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 본당

陽智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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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 497-1 소재. 1927년 9월 14일 미리내 본당 관할 공소 에서 남곡리(南谷里)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한국 전쟁 무렵 본당 이름을 '양지 본당' 으로 바꾸었다.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용인시 양지면 · 원삼면 전 지역과 백암면 백암리 · 박곡리 · 근창리 · 근삼리 · 가 창리 · 근곡리 · 가좌리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백 암, 고당, 고초골, 용암, 한터 등 5개소. 〔교 세〕 1966년 1,950명, 1972년 1,906명, 1979년 2,034명, 1985년 1,730명, 1990년 1,893명, 1995년 2,187명, 1999년 2,727명. 〔역대 신부〕 초대 박동헌(朴東憲) 마르코 (1927. 9~1941. 6), 2대 프로망투(E. Fromentoux, 包) 에밀 리오(1941. 6~1949. 8), 3대 이완성(李完成) 요한(1949. 8~ 1950. 12), 4대 조인환(曹仁煥) 베드로(1950. 12~1959. 5) , 5대 정원진(鄭元鎮) 루가(1959. 5~1961. 3), 6대 정주성 (鄭主成) 요셉(1961. 3~1968. 5), 7대 손태섭(孫泰燮) 마 르코(1968. 5~1970. 7), 8대 류봉구(柳鳳九) 아우구스티노 (1970. 7~1980. 4), 9대 한봉주(韓鳳株) 클레토(1980. 4~ 1985. 7), 10대 윤용배(尹龍培) 라자로(1985. 7~1989. 11) , 11대 이원태(李元泰) 마르티노(1989.11~1995. 2), 12대 박정배(朴楨培) 베네딕도(1995. 2~1997. 2), 13대 안병선 (安秉先) 사도 요한(1997. 2~현재). 현 양지 본당 관할 구역에는 유래 깊은 교우촌으로 은이(내사면 南谷里 隱里)와 골배마실(남곡리 龍谷)이 있다. 은이는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처음으로 사목 활동을 시작했던 곳이다. 그리고 골배마실은 김대건 신부의 부친인 성 김제준(金濟俊, 이 냐시오)이 충청도 솔뫼(당진군 우강면 송산리)를 떠나 용인 한덕동(寒德洞, 이동면 묵리의 광파리골과 성애골)에 정착하 였다가 1835~1836년경 이주해서 살았던 곳으로, 모방 (P. Maubant, 羅伯多祿) 신부에 의해 1836년 부활 무렵에 김대건이 신학생 후보로 선발된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오랜 기원을 갖고 있는 두 공소는 1880년대 갓등이 (현 왕림) 본당 관할이 되었는데, 1888년 이 본당의 앙드 레(J. André, 安學古) 신부는 골배마실 공소에 63명의 신 자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또 1890년에는 은이 공소에도 61명의 신자가 있었다. 그 후에도 신자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1922년 골배마실 공소에 103명, 은이 공소에는 290명이나 되는 등 이미 1920년대 초에는 본당 규모에 가까울 만큼 많은 신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 결과 1927년 9월 14일 미리내 본당의 보좌로 있던 박동헌 신부가 남곡리 벌터 '재박이' 에 16칸짜리 성당을 짓고 초대 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승격되었는데, 설립 당시의 신자수는 801명이었다. 한편 1930년 에는 압고지[前垈里] 본당(용인 본당의 전신)이 폐쇄되면 서 양지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박동헌 신부는 1931년에 성당 4칸을 증축하였으며, 본당 회장 및 공소 회장 피정 을 수시로 개최하였고, 남녀별 · 연령별로 6개의 사도직 단체를 조직하여 매주 모임을 갖도록 하였다. 1939년경 에는 용인군 · 광주군 · 이천군 일대에 19개의 공소를 관할하였다. 광복 이후 3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완성 신부는 골배마실에 있는 적산 가옥을 불하받아 벌터에 있던 성당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후 4대 주임 조인환 신부가 1954년 5월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미군 부대의 도 움으로 78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이듬해 4월 19일 에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58년 8월 21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매괴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는데, 이 쁘레시디움은 수원교구 레지오 마리애의 효시가 되었다. 교세가 급증하자 1959년 6월 5일에는 용인 본당을 분리 하고 3,000여 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6대 주임 정주 성 신부는 성당 보수 공사를 하였고, 1962년 9월 16일 에는 복자 김대건상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8대 주임 류봉구 신부 때인 1979년에는 교육관과 수녀원이 신축되었고, 10대 주임 윤용배 신부는 1988년 12월에 사제관 을 완공하였다. 한편 본당에서는 여러 차례 부분적인 성당 보수 공사를 하였으나, 너무 낡고 협소하여 사용에 불편이 많았다. 그리하여 1987년 10월 10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 였으나, 공사비 부족으로 1990년 12월에 일시 중단했다 가 곧 재개하여 1993년에 600평의 성당을 완공한 다음 1997년 9월 14일에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에 앞서 1996년 5월에 은이 공소 터 537평을 매입한 뒤 같은 해 6월 25일 성 김대건 신부상과 야외 제대를 세웠는데, 장차 이곳을 사적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또 1998년 7월 6일에는 성 김대건 신부 유물 전시관을 개관하였는데, 교구 차원에서 이곳에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가칭)을 건립할 예정으로 있다. (→ 수원교구 ; 미리내 본당)
※ 참고문헌  《경향잡지》 624호(1927. 10) ; 1047호(1955. 6)/ 《수원 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 차기진, 〈金大建 신부의 활동 과 업적>, 《敎會史硏究》12집, 韓國敎會史研究所, 1997/ 김진용, <김 대건 신부 가족 피난지에 관한 연구>, 《교회와 역사》 218호(1993. 7) ; 219호(1993. 8), 한국교회사연구소.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