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나 (6세기)
〔라〕Aemil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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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성녀. 동정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의 세 명 의 고모 가운데 한 명. 축일은 1월 5일. 〔생애 및 전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복음서에 대 한 설교집》(Homiliae in Evangelia)에서 세 명의 고모들, 즉 신심이 출중하였던 타르실라(Tasilla)와 고르디아나(Gordiana)와 에밀리아나에 대한 추도사를 서술하고 있다( Ⅱ, 38, 15 ; PL 76, 1291). 이들 세 자매는 고대 교회에 있었 던 금욕 가정 혹은 가정 수도원의 전통에 따라 가정에서 엄격한 공동 생활을 하였다. 특히 첫째인 타르실라와 에 밀리아나는 혈연적 유대보다 더욱 강한 마음의 일치와 사랑의 유대로 결합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지방관 의 후원으로 클리부스 스카우리(Clivus Scauri)에 있던 아 버지의 집에 기거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마치 수도 생 활을 하듯이 생활하였으며, 영성 생활에 있어서 원숙한 단계에 이르렀다. 고르디아나도 이에 함께 동참하였으나 침묵과 은둔 생활을 어려워했기 때문에 후견인과 결혼하 는 길을 택하였다. 그러나 타르실라와 에밀리아나는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을 체험하면서 그들이 선택한 삶을 죽기까지 지속하고 보존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에 의하면, 먼저 죽은 언니 타르 실라가 어느 날 밤에 그들의 증조부인 교황 펠릭스 2세 (483~492)와 함께 에밀리아나에게 발현하여 그녀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예고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펠릭스 2 세는 그녀에게 "오라, 나는 너를 빛의 집에 받아들이리 라고 말하며 그녀를 위해 마련된 자리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환시를 체험한 이후, 에밀리아나는 곧 병이 들었다. 그녀는 6세기 중반 또는 말엽 예수 성탄 대축일 과 주님 공현 대축일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사망한 후 사람들은 오랫동안 무릎을 끓고 기도 한 그녀의 열심한 기도 생활을 입증하는, 무릎에 생긴 혹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공 경〕 에밀리아나의 축일을 1월 5일로 기념하는 것 은 임의대로 정해진 것이다. 고대의 순교록들에는 에밀리아나 성녀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지만 교황 그레고리 오 1세는 실제로 이 성녀의 기일을 기념하였다. 이것이 곧 사람들로 하여금 성녀를 기억하도록 만들었으며, 바로니오(Baronius Caesariensis, 1538~1607)가 《로마 순교록》 (Martyrologium Romanum) 개정판에 1월 5일을 축일로 성녀의 이름을 수록하였다.
※ 참고문헌 M. Puzicha, 《LThK》 1, p. 183/G. Bardy, 《cath》4, pp. 53~54.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