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우제나, 요한네스 스코투스 (800/815?~877?)
〔라〕Eriugena, Johannes Sco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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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중세 초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생 애〕 에리우제나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800~815년경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그곳 수도원 에서 연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당시 아일랜드의 호 칭인 스코티아(Scotia)를 본따 '스코투스' 라고 불렸으며, '에리우제나' 라는 이름은 아일랜드의 옛 이름인 '에린 (Erin)의 사람' 혹은 '에리우' (Eriu, 지금의 Eire)를 뜻한 다. 즉 그의 이름은 아일랜드 본고장 사람임을 반복적으 로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당시 유럽 대륙에서는 거의 불가능했던 그리스어를 배워 익혔다. 845년경 프랑스로 가서 샤를 2세(Charles Ⅱ , 843~877)가 후원하는 파리 궁정 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당시 논쟁의 주제였던 《하느님의 예정론》(De Divina Praedestinatione)을 집필하였다가 두 번 단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궁정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면서, 많은 번역서와 저술서들을 출판하였다. 877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저술 활동〕 에리우제나는 교부들과 라틴 저술가들에 대한 연구 외에 그리스어로 된 많은 저술들을 번역하였 는데,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Dionysius Areopagita, 6 세기 초)의 작품들, 막시모 콘페소르(Maximus Confessor, 580~662)의 《암비구아》(Ambigua) , 니사의 그레고리오 (Gregorius Nyssenus, 335?~395?)의 《인간의 일에 대하여》 (De opificio hominis), 살라미스(Salamis)의 주교 에피파니 오(Epiphanius, 315~403)의 《신앙에 관한 설교》(Sermo de fide)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자신의 독창적인 신학 저서들 을 저술하였는데, 《하느님의 시각론》(De visione Dei) · 《천계에 관한 해설》(Expositiones super hierarchiam coelestem) 그리고 다수의 신학 소품집들이 있다. 그는 아마도 865~866년 사이에 《자연의 구분론》(De Divisione Naturae, Periphyseon)을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그리스도교의 지혜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를 조화시키는 동시에 우주적 자연을 설명하고자 한 첫 번 째 시도였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에리우제나의 독자 들은 그의 철학을 두고 교회의 정통적인 가르침과는 양 립할 수 없는 범신론적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 다. 그 후 이 작품은 아말리쿠스(Amalicus, +1204?)와 같 은 범신론자들에 의해 인용되고 근거로 삼아진 까닭에, 1225년에 교황 호노리오 3세(1216~1227)로부터 단죄받 았다. 그 후 이 작품은 여러 번에 걸쳐 단죄를 받았으며 1684년에는 금서 목록에 포함되었다. 이 작품은 비록 정통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았을지라도, 에리우제나 자신은 충실한 교회의 신앙인으로서 많은 정통파 옹호자 들의 추종을 받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사 상〕 사유의 특징 : 에리우제나 사유의 첫 번째 특 징은, 철학과 신학의 융합이다. 대부분의 아우구스티노 주의자들처럼 에리우제나에게서도 철학과 신학, 이성과 신앙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방법론적인 혼돈과 어려움을 암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두 번째 사 유의 특징은, 교부 시대 문화의 유입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 속에 교부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카 시도로(Flavius Magnus Aurelius Cassidorus, 485~580), 카펠 라(Martianus Capella, 5세기), 이시도로(Isidorus Hispalensis, 560?~636), 베다(Beda Venerabilis, 672/673~735), 보에시우 스(A.M.T.S. Boethius, 470/475?~524)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 오리제네스(Origenes Alexandriae, 185?~254), 막시모 콘페 소르 등에 대한 인용은 탁월하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어 번역본들도 인용하였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당시 학자들 로 하여금 자신의 그리스어 지식을 기초로 고전 문화와 사상의 원천에 근접할 수 있도록 활로를 개척해 주었다. 세 번째 사유의 특징은 신플라톤주의이다. 그의 사상에 나타나는 가장 분명한 특성은 그리스도교 사상이지만 대 체로 플라톤적 영감을 받는 가운데 자신의 사상을 전개 하고 있다. 교부들에 대한 인용 역시 특별히 선별된 것으 로 보이는데, 특히 그것들은 신플라톤적인 사상을 중심 으로 선별되었다. 네 번째 특징은 그의 문체가 엄격한 언 어로 형성되었고 사상에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당시의 저술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듯이 신비주의나 범 신론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상의 모호성도 없지 않다. 형이상학 : 형이상학은 실재의 본질적인 면들에 대한 탐구이다. 그런데 에리우제나에게 있어서 실재는 자연 (natura)이다. 그에게 자연은 하느님과 피조물을 포함하 여 존재하는 모든 것과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을 의미한 다. 그리고 개념된 비존재(non-esse)는 절대적 무(無, nulla)가 아닌, 상대적 비유(非有)로 규정된다. 또한 감각 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은 지성을 초월하는 것이거나 초월 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 때 자연은 존재의 전체성을 가 리킨다. 따라서 에리우제나는 참된 종교와 철학이 혼동 될 수 없는 하나라고 말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진리의 기본적인 두 원천은 하느님의 계시와 창조된 물질적 사 물들이다. 창조된 물질적 사물은 하느님의 발자취와도 같으며, 자연은 비형상적인 물질들로부터 하느님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자연의 구분 : 에리우제나의 주저인 《자연의 구분론》 은 '스승' (Nutritor)과 '제자' (Alumnos) 사이의 대화 형식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5권으로 엮어져 있다. 이 안 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문화와 그리스어 번역본들 및 여 타의 모든 자료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여 자신의 총체적 인 사상을 전개하였다. 주제에 따라 자연을 네 가지 단계 로 구분하면서, 이를 통해 자연이 발전하는 과정을 제시 하고자 하였다. 첫째는 '창조하고 창조되지는 않는 자연' (prima est in eam quae creat et non creatur) , 즉 "하느님" ( I )에 대한 단계 이고, 둘째는 '창조되고 창조하는 자연' (secunda in eam quae creatur et creat)으로 "하느님의 이데아" ( II )에 대한 단 계이다. 셋째는 '창조되고 창조하지 않는 자연' (tertia quae creatur et non creat)의 단계로 "피조물”( Ⅲ )에 대한 것 이고, 넷째는 '창조하지도 않고 창조되지도 않는 자연' (quarta quae non creat nec creatur), 즉 "전 우주의 목적으로 서의 하느님" (Ⅳ ~ V)에 대한 것이다. ① 하느님 : '창조하고 창조되지는 않는 자연' 은 하느 님 자신으로 '그분' 은 원인 없이 존재한다. 하느님은 자 신의 근원적이며 무한한 실재 안에 있다. 즉 이는 플로티 노스(Plotinos, 204/205~270)의 일자(一者)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하느님은 일체 만물의 원인이고, 만물을 초월한 '숨은 신' 이며 무(無)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그분은 초 본질(超本質) 이며 초 진리(超眞理)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인간 지성 을 초월하는 어떤 존재이다. "그분에 대한 무지는 참된 지혜이다." 이것은 '부정의 길' 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알 지 못할 만큼 비규정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식은 이 원적인 특성을 함축하며, 이 이원성은 불완전함을 내포 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완전성은 플로티노스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일성(一性)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은 하 나이고 삼위(三位)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은 단순성을 말하기 위한 '상징적인 말들' (symbolica verba)에 불과하 다. 또한 하느님의 동적인 힘은 신적 원리에 대한 모든 무효화를 소원(所願)하게 한다. 하느님은 초월적(超越的)이고, 동시에 내재적(內在的)이다. 초월적이라는 이유는 하느님이 사물들보다는 무한하게 상위적이면서 사물들과는 분명히 동일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은 내재적인데, 그 이유는 모든 실재가 신의 현현(顯現)이며,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 터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에게" (ex ipso et in ipso et ad ipsum) 있기 때문이다. ② 하느님의 이데아-로고스(Logos) : 자연의 둘째 구 분인 '창조되고 창조하는 자연' 은 하느님의 말씀 안에 존재하는 피조물의 종(種)의 모형인(模型因)이다. 하느 님은 자기 자신을 아는 동시에 '로고스' 로서 일체 만물 의 원형이고 모든 이데아를 그 속에 갖는다. 이러한 하느 님은 자기를 나타내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비규정적 인 하느님은 규정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스스로를 파악 하는 것과 같다. 그때 하느님은 자신 안에서 만물의 원초 적 원인들(primordialis causae) 혹은 원초적 모형들(primordialia exempla)로 개념된다. 따라서 원초적 모형들은 신 · 말씀 · 로고스 안에 실재하는 개념 지어지는 모든 사 물들의 모형이 되는 이데아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로고 스는 이데아들에 의해 생겨난 한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데아 자체들과 동일시된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의미에 서 그것은 이데아들의 전체성이며 일성(一性)인 한에서는 구분된다. 그러므로 무로부터의 참되고 고유한 창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째 단계는 신플라톤적으로는 신의 하강과도 같다. 한편 하느님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 해, 즉 자신을 자기 자신에게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이데 아들, 그의 규정들 그리고 세계 존재들을 산출해야만 한 다. 신적 발현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자신을 위한 필연성 이다. 하느님은 아직 자신의 신현(神顯)에 있어서 시간 안에서 선행하는 것으로 개념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 은 시간에 선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본성적으로 시간보다 상위적이다.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있지 않았다. 신은 영원한 까닭에 그의 신현 역시 영원하다. ③ 피조물-세계와 인간 : '창조되고 창조하지 않는 자 연' 은 자연계의 피조물이다. 원초적 원인들은 그 결과들 을 산출한다. 신체적 혹은 비신체적 실재들 즉 물질적 혹 은 비물질적 실재들은 그 결과에 해당한다. 그것들은 원 인으로서의 신현이다. 따라서 신은 자신의 불변성을 상 실함 없이 개별 존재들 안에 현존하며, 모든 것의 본질이 고 자연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들에 있어서 자연만이 고유하게 참으로 존재한다고 주장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하느님과 피조물이 두 개의 구별된 존재라고 믿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유일하고 동일한 것이다. 이는 범신론 적인 유출설(流出說)의 한 유형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 지만 그는 하느님의 선(善)이 만물을 무로부터 창조했다 고 주장함으로써 신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결합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④ 하느님에게 회귀(reditus) : 이는 자연의 진행 과정 중 마지막인 '창조하지도 않고 창조되지도 않는 자연' 의 단계이다. 만물은 종국이며 목적인 하느님에게로 귀환한 다. 이 단계는 우주적 운동이 끝나게 될 때,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서 무효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데에서 에리우제나는 이와 다르게 말하기도 하였다. 즉 실재는 자신의 신적 기원에서 무효화되지 않고 유성(有 性)을 상실함 없이 거의 신성화된다. 그것은 특별히 인 간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는 한마디로 피조물이 그 원초적 원인에 대응하는 결정적 회귀 운동이다. 〔의미와 영향〕 에리우제나의 사상 체계에서 주목할 만 한 것은 일성(一性)에 관한 뜻 깊은 요청이다. 그의 사유 체계는 범신론적 영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일성에 대해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유일신적 범신론처럼 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에리우제나의 사유 체계는 우아하고 힘이 있으며 종합적인 힘을 갖추 고 있다. 역사 안에서 그의 사상은 괄목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당대 프랑스의 여러 학파들뿐만 아니라 12~13세기에 걸쳐 다양한 학자들에게, 그 후에는 신비 주의와 범신론적 사상 체계 즉 에카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와 쿠사의 니콜라오(Nicolaus Cusanus, 1401~ 1464), 스피노자(Banch de Spinoza, 1632~1677), 그리고 헤겔(G.W.F. Hegel, 1770~1831)과 그 추종자들의 관념론(觀 念論) 등에 영향을 미쳤다. (→ 디오니시오, 아레오파지 타의 ; 신플라톤주의)
※ 참고문헌 J. Scotus Eriugena, Johannis Scoti Opera quae supersunt Omnia, 《PL》 122, ed. H.J. Floss, Paris, 1853/ Enciclopedia Filosofica, vol. 7, Roma, Epidem, 1979, pp. 531~537/ The Catholic Encyclopedia for School and Home, vol. 4, New York, Grolier, 1965, pp. 100~101/D. Moran, The Philosophy of John Scotus Eriugena : A Study of ldealism in the Middle Ages,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89/ J.J. O'Meara, Eriugena, Clarendon Press, 1988/ U. Galeazzi, Dio e mondo in G. Scoto Eriugena, Riv. Filoso. neosc., 1966, pp. 629~652. 〔金顯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