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부산진구 가야2동 157소재. 1973년 7월 5일 서면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파티마의 성모. 관할 구역은 가야1 · 2 · 3동, 개금1 · 2 · 3동, 범천동, 당감2동 일부. 〔교 세] 1973년 1,084명, 1977년 2,351명, 1984년 5,109명, 1986년 5,185명, 1993년 6,633명. [역대 신부] 초대 배상섭(裵尙燮) 요한(1973. 7~1975. 5), 2대 김창문(金昌文) 요셉(1975. 5~1978. 4), 3대 윤경철(尹景哲) 바오로(1978. 4~1983. 2), 4대 하용달(河龍達) 안드레아(1983. 2~1986. 9), 5대 이영묵(李英默) 안드레아(1986. 9~1991.2), 6대 양덕배(楊德培) 요한(1991.6~현재).
〔설립과 성장] 가야 지역 신자들은 본당 설립 전까지 서면 본당에 속하였으므로 멀리는 북구 학잠동, 엄궁동에서부터 가까이는 가야동, 개금동의 신자들까지 서면 본당을 왕래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1972년 11월 이 본당에서 이웃 전포 본당이 분리되면서 가야 지역의 신자
들 사이에서 본당 승격 운동이 전개되었고, 뜻있는 신자들이 모여 대지를 매입한 뒤 교구에서 동성기업사에 임대해 준 부지에 성당을 건립해 주도록 본당의 박태산(朴泰山, 요아킴) 신부에게 건의하였다. 그러자 본당 신부가 이를 다시 교구에 요청하고 교구에서 이를 받아들여 가야 본당의 분리 설립을 발표함과 동시에 초대 신부로 배상섭(요한) 신부를 임명하였다. 본당 설립의 발표가 있은 뒤 신자들은 7월 12일자로 민가 하나를 임대하여 사제관을 마련하고 신부를 맞이하였으며, 배 신부는 즉시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 수녀들을 본당에 초청하였다. 이어 신자들은 7월 19일자로 '성당 건립 추진 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성당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1974년 5월 5일에는 이를 완공, 27일에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3대 윤경철(바오로) 신부 재임기인 1979년 12월에는 교육관 건립을 시작하여 이듬해 8월에 그 축성식을 가졌고, 제4대 하용달(안드레아) 신부재임기인 1984년 12월에는 주례(周禮) 지역에 새 본당을 설립키 위해 1984년 11월 '주례 성전 건립 위원회'를 구성한 뒤 이를 위해 노력한 결과 성당 골조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인 1986년 2월 1일에는 주례 본당을 분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20여 년을 지내 오는 동안 본당 신부와 신자들은 성당 건립 및 분리 운동에 노력하는 한편 각종 평신도 사도직 단체 구성에 힘쓰고, 전교 활동의 활성화와 본당의 내실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현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 부산교구) 〔車基眞〕
가야 본당
伽倻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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