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너, 페르디난트 (1882~1931)
〔독〕Ebner, Ferdin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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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오스트리아의 사상가이자 철학자. 부버 (M. Buber, 1878~ 1965)와 함께 대화적 인격주의(Der dialogische-Personalismus) 혹은 나와 너(당신)의 철학(Die Ich-Du-Philosophie)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생애와 저서〕 1882년 1월 31일 오스트리아의 빈에 서 62세의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여섯 번째 로 태어났다. 나이 차이가 많았던 형제들은 유복한 삼촌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에브너는 거의 혼자 자라다시피 하였다. 후에 삼촌의 상속인이 된 누나 안나(Anna)가 에 브너의 교육을 전적으로 떠맡으면서 에브너에 대한 부모 의 영향은 약해졌다. 에브너는 늙은 아버지와 병든 어머 니 그리고 호감이 가지 않는 누나 사이에서 겪는 상이한 환경 때문에 주기적으로 우울증에 빠졌으며, 이는 그의 성장과 정신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신앙심 깊은 부모의 종교적인 생활 방식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종교 적이기보다는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인 가치관을 형성해 갔다. 그러나 학교 교육을 거의 마칠 무렵 이러한 그 의 입장은 점차 사라지고, 종교적인 신앙심이 점차 깊어 졌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1902~ 1903년에 범신론적으로 흐르기도 하였다. 1903년 가을 83세로 세상을 떠난 아 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체험하면서 그의 내면에 신앙심 이 새롭게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신앙의 전환이 이 듬해에 발표된 <골고타>(Golgotha)라는 시(詩)에서 발견 된다. 이 시에서 에브너는 아버지 생존시에 아버지에 대 하여 오해하고 잘못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과 십자가에 대한 자신의 죄성(罪性)을 투명하게 고백하고 있다. 본 래 문학적 소양이 깊었던 그는 17세에 12편의 희곡을 습작해서 그중 몇 편은 완성하였다. 18세 때 이후 25년 간 마음속으로 사랑하였던 10년 연상의 여인 카르피쉐 크(Luise Karpischek)를 만났다. 그녀는 에브너에게 있어 서 인간적 너(당신)로 구체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서, 에브 너의 문학적 경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때로는 에브너 작품(시와 산문)의 독자가 되어 주기도 하는 등 두 사람의 정신적 교감은 오랫동안 편지와 방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발데그(Waldegg)에서 초등학교 보조 교사로 재직하던 시기(1902~1912), 특히 1909~1910년에 에브너의 관심 은 문학에서 철학으로 전환되었다. 당시 그는 철학서들 을 읽는 것 외에도 자신의 정신 세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세 사람, 즉 후에 작곡가가 된 하우어(J.Hauer), 빈 대학 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현대적인 정신 사상을 지닌 로이세르(J. Raeuscher) 그리고 미학도인 차 이트링거(L. Zeitlinger)를 만났다. 이들과의 인간적인 교 류는 에브너의 사유 체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발데그에서 생활하던 끝 무렵 에브너는 혼자 철학 연구 에 몰두하면서,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의 사상 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윤리학에 관한 잠언》(Aphorismen der Ethik)을 저술하였다. 이후 1912년 10월 그는 정식 교사 발령을 받아 빈의 외곽 지역인 가브리츠(Gablitz)로 이주하였다. 여기서 그는 1914년에 12장으로 구성된 《윤리학과 삶―개인의 실존에 관한 형이상학적 단편》 (Ethik und Leben―Fragmente einer Metaphysik der individuellen Existenz)을 완성하였다. 이 방대한 저서는 1911~ 1912년 사이에 주로 집필된 것으로서 베르그송의 영향 을 받아 시작되었으나 점차 자신의 독자적 사상의 진가를 드러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에브너의 주된 관심사가 개인에서 사회로 확대되도록 만든 사건이었다. 그는 건강상의 이 유로 병역을 면제받고 전쟁 중 빈민 구제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식료품 카드를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 기도 하였다. 이 당시 에브너는 셀링(F.W.J. von Schelling, 1775~1854)의 사상에 심취하여 관념론자로 변신하기도 하지만,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 1813~1855)의 《공 포와 전율》 · 《불안의 개념》 · 《철학적 단편》 등을 읽고 곧바로 그의 삶과 사상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또한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의 저서와 복음서를 읽고 1916년 이후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게 되었으나, 가톨릭 교회를 향한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전쟁 동안에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인 참여를 보고 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집필된 에브너의 논문들 중 <표 현의 분개>(Aergernis der Repraesentation, 1922), <그리스도 에 관한 논제>(Die Christusfrage, 1922), <그리스도의 현존> (Die Wirklichkeit Christi, 1926), <언어와 말의 문제에 관하 여>(Zum Problem der Sprache und des Wortes, 1928)는 이러한 에브너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들이다. 1918년 여름 에브너는 《말》(Das Wort)을 집필하기 시 작하여 그 해 10월 인쇄할 계획이었으나 종전에 따른 어 수선한 상황 때문에 포기하였다. 이듬해 12월 그는 《정 신적인 단편》(Pneumatologische Fragmente》을 집필하였다. 이 두 저서들은 《말과 정신의 실재》(Das Wort und die geistigen Realitaeten)라는 제목으로 1921년에 출판되었다. 다 시 강단으로 돌아간 에브너는 집필에 몰두하여 <하느님 과 믿음에 관한 지식>(Das Wissen um Gott und der Glaube) 등 다수의 논문들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1923년 에브너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강했던 우울증 에 시달렸다. 그 해 1월 교육 당국에 의해 임시로 맡게 된 교장직 때문에 정신적 · 신체적으로 고통을 겪은 그는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였다. 이 당시 여러 정기 간행물 들의 편집을 요청받았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한편 에브 너는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을 돌보아 준 동료 교사 미체라 (Maria Mizera)와 1923년 10월 7일에 결혼하여 1년 후 아들을 얻었다. 그 사이에 에브너는 교사직을 그만두고 집필에 몰두하여 <나의 정신적 삶의 진행사에 관한 기 록>(Notizen meines Geschichte meines geistigen Lebensgangs) 등 다수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1929년 그는 후에 자신의 유고의 첫 번째 편집인이 되는 시인이며 화가인 요네(Hildegard Jone)를 만났다. 그 리고 그 무렵 새로 부임한 호프슈테터(Heinrich Hofstaeter) 신부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마지막 방향 전환을 하였다. 그의 정열적인 창작력은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 자신 의 죽음을 예견한 에브너는 호프슈테터 신부에게 20년 만에 처음으로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받고, 1931년 10 월 17일 사망하였다. 《잠언 1931》(Aphorismen 1931)이 에브너 사후에 요네에 의해 《말과 사랑》(Wort und Liebe)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사 상〕 에브너가 철학에 몰두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인간에 관한 문제로서 특히 '나-너(당신)-관계'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그가 전쟁 동안에 인 간의 '너(당신)의 상실' 을 체험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는 모든 객관적 인식의 토대로서 나-너(당신)-관계를 주장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나-너(당신)를 나 자신의 존 재와 다른 모든 실재보다 상위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세 계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기존의 사상에 대항하였다. 그에 의하면, 나-너(당신)-관 계는 실재(die Realitaet)이며, 이 관계로 인하여 나는 세계 가 실존하고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 서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자아 고독에 묻힌 고립된 현 존 재가 아니다. 자신을 고립시켜서 나 혼자 있는 것은 인간 의 정신적인 삶에서는 근원적인 사실이 아니기에, 마땅 히 고립된 나란 인간의 가능한 실존의 형태가 될 수 없 다. 이러한 에브너의 사상은 윤리학적으로는 개인주의 에, 인식론적으로는 주관주의에 대립하는 것이었다. 에브너는 "나의 실존은 항상 너(당신)와의 관계에서 가치 있다"고 말하면서 나의 본성이 너와의 상호 관계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에브너는 실존적 관계가 생겨 나는 매개물을 말(das Wort)과 사랑이라고 표현하면서, 말과 사랑을 나와 너(당신) 관계의 대화로 이해하였다. 나의 심층과 나의 고유 존재(Eigensein)는 너(당신)와의 대화(말)에서 일깨워지며, 내가 단순히 나의 존재를 벗어 나 너(당신)의 요구에 응하는 사랑에서 나-너(당신)-관계 는 성립된다. 따라서 에브너는 사랑이 없는 대화(말)를 생명력이 없는 기호와 같다고 말하였다. "진정한 대화 (말)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는 사랑을 갖는 것이다." 그런 데 인간적인 나는 하느님 앞에 있으며, 하느님의 사랑에 사로잡힌다. 에브너의 인격 사상은 인격 존재인 나와 하 느님인 너(당신)의 관계가 중심을 이룬다. 그에게 있어서 두 정신적인 실재인 나와 너(당신)는 곧 "하느님과 인간 이다." 하느님은 세계를 창조하였으며,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에브너는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 다. 단지 "유일한 나"가 있는데 이 유일자(das Einzige)로 서의 나는 하느님 앞에 있다. 마찬가지로 단지 "유일한 너(당신)"가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이다. 그리하여 에브너 에게 있어서 진정한 너(당신)는 실제로 다른 인간이 아니 라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이다. 에브너의 이러한 사상은 너(당신)를 인간에게서 발견할 수 없다는 키에르케고르 의 사상과 직접적으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서 인간은 하느님과의 상호 관계에서 비로소 인격이 완 성된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인격은, 과르디니(R. Guardini, 1885~1968)가 주장하듯이, 인간이 하느님에 의해서 부름받음으로만 가능하고 이러한 부르심에 의해서 진정 한 나-너(당신)-관계가 성립한다는 견해와는 다르다. 에 브너가 말하는 인격은 하느님의 부르심만으로는 충분하 지 않고, 오히려 이 부르심이 인간에 의해서 긍정되고 승 인되어야만 한다.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단순 히 하느님이 인간의 너(당신)이기에 인격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하느님을 인간 자신의 너(당신)로 지정함 으로써 인간은 인격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인 "나는 바 로 너(당신)와의 관계를 인정하거나 부정하거나에 따라 너와의 관계에서 진보하거나 퇴보하는 어떤 것이다." 에브너는 영혼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자신에게만 관계하는 고독한 영혼(Psyche)이고,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을 넘어 너(당신)와 관계하는 영혼(Pnema)이다. 그중에서 에브너는 두 번째 영혼에 더 큰 비중을 두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너(당신) 즉 하느님과 관련된 실존으로 서의 정신(Geist)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정 신은 자율적인 자기 결단을 요구하지 않고, 너(당신)의 주장에 대한 답변을 요구함으로써 너(당신)와 함께 대화 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인간 존재의 본성은 대화적 관계 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념론은 자아 고독에만 묻혀서 타자의 요구에는 관심도 없이 더구나 인간과 하느님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에브너는 관념론의 이러한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 하는 인간 이해를 하나의 허구로 간주하고 강하게 비판 한다. 〔의 의〕 대화 철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부버의 사상 이 유대적인 사상에 기초한 것이라면, 나와 너(당신)의 활력 있는 관계에서 인간 실존과 인간 고유 존재를 발견 한 에브너의 대화 철학은 그리스도교 사상이 그 초석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대화, 철학에서의 ; 부버, 마르틴)
※ 참고문헌 F. Ebner, Das Wort und die geistigen Realitaeten, Innsbruck, 1921/ ―, Wort und Liebe, Regensburg, 1935/ M. Buber, Werke 1, München, 1962/ 이경원, <과르디니의 대화적 인격 이해>, 《가톨릭 철 학》 창간호, 가톨릭 철학회, 1999, pp. 169~184. 〔李敬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