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현 (1813~1868)

梁在鉉

글자 크기
9

무진박해(戊辰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마르티노. 본관은 남원. 동래(東萊) 북문(北門) 밖 실내(현 부산시 금정구 금사동)에 거주하였으며, 좌수(座首)로서 학식과 지역 사회에서의 명망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당시 동래 지역 천주교 공동체의 회장이며 그의 대부(代父)인 이정 식(李廷植)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하였는데, 그의 아내 최 마리아, 아들 베르나르도, 며느리 엘리사벳 등 그의 가족 모두가 천주교 신자였다. 그는 이정식과 함께 동래 지역의 신자 집단이 형성된 읍치(邑治) 부근을 중심으로 열심히 전교 활동을 하는 등 이 지역의 천주교 발전에 주 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가 격화되는 중에도 피신하지 않고 집에 있다가 1868년 2 월 16일(음) 동래 포졸에게 체포되어 부사(府使)의 심문 을 받고 20일 동안 옥에 갇혔으며, 이후 수영(水營)으로 옮겨진 뒤 돈을 주고 석방되었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이 때 양재현은 의복을 갖추어 입고 첨례(瞻禮) 책을 들고 가면서 가족들에게 열심히 천주를 믿고 이후 천당에서 보자는 말을 남겼다. 동래 부사가 배교하면 상을 주겠다 고 회유하였으나 배교하지 않아 곤장을 맞고 옥에 갇힌 그는, 5일 뒤 수영에서 상급 관청인 통영(統營)으로 이 송되었다가 음력 7월 1일(음) 동래 수영으로 압송되었 다. 끝까지 배교하지 않았던 양재현은 1868년 8월 4일 (음) 동래 지역 천주교 신자 7명과 함께 수영 장대(杖臺) 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이정식) ※ 참고문헌  《병인 군난 치명 사적》 《日省錄》 / 《致命 日記》/ 閔 善姬 · 孫淑景 · 李勛相 編著, 《朝鮮後期 東萊 地域社會의 엘리트와 天主敎 受容者들 그리고 이에 관한 古文書》, 부산교회사연구소, 1995. 〔孫淑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