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 본당
楊亭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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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3동 74-1 소재. 1957년 8월 동래(東萊) 본당 소속 양정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 왕. 관할 구역 은 양정1~4동, 범전동 전 지역과 전포2동 일부 지역. 〔교 세〕 1964년 1,800명, 1971년 2,673명, 1979년 2,216명, 1982년 3,107명, 1993년 4,766명, 1999년 4,495명. 〔역대 신부〕 초대 김남수(金南洙) 안젤로(1957. 12~1961.3), 2대 정수길(鄭水吉) 요셉(1961.3~1962.6), 3 대 김영제(金永濟) 요한(1962. 6~1962. 12), 4대 이상호 (李尚護) 라이문도(1962. 12~1971. 5), 5대 이옥군(李玉 君) 타데오(1971. 5~1972. 11), 6대 박흥섭(朴興燮) 세바 스티아노(1972. 11~1975. 6), 7대 이철희(李哲熙) 바오로 (1975. 6~1976. 12), 8대 정재석(鄭在石) 요셉(1976. 12~ 1978. 1), 9대 박승원(朴勝遠) 니코메데스(1978. 1~ 1982.2), 10대 최경용(崔敬容) 베드로(1982. 2~1983. 10), 11대 유봉호(劉奉鎬) 바르톨로메오(1983. 10~1988. 2) 12대 양 덕배(楊德培) 요한(1988. 2~1991. 2), 13대 권지호(權支 浩) 프란치스코(1991. 2~1993. 2), 14대 유영일(劉永一) 아우구스티노(1993. 2~1994. 2), 15대 김상효(金相孝) 필 립보(1994. 2~1997. 2), 16대 윤준원(尹俊遠) 미카엘(1997. 2~현재). 〔공소 시기〕 1928년 양정 지역에 거주하던 6가구, 20 여 명의 신자들은 양정2동 230번지의 박성용(알로이시 오) 집에서 양정 공소를 설립하였는데, 이후에도 전형적 농촌 마을이었던 양정 지역의 신자수는 많지 않았다. 그 러던 중 한국 전쟁으로 부산 지역이 임시 수도가 되어 이 곳에 군수 기지 사령부와 난민 수용소가 설치되면서 인 구와 주택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951년 9월에는 동 래 본당이 설립됨으로써 부산진(釜山鎮, 현 凡-) 본당 소속이었던 양정 공소가 이곳 소속이 되었는데, 공소 신 자들은 동래 성당이 멀다는 이유로 부산진 본당 소속으 로 남겨 줄 것을 교구에 요청하는 한편, 인근 군 부대인 군수 기지 사령부 영내의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 였다. 한편 대전에서 피난 온 오기선(吳基先, 요셉) 신부 는 전쟁 고아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고아원 건립 부지로 현 성당 소재지의 부지 800평을 매입하였으나, 서울 수 복 후 귀향하면서 이를 성당 부지로 기증하였다. 이에 공 소 신자들은 기증받은 부지에 천막 막사를 지었고, 1957 년 8월에는 이곳에 인근 군 부대의 도움을 받아 퀀셋 성당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같은 해 11월 양정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김남수 신부가 부임하였다. 〔정착과 발전〕 김남수 신부는 인근에 정착한 피난민과 이재민으로 인하여 신자수가 증가하자 1960년 2월 공사 를 시작하여 그 해 12월 단층 성당(80평)을 완공하고 봉 헌식을 거행함과 동시에 서면(西面) 본당을 분리하면서, 주임을 겸임하였다.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수길 신부는 1961년 9월에 사제관을 완공하였으며, 이듬해 4 월에는 한국 순교 복자 수녀원의 분원을 마련하였다. 3 대 주임 김영제 신부는 1962년 8월에 성모유치원을 설 립하였고, 4대 주임 이상호 신부는 이듬해 10월 루르드 성모 동굴을 완공하였다. 지역 발전과 함께 신자수가 증 가하자 6대 주임 박흥섭 신부는 1972년 11월에 전포 (田浦) 본당, 이듬해 10월에는 연산(蓮山) 본당에 이어 11월에는 거제동(巨堤洞) 본당을 분리하였다. 7대 주임 으로 부임한 이철희 신부는 투병 중에서도 2개 반으로 운영하던 성모유치원을 4개 반으로 늘리며 활발한 활동 을 전개하였으나, 1976년 12월 2일 사망하고 말았다. 다소 침체되었던 본당 활동은 박승원 신부가 9대 주임으 로 부임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함에 따라 다시 활기 를 띠게 되었다. 박승원 신부는 1978년에 교리실을 증 설하고 수녀원(40평)을 신축하였으며, 이듬해 5월에는 한국 순교 복자 수녀원이 철수하자 까리따스 수녀회의 분원을 마련하였다. 이와 함께 1980년에는 신심 단체에 속해 있지 않은 장년들과 새 영세자들을 대상으로 '장대 골회' 를 결성하였는데, 이 회는 본당 사목회와 함께 본 당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듬해 8월에는 성모유치원을 폐원하고, 지역 청소년을 위한 독서실을 운영하 였다. 1983년 11월 11대 주임으로 부임한 유봉호 신부는 이듬해 8월 교리실을 개조하고 강당 증축 공사를 하였으며, 또 어느 정도 본당의 외적 기반이 완성되었다는 판단에 따라 본당의 내실화를 위해 1984년 1월 파티마 의 성모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다. 이후 3년 만에 10개 의 쁘레시디움이 생겨났는데, 이와 같은 레지오 마리애 의 활성화는 본당 내의 성모 신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5대 김상효 신부는 도로 확장으로 성당 입구 · 교리 실 · 관리실이 헐리게 되자, 성당 신축을 계획하였다. 이어 16대 주임으로 부임한 윤준원 신부는 1997년 3월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 를 구성한 뒤 바자회 · 음악회 등 을 통해 성당 신축 기금을 마련하면서 그 해 11월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를 담당한 회사의 부도가 계속되어 건축 회사가 3번이나 바뀌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2000년 5월 14일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성당(1,100 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 부산교구 ; 동래 본당)
※ 참고문헌 安達源, 《天主教梁山地域史》, 嶺南産業研究院, 1986/ 天主教釜山教區 편, 《釜山教區三十年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0. 〔金善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