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科學

〔라〕scientia · 〔영〕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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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 지식. 넓은 의미로는 세계 안의 경험 가능한 대상을 다루 는 경험 과학(empirical science)과 인간의 사고 과정 속에 나타나는 논리적 형식을 다루는 형식 과학(formal science) 으로 나뉜다. 경험 과학은 다시 취급 대상에 따라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으로 나뉜다. 형식 과학에는 논리학과 순수 수학이 들어간다. 그런데 흔히 '과학' 이라고 할 때 에는 자연 과학을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 격〕 과학 특히 자연 과학은 대상에 대한 인간의 합 법칙적 · 합경험적 탐구 활동 및 그 결과물을 뜻한다. 그 리고 그 내용은 다시 어떤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가 하는 '사실 자체' 에 관한 지식과 이들 사물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가 하는 '보편 법칙' 에 관한 지식 으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태양계 안에 어떤 행성들이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가 하는 것은 사실에 관한 지식이 며, 이들의 주기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 사이에는 어떠 한 관계가 성립하는가는 법칙에 관한 지식이다. 물론 이 러한 지식들은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밀접하게 연결 된다. 태양계 안에 어떤 행성들이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 가를 알기 위해서도 이미 확립된 자연 법칙에 관한 지식 이 필요하며 또 행성들의 주기와 거리 사이의 법칙을 확 인하기 위해서도 행성들이 어느 위치에 어떻게 존재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사실' 에 관한 지식과 '법칙' 에 관한 지식이 서로 단순한 순환 관계에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 각각은 보다 확고한 일차적인 지식들을 바탕으로 서로의 지식을 활용하면서 차츰 광범위한 지식의 체계를 쌓아 가는 일종의 나선형적 발전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이러한 과학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직접 관측을 통해 얻는 관측 자료와 개념적 구성을 통해 마련하는 이론 체 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결합을 통해 잠정 적으로 설정한 이론을 검증하고, 또 검증된 이론을 다시 활용하여 새로운 사실을 추정한다. 이처럼 과학적 지식 은 단순한 일차적 경험만으로 또는 경험을 떠난 순수한 사변만을 통해서 얻을 수 없다. 과학의 활동은 구체적 관측을 통한 합경험적 방식과 개념적 구성을 통한 합법 칙적 방식의 발전적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과학의 이 러한 성격으로 과학적 지식은 몇 가지 중요한 특성을 지닌다. 첫째, 과학적 지식은 완전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좀더 새롭고 정밀한 관측이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좀 더 명확하고 포괄적인 이론 체계를 지속적으로 시도함으 로써 사물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히고 이에 적용되는 보 편적 질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역동적 과정을 중시 한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 있어서든 현존 지식은 항상 잠 정적인 것임을 인정하며, 보다 나은 지식으로 대치될 가 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둘째, 과학적 지식이 설혹 잠정적이고 근사적인 것이 더라도 터무니없이 잘못되거나 거짓된 지식인 경우는 별 로 없다. 이는 항상 그 당시의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관 측과 검토를 거쳐 이루어진 최선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흔히 과학적 지식의 잠정성과 근사성을 잘못 이해하여 과학적 지식을 송두리째 불신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예컨대, 지구의 탄생 연대가 45억 년이라는 과학적 지식은 잠정적이며 근사적인 것이다. 이는 어쩌면 46억 년이나 혹은 50억 년이라는 설로 바 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4천 5백년 또는 4 만 5천 년으로 바뀔 가능성은 없다. 그리고 과학의 이론 체계가 때로 근본적으로 수정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 나, 설혹 한 이론이 폐기되었다 하더라도, 이 이론이 예 측 또는 설명했던 사실들 자체가 크게 달라지는 일은 많 지 않다. 예컨대, 오늘날 고전 역학은 원자 규모의 대상 에까지 적용될 보편 이론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 것을 통해 예측된 행성들의 운동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셋째, 과학적 지식은 어떤 특정인에게만 알려질 수 있 는 밀교적 지식이 아니라, 어느 누구나 원칙적으로 이해 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공개된 지식이다. 어느 누구나 공 개된 방식으로 이를 검증하고 확인해 볼 수 있으며, 잘 못이 발견될 경우 이를 비판하고 시정함으로써 오히려 환영받을 수 있는 성격의 지식이다. 반대로, 이러한 공 개성이 없는 지식, 가령 어느 특정인의 심령적인 조작으 로 무엇이 이루어지거나 또는 알려지는 종류의 지식은 과학적 지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과학과 종교〕 과학적 지식이 지닌 이러한 성격과 대 조되는 대표적인 경우가 종교의 교리(敎理)와 같은 종류 의 지식이다. 과학에 비해 종교는 훨씬 긴 역사를 통해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현재에도 인류 생활에서 과학 못지않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종교 의 이러한 영향력은 대체로 교회라는 사회 제도와 교의 (敎義)라는 이념적 장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교리 속에는 종교의 발전 과정을 통해 다듬어진 인류의 긴 역사적 경험이 담겨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자연에 관해 인류가 이해해 온 나름대로의 선과학적(先科學的) 지식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교리 속에 함축 된 이러한 지식의 내용이 과학을 통해 밝혀진 지식과 일 치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갈등이 야기된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과학과 종교 사이의 주요 갈등이 대체로 이러한 종류에 속한다. 그렇다면 어째서종교의 교리는 과학을 통한 지식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갈등을 야기해야만 하는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는 것처럼 보 인다. 그 하나는 '참된 지식' 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며, 둘째 는 교리 속의 지식이 순수한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보다 높은 어떤 이념, 즉 해당 종교의 기본 교의를 뒷받침하는 합목적적 지식이라 는 점이다. 그러면 먼저, 종교에서 주장하는 '참된 지 식' 의 기준이 과학의 기준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볼 때, 가장 중요한 차이는, 종교의 진리 는 비판과 검증을 통해 찾는 것이 아니라, 신 의 계시 혹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의 직관을 통해 일시에 주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본다. 따 라서 이러한 지식은 과학에서 보는 지식과 극 히 대조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첫째로, 과학은 지식의 완전성을 주장하지 않음에 반하여, 종교에서는 지식의 완전성을 주장한다. 신의 계시로 지식이 불완전할 수 없 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미 신조 속에 들어 있 는 어느 하나의 지식이 거짓으로 판명될 경우, 전체 신 조에 막대한 손상을 끼칠 수 있는 커다란 위험을 감당하 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종교 에서는 그 주장의 내용을 의식적 검증을 통해 개선해 나 가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과학적 지식의 경우와는 달리 그 내용을 근사적으로나마 보다 나은 지 식으로 개선해 나갈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 셋째, 종 교의 지식은 일반인들이 공개적인 방식으로 검증 혹은 비판할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특별한 종교적 권능이 부 여된 사람 또는 기구를 통해서 그 진위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볼 때, 과학은 결코 종교에 대하 여 일방적으로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을 통한 새 지식들은 종교로 하여금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그 폭과 깊이를 더하도록 하는, 성장의 자극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밝힌 새로운 지식들을 바탕으 로 해당 종교의 기본 교리를 새로 조정한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겠으나, 해당 종교가 제시하고자 했던 진 정한 메시지의 규명과 종교가 보다 본질적인 자신의 영 역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종교가 당면한 보다 중요한 과제는, 기왕 의 갈등에 대한 단순한 조정 작업이 아니라, 과학이 제 시하는 새로운 세계상을 파악하고 여기에 대해 응분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정신 세계를 개척하 는 데 기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의 과학은 우주와 생명 그리고 인간에 대해 과거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것 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찾아내고 이에 맞추어 새로운 삶 의 방향을 찾아 나가는 것이 현대 인류가 당면한 지상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의 과학에 대한 입장〕 가톨릭 교회는 과 학에 대해 체계적인 입장을 밝히지 못해 왔다. 여기에는 형이상학적인 지식을 중시, 물질 세계에 해당하는 형이 하학적인 영역을 경시하는 그리스 이원론의 영향을 크게 받은 교의가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근 대에 들어와 크게 발전한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분야 는 그리스도교의 창조와 기존 신학적 세계관에 심각한 도전이 되었다. 그래서 갈릴레오 사건이나 지동설을 주 장한 부르노의 화형 사건에서처럼 이러한 도전에 대하여 비과학적인 대응을 하였다. 그러나 신앙의 진리가 이성 의 진리에 대한 판단의 착오, 성서에 대한 불완전한 이 해가 불러일으킨 이 사건들은 이제 과학과 종교가 발달 된 오늘에 와서 서로의 오해를 넘어 진지하게 진리에 접 근해 가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과학적 사건에는 전문가 가 아니며 성서의 참뜻은 좀더 많은 연구를 거쳐서 찾아 내야 한다는 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간간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이나 교황의 담화문, 연설문에서 과학에 대한 입장이 언급된다. 대개 교회가 과학에 관심 을 갖는 것은 과학과 기술의 오용 가능성에 대한 윤리적 충고자의 입장에서이다. 긍정적인 면보다는 인간에게 해 로운 사례를 더 쉽게 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이로운 측면들을 부정하고 있지 는 않다. 선교와 세계와의 건설적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은 교회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수단도 있는 까닭이 다. 먼저 교회의 입장을 살펴보면 윤리적으로 부정적인 측 면들이 앞에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은 그 고유한 방법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 수 없음 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도 이런 학문의 연구 방법을 진 리 발견의 최고 법칙이라고 여길 때, 현대의 과학과 기 술의 진보는 현상론과 불가지론을 조장하게 된다. 더구 나 현대의 발명을 과신하는 나머지 인간은 스스로 만족 스럽게 여기며 더 높은 것을 찾지 않게 될 위험도 있다" (사목 57항). 이른바 과학은 현상 또는 존재의 원인과 근 거에 대한 관심을 박약하게 하고 멀리할 위험을 안고 있 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주제넘게도 자연 과 학의 한계를 넘어서 만사는 과학적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반대로 전혀 아무런 절대적 진리도 인정하지 않는" (사목 19항) 경향에 빠진다. 이성 의 역할을 오직 과학적 합리성에만 국한시키려는 경향을 지닌 신과학 사조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환원주의처럼 여타의 인간 활동이 한갖 감정에 지나지 않아 그 이상은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1988년 교황 청 비신자 사무국 총회 참석자들에게 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의 연설). 그래서 사람들을 무신론에 빠지게 하거나 종 교가 전달하는 신학적 진리를 완강하게 부정하여 인생의 의미와 같은 존재론적인 질문들을 무색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과학은 주목하 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변화의 규모나 범위가 넓고 크 다. "정신 교육에 있어서는 수학과 자연 과학이나 인문 과학이, 실천 면에서는 과학의 소산인 기술이 날로 더욱 중시되고 있다. 이런 과학적 정신이 과거와는 다른 문화 형태와 사고 방식을 낳았다. 기술의 발전은 이미 지구의 면모를 바꾸어 놓았다" (사목 5항). 무시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넓은 범위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과학이 이제 교회가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 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이 발명하는 온갖 새로운 것들을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현대는 과 거의 그 어느 시대보다도 예지를 요구하고 있다. 더 높 은 예지를 갖춘 사람들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미 래 문명은 위험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목 15항). 그래서 교회는 신자 과학자들에게 교회를 대신하여 과학의 윤리 적 이용과 인간적 발전을 위해서 일하도록 독려한다. "우리는 현대인들에게 지성적이며 동시에 기술적이고, 윤리적이고 영적인 자질과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온전한 발전의 크나큰 도전에 부응하도록 과학과 종교의 생생한 힘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 그렇게 경탄을 자아 내면서도 그렇게 큰 공포로 불러일으키는 현대 과학 앞 에서 교회는 여러분들과 함께 의문을 던지며 가장 훌륭 한 정신으로 문화와 인간 자체의 미래에 결부된 문제들 에 해답하도록 청합니다"(1990년 6월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 총회 연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리고 가능하면 과학의 무절제한 사용을 금하면서도 최대한 그 성과는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은 주로 선교를 위해 서 첨단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 통신의 급격한 발달과 이로 인해 형성된 새로운 환경은 최근의 과학적 성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독려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컴퓨터 참여 시스템으로 알려진 컴 퓨터 전자 통신의 출현과 더불어, 교회는 자신의 사명 완수를 위하여 더 나은 수단들을 제공받고 있습니다. 교 회 구성원들 가운데 의사 소통과 대화를 용이하게 하는 방법들은 구성원들간의 일치 유대를 강화시켜 줄 수 있 습니다. 정보에 대한 즉각적인 접근은 교회로 하여금 현 대 세계와의 대화를 심화시킬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 교회는 또한 컴퓨터와 인공 위성 기술에서 인간이 탐 구해 낸 새로운 수단들을 자신의 긴급한 복음화 과업을 위하여 활동하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 분 명히 우리는 인간이 만든 방대한 인공 기억 장치에 정보 를 축적할 수 있게 해준 새로운 기술을 고맙게 생각하여 야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90년 세계 홍보의 날 담화 문)라고 하였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무절제한 사용의 위험은 상존한다. 의학과 유전 공학의 발달은 인간의 복 지를 위해서 쓰여지기보다는 유전자 복제와 같은 비윤리 적인 이용, 태아 감별을 통해 특정 성에 대한 조직적인 낙태를 자행하게 만들며, 핵무기와 화학 무기와 같이 인 간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위험한 무기의 성능 향상과 개 선처럼 인간에게 해로운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얼마든 지 안고 있다. 〔현대 과학의 세계상〕 지난 몇 세기를 통해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온 과학은 방대한 양의 새로운 지식을 산 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 하나하나가 우리 삶의 의 미와 직접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시 이들을 엮어내어 체계적인 세계상(世界像)을 구축해 볼 수 있으 며, 이를 통해 우리 삶의 의미와 연결되는 내용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밝혀 낸 지식들을 활용하여 의미 있는 세계상을 구축하는 작업은 간단한 일이 아니거니와, 이 작업을 현재 어떤 공식 절차에 따라 진행시키는 것도 아 니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들은 시각에 따라 상당한 편차 를 지닐 수 있다. 그러나 현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논의 를 기피할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인간 삶의 의미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현대 과학이 조명해 주는 모습을 한 가지 시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인간 삶의 의미와 깊은 관련을 지닌 중요한 개념들이 적지 않겠으나, 그 가운데서도 특히 오랜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어 온 주요 쟁점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 다. 그 첫째는 생명이란 과연 어떠한 성격을 지닌 존재 인가와 둘째 정신이란 물질 세계와 어떻게 연관된 것인 가, 셋째 이 우주와 생명 세계 가운데서 인간이 점유하 는 위치는 과연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현대 과 학은 이 세 가지 문제와 관련하여 적어도 과학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여러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 내고 있 다. 이러한 사실들을 연결하여 의미 있는 모습으로 꾸며 나가다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생명의 성격 : 우리는, 현대 과학을 통하여 우리가 살 고 있는 이 우주가 놓인 시간적 공간적 규모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주 내의 만물 이 어떠한 과정을 밟아 현재에 이르렀으며, 또 앞으로는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 하는 데 대한 의미 있는 주장들 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우리가 흔히 '생명' 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어떠한 연원을 가졌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존속해 나가는가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이미 여러 해 전에 슈뢰딩거(Schrödinger, 1944)가 연구했듯이, 하나의 생명이 존속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개체에서 개체로 전해지는 부호 기록, 즉 유전 인자가 필요하며, 또한 체 외로부터의 지속적인 '자유 에너지' (슈뢰딩거의 표현에 의 하면 '부엔트로피' ) 공급이 요청된다. 여기서 말하는 부호 기록은 크릭(Crick)과 왓슨(Watson, 1965)이 정체를 밝힌 DNA 분자 내의 염기쌍 배열로서, 이들이 세포 안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고 또 어떻게 복사되어 새로운 세포로 전달되는가 하는 점들이 분명히 밝혀지게 되었다. 그리 고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자유 에너지가 우리 지구상에 서는 어떠한 원천으로부터 어떠한 경로를 통해 전해지는 가, 그리고 이것으로 어떻게 새로운 생명 질서가 얻어지 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이해가 있었다. 생명에 관한 이러 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의 새로운 질문, 즉 생명이 지 닌 가장 '본질적 단위' 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해답은 놀랍게도 태양 ··· 지구계와 같은 '항성-항성계' 안에 특정의 물리적 조건이 갖추어 진 어떤 유기적 전체임을 알 수 있게 된다(장회익, 1990). 이를 '전지구적 생명' 혹은 온 생명' (global life)이라 부 른다면, 태양계 안에서는 대략 35억 년 전에 하나의 '온 생명' 이 출현했으며, 이것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오늘 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이러한 논의가 적합한 것이라면, 흔히 자신을 지칭하는 '나' 라는 존재는 본질 적으로 태양과 지구 사이에서 약 35억 년 전에 출현한 바로 이 '온 생명' 자체임을 알게 된다. 물질과 의식 : 우리의 의식은 일차적으로 한 개체 내 의 신경 세포들로 구성된 중추 신경망으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중추 신경망 하나마다 하나씩의 독자적 의식 주 체가 형성된다. 주체로서의 의식, 즉 정신은 인간 두뇌 안에 구성된 정보 체계의 총체로서 이를 주체적으로 느 끼게 될 때 나타나는 어떤 존재라고 할 수 있으며, 정신 세계는 이러한 의식의 주체를 통해 인식되고 의식되는 다양한 내용들의 총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 한 정신 세계가 물질적 바탕에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적어도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확인된 바에 따르면, 물질적 바탕을 지니지 않고 독자적으로 펄 쳐지는 정신 세계를 인정할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정신 세계의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주체성과 자주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여기에 대해 현대 과학이 분명한 대답 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 과학의 지식과 상충되지 않으면서 정신 세계의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해답으로 폴라니(Polanj, 1969)나 스페리(Speny , 1991)의 관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의식 주체가 느끼는 주체성과 자주성 그 자체도 이를 가능케 할 물리적 바탕 위에서만 존재하는 현상이기는 하나, 물 리적 조직을 바탕으로 발현된 주체의 입장에서 볼 때에 는 의식 가능한 새로운 자주적 세계가 열린 것으로 해석 된다. 일단 이러한 주체적 의식이 발현된다고 하면, 이 는 이미 이를 가능케 한 물리적 바탕이 마련된 것을 의 미하므로, 이를 총체적으로 의식하는 의식 주체의 행위 는 실제로 사물에 대한 물리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며, 사물 또한 그 결과에 의해 실제적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점이 바로 스페리가 최근에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위로 부터 아래로의 인과성' (top-down causation)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의식 주체는 곧 인식 주체이기도 하므 로, 물질과 의식의 문제는 다시 물질적 대상과 그 인식 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현대 양자 이론에서는 이른바 '상채 함수의 붕괴' 라든지 '벨(Bell) 의 정리' 라는 형태로, 대상의 인식과 관련하여 중요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Squire, 1986). 이러한 문제 에 대해서는 아직 공인된 해석은 나와 있지 않으나, 이 것이 근본적으로 대상 세계와 인식 주체간의 관계에 밀 접히 연관된 것임은 틀림없으며(장회익 1990) 이를 통해 현상 세계와 인식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의식 세 계는 개개인의 사적 의식이 아니라 상호 주관적인 인식 공동체 안에 형성되는 공유된 의식 공간임이 드러난다. 이 점은 과학적 사물 인식에 있어서도, 우리가 개별 인 간의 사적인 입장에서 인식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 유되는 하나의 인식 공동체, 즉 '온 생명' 의 의식 활동으 로서의 인식에 임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의 위치 : 인간의 경우 매우 중요한 점은, 이러한 의식 주체들이 개체로서의 의식만에 머물지 않고, 이들 이 결합하여 하나의 공동 주체 혹은 고차적 주체라 불릴 어떤 것을 형성해 나간다는 점이다. 마치 신경 세포들이 서로간에 연결망을 형성하여 정보의 유통 조직을 이루듯 이, 의식 주체들 사이에 도 연결망이 형성되어 서로간에 정보를 교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 식 주체간의 연결은 설 혹 신경 세포의 경우와 같은 생리적 연결은 아 닐지라도, 정보를 주고 받는다는 기능적인 면 에서는 이와 본질적으 로 다를 것이 없다. 즉, '의식' 을 '주체적으로 느끼는 정보 체계의 총 체' 라고 규정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확대된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기구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에 부응하는 '고차적 의식' 도 상정해 볼 수 있게 된다. 이제 이와 같은 상황을 보다 큰 규모의 유기체인 '온 생명' 에 적용해 본다면, 이 속에서의 인간의 역할은 마 치 하나의 신체 내에서의 신경 세포의 역할과 흡사함을 알 수 있다(장회익, 1989). 마치 신경 세포들이 신체의 일부 분에 이상이 생기거나 위해가 가해질 때, 이를 감지하여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고 이에 맞는 조처를 취하듯이 인 간들도 '온 생명' 을 자신의 확대된 신체로 여긴다면, 이 의 어느 부분에 위해가 가해질 경우 여기에 대해 아픔을 느끼면서 필요한 대책과 조처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 리고 중추 신경계가 신체 내에서 의식 또는 정신 활동을 담당하는 주체가 되듯이, 인간의 의식 공동체 혹은 문화 공동체는 고차적 존재 단위인 '온 생명' 안에서 일종의 의식 또는 정신 활동을 담당할 주체가 되지 않을 수 없 다. 만일 이와 같은 논의가 인정된다면, '생명의 단위' 혹 은 '의식의 단위' 입장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개체적으로 느껴 온 '나' 는 진정한 의미의 존재 단위가 될 수 없으 며, 보다 의미 있는 삶의 주체는 온 생명' 을 몸으로 하 는 공동체적 의식으로서의 '나' 일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나' 의 정체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파악이 가 능해진다면, 우리가 지닌 윤리와 도덕의 문제는 기본적 으로 이 새로운 '나' 에 대한 건강과 치유의 문제로 이해 될 수 있다. 즉, '너' 와 '나' 사이의 문제이기 전에, 큰 '내 몸' 안의 조화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서 볼 때, 오늘날 중요한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는 환 경 문제도 사실상 좀더 큰 내 몸의 건강 문제로 해석될 수 있으며, 현재의 이른바 공해 문제는 이 몸의 질환으 로 인한 통증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대 과학의 두 측면〕 현대 과학은 두 가지 측면을 지 니고 있다. 그 하나는 이것이 가진 기술 개발의 능력이 며, 다른 하나는 이것이 지닌 정신 문화적 가치이다. 누 구나 잘 아는 바와 같이, 과학의 기술 개발 능력은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좋든 싫든 무서운 위력을 지닌 과학 기술 문명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만일 그들이 이룩한 기술 문명에 버금가는 높은 수준의 새 정신 문화를 시급히 이룩하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자멸이라는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될 무서운 가능 성이 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과학 기술이라는 막강한 도구를 손에 들지 않았기에, 자신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 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을 절멸시키는 상황으로까지 는 이끌어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과학 기술이란 막강한 도구를 손에 잡은 인류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 지를 모른다면, 마치 실성한 사람이 무기를 잡은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매우 다행스런 사실은, 현대 과학 기술을 가능 하게 한 바로 그 과학이 기술 문명에 관한 지식뿐 아니 라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점과 이러한 존재로 장 기적인 존속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 가에 대한 중요한 사실들을 말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이 지닌 정신 문화적 가치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과학의 이러한 측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 만 아니라 심지어 과학이 정신 문화적으로 역기능을 하 는 것으로 오인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앞으로 중요 한 과제로서 과학자들 자신이 기술 개발을 위해 필요로 하는 지식 추구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과학이 지닌 정신 문화적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여, 현재 인류가 필요 로 하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데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 며 또한 종교계를 비롯하여 전통적으로 정신 문화를 담 당했던 사람들도 과학에 좀더 귀를 기울여, 과학이 말해 주는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새로운 시 각에서 들여다보는 자세를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 갈릴레이 ; ⇦ 과학과 종교) ※ 참고문헌  Michael Polanyi, Knowing and Being, Chicago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9/ Erwin Schrödinger, What is Life?,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44 (서인석 · 황상익 역, 《생 명이란 무엇인가?》, 한울, 1992)/ Roger W. Sperry, Search for Beliefs to Live by Consistent with Sciece, Zygon 26, 1991, pp. 237~258(홍욱희 역, <과학과 일치하는 우리 삶의 신념을 찾아서>, 《과학 사상》 2호, 1992, pp. 291~317/ Euan Squires, The Mystery of Quantum World, Bristo 1 : Adam Hilger, 1986/ James D. Watson, Molecular Biology of the Gene, New York : Benjamin, 1965/ Hwe Ik Zhang, Humanity in the World of Life, Zygon 24, 1989, pp. 447~4561 장회익, 《과학과 메타 과학》, 지식산 업사, 1990. 〔張會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