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 본당
良才洞本堂
글자 크기
9권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951-4 소재. 1965년 7월 20일 잠실리 준본당(잠원동 본당의 전 신)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승격 당시 본 당 이름은 '말죽거리 본당 이었으나, 이듬해 '양재동 본당' 으로 바꾸었다. 주보는 성모 성탄. 관할 구역은 서초 구 우면동 전 지역과 양재동, 서초2동, 강남구 도곡동, 역삼동 일부 지역. 〔교 세〕 1975년 795명, 1980년 2,098명, 1987년 5,760명, 1992년 5,589명, 1999년 7,080명. 〔역대 신부〕 초대 이용선(李容善) 베드로 (1965. 7~1967. 1), 2대 이삼복(李三馥) 요한(1967. 1~1969. 2), 3대 이창숙(李昌淑) 그레고리오(1969. 2~1971. 5), 4 대 김택구(金澤龜) 루도비코(1971. 5~1973. 5), 5대 박병 윤(朴炳閏) 토마스(1973. 5~1974. 5), 6대 박용일(朴勇一) 타데오(1974. 5~1976. 5), 7대 이용선(1976. 5~1977. 11), 8 대 이문근(李文根) 요한(1978. 1~1980. 8), 9대 백은기(白 殷基) 라파엘(1980. 8~1983. 4), 10대 송광섭(宋光燮) 베 드로(1983. 4~ 1985. 8), 11대 이기명(李起明) 프란치스코 (1985. 8~1986. 2), 12대 황흥복(黃興福) 요셉(1986. 2~ 1991. 8), 13대 고명철(高明哲) 아우구스티노(1991. 8~ 1997.9), 14대 오지영(吳智英) 요한(1997. 9~2001.2), 15 대 현동준(玄同準) 세례자 요한(2001.3~현재). 지금의 양재동 지역에는 1912년 약현(현 중림동) 본당 의 두세(C. Doucet, 丁加彌) 신부에 의해 양재리 23번지 에 게리〔巨餘里〕공소가 설립되었는데, 당시 신자수는 27명이었다. 그렇지만 해마다 신자수가 늘어나 1924년 에는 74명에 달하였는데, 이 공소 신자들의 가장 큰 불편은 한강 건너에 있는 약현 성당에 가서 미사 참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947년 7월 15일 약현 본당의 보좌였던 이우철(李宇哲, 시몬) 신부가 잠실리(현 잠원 동)에 성심원(聖心園)이라는 보육원을 개원하면서 잠실 리 준본당이 설정되자, 게리 공소 신자들은 이 본당으로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63년 서울시의 행정 구역 확장에 따라 양재 리가 서울시에 편입되자, 공소 신자들은 본당 승격을 서두르게 되었다. 이에 이우철 신부가 그 해 양재동 27-2 번지와 21-3번지 그리고 서초동 산 17-1번지에 총 600 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성당 신축을 계획하였으나, 매입 한 부지에 성당을 건립하기가 어렵게 되자 기존의 부지 를 매도한 후 양재동 23번지에 새 성당 부지 3,970평을 매입하였다. 그 결과 1965년 7월 20일 본당으로 승격되 었으며, 초대 주임 이용선 신부는 같은 해 8월 1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9월 8일 성당(116평)을 완공하였 다. 그러나 1968년 서울시의 도로 확장 계획에 따라 양재동 성당이 철거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에 3대 주임이 창숙 신부는 1971년 3월 양재동 6-9번지(현 성당 소재지) 에 새 성당 부지 420평을 매입하였다. 그리고 1973년 3 월 성당 공사에 착수하여 1977년 10월 23일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성당 완공과 함께 그 동안 주임 신부의 잦은 교체로 실의에 빠져 있던 공동체 역시 활기를 되찾게 되 었다. 이에 앞서 1973년 11월 22일에는 청담동(清潭 洞) 본당을 분리하였다. 한편 1970년대 말 양재동 · 역삼동 · 서초동 일대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신자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처럼 1970년대가 외형적인 성장에 중점을 둔 시기였다면 1980년대는 내적 기틀을 다지는 시기였다.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송광섭 신부는 신앙 쇄신 운동과 신자 재교육의 일환으로 피정 · 성령 세미나 · 성지 순 례 · 연수회 · 강연회 등을 정기적으로 개최하였다. 그리 고 1981년 1월에는 서초동(瑞草洞) 본당으로 110세대 410명의 교적을 이관했고, 1984년 8월에는 역삼동(驛 三洞) 본당이 설립되어 80세대 295명의 교적을 이관했 다. 또 11대 주임 이기명 신부 때인 1990년 8월 22일에 는 포이동(浦二洞) 본당을 분리하고 820세대 2,500여 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한편 본당 재정이 확충되자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가 주축이 되어 지역 불우 이웃 돕기 에 많은 관심을 쏟은 결과 1999년에는 서초구청으로부 터 최우수 봉사 단체로 선정되었다. 성당 건물의 노후로 인한 각종 재해를 예방하고자 1998년 4월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실시한 본당에서는, 장차 우면동에 본당을 분 할하기 위해 1999년 12월부터 성당 건립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잠원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양재동 본당사 편찬위원회 편, 《양 재동 본당 25년사》, 천주교 양재동 교회, 1990/ 《새벽》 26호(1977. 7),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 〔金成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