀들을 초청하여 본당 설립 25주년 행사를 마련하였다. 15대 주임으로 부임한 장효강 신부 는 1996년 9월 성당 신축을 계획한 뒤, 이듬해 4월 사 제관 · 수녀원의 공사를, 9월에는 교육관 공사를 시작하 였다. 1998년 8월에는 사제관 · 수녀원 건물(132평)과 교육관(73평)을 완공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이어 새 성당 신축 공사를 시도하였으나 재정상의 어려움이 많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6월부터 양산 신도시가 형성됨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에 신자수가 급격히 증가할 것에 대비하여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전망이다. (→ 부산교구 ; 동래 본당)
※ 참고문헌 安達源, 《天主教梁山地域史》, 嶺南産業研究院, 1986/ 天主教釜山教區 편, 《釜山教區三十年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0. 〔金善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