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양능
良知良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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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① 동양 철학에서의 양지양능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앎과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실천 능력을 가리킨다. 맹자는 "인간이 배 우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것은 그 양능이다. 생각을 하 지 않고도 아는 것은 그 양지이다." (人之所不學而能者 其良能也 所不慮而知者 良知也, 《孟子》, 〈離婁 上>)라고 하 였다. 맹자는 그 예로서 어린아이가 자기 부모를 사랑할 줄 알지 못함이 없고, 그가 자라나서는 자기 형을 공경할 줄 알지 못함이 없다는 것을 들었다. 부모를 사랑하고 어 른을 공경할 줄 아는 것은 배워서 할 수 있고, 생각을 거 쳐서 아는 것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도덕적 실천 력과 인식 내용이라는 것이다. 맹자 이후 성선(性善)을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맹자의 이 학설을 따랐다. 그러나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는 순자(筍子)는 양지 양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지(知)와 능(能)이 배움 [學]과 사려〔慮)를 거쳐서 도덕적인 앎과 도덕을 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된다고 보았다. 전자가 자연적인 것이 라면 후자는 인위적인 것이므로, 저절로 알고 저절로 행 할 수 있다고 믿는 맹자의 양지양능설을 부정한 셈이다. 맹자의 양지양능설은 송대(宋代) 유가(儒家)들이 많이 계승하였다. 장재(張載, 1020~1077)는 "참됨과 밝음 을 아는 것은 자연스런 덕인 양지이다. 보고 듣는 작은 앎이 아니다"(誡明所知 乃天德良知 非聞見所知而已, 《正 蒙》, <誡明篇>)라고 하여 선천적인 덕(天德)으로서의 양지 와 후천적 경험(聞見)으로서의 지식을 구분하였다. 그리 고 또 "자연스런 양능은 본래 나의 양능이다. 돌아보건 대 경험적 자아에 의하여 상실되었을 뿐이다" (天良能 本 吾良能 顧爲有我所喪耳, 《正蒙》, <誡明篇>)라고 하여, 양능도 선천적임을 분명히 주장했다. 정명도(程明道, 1032~ 1077)와 정이천(程伊川, 1033~1085)은 "양지양능은 모두 유래한 곳이 없다. 바로 하늘에서 나왔으며 인간에게 얽 매어 있지 않다"(良知良能 皆無所由 乃出于天 不繫于人, 《遺書》)라고 하여, 양지양능이 하늘에서 유래한 자연적이 고 선천적인 것임을 분명히 밝히었다. 정명도는 "양지양능은 원래 상실되지 않는 것이다. 옛날의 버릇이 된 마음 (習心)이 아직 제거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良知良能 元不喪失 以昔日習心未除, 《遺書》)라고 하여, 양지양능이 습심(習心) 때문에 상실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정이천은 "밤 기운이 간직하고 있는 것은 양지이고 양능이다. 진실로 그것을 넓혀서 꽉 채워서 낮에 해롭게 된 것을 변화시켜 밤 기운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되게 한다. 그런 뒤에야 성인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夜氣之所存者 良知也 良能也 苟擴而充之 化旦晝之所害 爲夜氣之所存 然後可以至于聖人, 《遺書》)고 하였다. 그는 맹자가 말한 야기(夜氣)와 양지양능을 연결시켰다. 주희(朱熹, 1130~1200)는 거의 양지양능을 언급하지 않았다. 《주자어류》(朱子語類)의 <맹자양지양능장>(孟 子良知良能章)에서도 아무런 토론이 없었다. 다만 "양 (良)이란 본래 그러한 좋음이다"(良者 本然之善也, 《孟子 集註》, <告子上>)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이때 '양' (良)이 란 '훌륭한' · '뛰어난' 이라는 뜻으로 선천적인 것만이 아니라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서도 가능한 것이다. 주희는 아마도 양지양능에 대하여 순자처럼 부정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것 같다. 왕양명(王陽明, 1472~1529)과 그의 제자들에 이르러 양지양능은 양지(良知)와 치양지(致良知) 학설로 계승 발전되었다. 양지는 무엇을 할 줄 아는 능력이므로 그것은 이미 지행(知行)을 합일하고 있다. 따라서 양지 속에 이미 양능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왕양명에 의하여 양 지는 선천적 도덕 원리인 천리(天理)와 동등한 것이 되 었다. 왕양명은 "내 마음의 양지는 즉 이른바 천리이다" (吾心之良知 卽所謂天理也, 《傳習錄》 上)라고 하였으며, "대개 양지는 단지 하나의 천리가 저절로 뚜렷하게 깨달 음이 발견되는 곳일 뿐이다" (蓋良知 只是一箇天理自然 明覺發現處, 《傳習錄》 中)라고 하였다. "양지는 또한 마음 의 본체이기도 하며 늘 비추고 있는 것이다"(良知者 心 之本體 即前所謂恒照者也, 《傳習錄》 中)라고 하였다. 왕양 명은 "양지양능은 어리석은 부부와 성인이 같다. 그러나 성인은 그 양지를 실현할 수〔致〕있으나 어리석은 부부 는 실현할 수 없다. 이것이 성인과 어리석은 이가 나누어 지는 곳이다"(良知良能 愚夫愚婦與聖人同 但惟聖人能致 其良知 而愚夫愚婦不能致 此聖愚之所由分也, 《傳習錄》 中)라고 하였다. 따라서 누구나 다 양지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으나, 성인이 되는지의 여부는 이 양지를 실현하는 치양지(致良知)의 공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치 양지의 공부 문제를 둘러싸고 왕양명의 제자 사이에는 논쟁이 벌어졌다. 이것은 양지를 마음의 본체요 천리라고 인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공부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그러나 양지가 마음의 훌륭한〔良〕 작용일 뿐 천리가 아니라고 하는 설이 주자 후학에서 나왔다. 양지양능에 대하여 주자학파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태도를 분명히 밝힌 사람은 바로 왕양명을 비판 한 나흠순(羅欽順, 1645~1547)이었다. 그에 의하면, "맹자는 어린아이는 자기 부모 사랑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 없다. 그가 자라나서는 형을 공경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 없다고 했는데, 이것으로 양지양능설은 그 의미가 매우 분명하다. 대개, 지(知)와 능(能)은 인간 마음[人心]의 묘한 작용(妙用)이고, 사랑과 공경〔愛敬〕은 바로 인간 마음의 천리(天理)이다. 그것(知, 能)은 사려를 기다리지 않고도 저절로 이것(愛, 敬)을 알기 때문에 뛰어나고 훌 륭하다고〔良〕 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양지를 천리라고 생각하는 사랑 · 공경은 과연 어떤 것인가? 정자(程子) 는 일찍이 지각(知覺) 두 글자의 뜻을 풀이하여 지(知) 는 이 일〔事〕을 아는 것이요, 이 이치(理)를 깨닫는 것이 다" (孟子曰 孩提之童 無不知愛其親也 及는其長也 無不 知敬其兄也 以此實良知良能之說 其義甚明 蓋知能乃人心 之妙用 愛敬乃人心之天理也 以其不待思慮而自知此 故謂 之良 近時有以良知爲天理者 然則愛敬果何物乎 程子嘗釋 知覺二字之義云 知是知此事 覺此理, 《困知記》, <續上> 第 45章)라고 하였다. 나흠순은 마음의 작용인 양지를 부정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지는 마음의 영묘한 작용[妙用] 일 뿐 결코 그 자체가 권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양 지의 지각은 일을 알고 이치를 깨닫는 것일 뿐, 사리(事 理)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흠순이 양지 를 천리가 아니라 마음의 묘용(妙用)으로 간주한 것은 주자학의 입장에서 마음〔心〕과 본성〔性〕을 뚜렷이 구별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주자학에서 본성은 이치 라고 주장할 수 있으나 마음은 어디까지나 이기(理氣)의 합이지 이치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지양능설은 왕양명을 계승한 문인 구양덕(歐陽德, 1496~1554)에 의하여 반박되었다. 그는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감각적 지각과 사단(四端)의 지 (知)인 양지를 구분하고, 전자는 불선(不善)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지만, 후자는 본연(本然)의 선(善) 으로써 양지를 본체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지 이외의 어떤 다른 본체 즉 천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 였다. 그는 감각적 지각과 양지를 뚜렷하게 구별하여 설 명하였다. 그리고 왕양명이 지각과 양지의 관계를, "양 지는 지각에 말미암지도 않고(不由), 걸리지도 않으며 (不滯), 떨어져 있지도 않다(不離)”고 한 견해를 계승하 여, 구양덕은 지식(知識)에 지각(知覺)과 양지(良知)가 두 가지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각과 양지는 차원 을 달리하는 앎〔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각은 본성 또는 천리라고 말할 수 없고, 양지만이 천성이요 천리라는 것이다. 나흠순의 양지양능설은 조선 시대 주자학자들에게 양명학을 비판하는 시각을 제공하였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박세채(朴世采, 1631~1695)와 민언휘(閔彥暉)였다. 두 사람은 한국 양명학의 창시자인 정제두(鄭齊斗, 1649~ 1736)의 스승과 친구였다. 그는 "옛날 나흠순 역시 왕양 명의 양지가 곧 천리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의미를 따지었다. 그리고 말하길 '천리란 인간 본성이 갖춘 것이요, 양지란 내 마음의 지각이다. 어찌 양지를 천리로 삼기에 넉넉하겠는가? 하고, 천리와 양지로 실체와 모용(妙用)의 구분이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제 보내준 편지에서 양지를 설명한 것은 바로 이와 동일한 것이다" (昔雜整菴亦嘗以陽明良知即所謂大理之說 為非而辨之 其意概日 天理者 人性之所具也 良知者吾心 之知覺也 何足以良知爲天理 以天理與良知 謂之有實體妙 用之分矣 今來喻之說良知 正與此略同矣, 《霞谷集》, <書>) 라고 하였다. 이것은 정제두가 친구 민언휘의 글을 보고 답장을 쓰면서 한 말이다. 정제두는 본체와 작용이 하나의 근원이라는 체용 일원(體用一源)의 입장에서 지(知) 자를 지각으로만 해석하는 당시의 학계를 비판하고, 지 (知)자에 양(良)자를 덧붙인 것은 이 지(知)가 바로 본성이요, 본체이며, 명덕(明德)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 고 만약 지(知)자만 말한다면, 아마도 정감〔情〕 한쪽에 떨어져 그것은 지각, 지식의 지와 같은 것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같이 그는 지각과 양지를 명확히 구분하여, 양지는 마음의 본체(天理)인 동시에 작용이라고 주장하면서 양지도(良知圖)를 그렸다. ※ 참고문헌 《孟子》 《傳習錄》 《困知記》 《霞谷集》 《歐陽野文 集》韋政通 主編, 《中國哲學辭典大全》, 臺灣, 水牛出版社, 1994. 〔鄭仁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