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온파

〔그〕Eβιωναῖοι · 〔라〕Ebionaei · 〔영〕Ebion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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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왼쪽)와 18세기의 에스델서 두루마리로, 부림절에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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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왼쪽)와 18세기의 에스델서 두루마리로, 부림절에 읽혀졌다.

교회 초기에 융성하였던 유대계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이자 이단. '가난한 이' 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에베오님" (אֶבְיוֹנִים)에서 유래한 이름 자체가 보여 주듯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하였다.
〔교회의 입장〕 이 파는 본래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 요르단 강 지방에 자리잡은 정통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모세의 율법에 충실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론과 모세 율법의 구속력에 대해 이단적 주장을 내세우면서 교회와 단절되었다. 하지만 4세기경에도 에비온파는 여전히 존속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팔레스티나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과 시리아에 정착하였으며, 뒤에 소아시아 · 이집트 · 로마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파를 이단으로 규정한 첫 교부는 이레네오(Irenaeus, 130~200)이다(Adversus Haer. I, 26, 2). 그리고 유스티노(100~165) 이후 에비온파는 더 이상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간주되지 않았다. 오리제네스(Origenes, ?~254)는 이집트에서 에비온파라고 불리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의 존재에 대해 기술하면서(De principiis IV, 3, 5), 이들이 누룩 없는 빵으로 미사를 봉헌하였다고 적고 있다(Math. comm. ser. 79). 또한 에비온파라는 말이 '가난한 이' 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하였음을 전제하면서, 에비온파라는 단어 자체가 이들이 '이해하는 데 있어서 빈약함' 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고 설명하였다(De principiis Ⅳ, 3,8). 테르툴리아노(Tertullianus, 160~223)에 따르면, 에비온(Ebion)이라는 인물이 이 파의 주창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De praescr. haer, Ⅳ, 8).
에피파니오(Epiphanius, 315~403)는 자신의 저서에서 많은 유대계 그리스도교 작품을 인용하면서 에비온파를 기술하였다. 에피파니오는 이들이 그리스도가 각 시대에 주기적으로 발현하였고, 이방인들과의 접촉이 금지되었고, 정화 예식이 수용되었으며, 예언자들이 배척되었다고 주장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 중 일부 사상은 엘사이파(Elcesaiti)가 주장한 것이기도 하며, 에비온파에 대한 옛전승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에파파니오는 엘사이파의 주장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진일보한 것으로 보고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현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엘사이파가 유대계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레네오와 오리제네스가 기술하는 것과는 다른 유대계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이기 때문이다.
〔주요 교리〕 이 파의 주요 교의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에비온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다. 오히려 예수를 '단순한 인간' (undus homo)으로 이해하였다(Teryulliano, De carni Christi 14). 즉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며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의 모습으로 내려온 성령의 빛을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비온파는 성부의 말씀이며 지혜로서의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부정한다. 단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내려오신 성령을 통해 메시아로서의 사명에 필요한 힘을받았을 뿐,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기에 모세, 솔로몬, 요나, 그리고 다른 예언자들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모세의 율법에 대한 존중과 엄수이다. 그래서 모세 율법과의 유대를 강조하고 있다. 에비온파는 구약성서, 특별히 모세 오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이들 중 히브리어 원문으로 성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대부분 그리스어 번역본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서 옛 계약이 새로운 계약의 서막 혹은 준비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구약성서는 그 안에 기록된 모든 계명이나 준수 사항들과 함께 가치를 계속 유지하고 계속해서 준수해야 할 사항으로 간주하였다. 더욱이 에비온파는 예수의 권위와 모범이 이것에 근거하고 있다고 가르쳤다. 율법에는 하느님의 뜻을 왜곡한 내용이 첨가되어 있는데, 예수는 율법의 개혁을 통하여 이 거짓 요소들을 제거하였다고 가르쳤다. 그는 모든 제사 형식의 예배를 배척하였고, 따라서 그의 죽음은 제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 에비온파는 제사를 청빈 생활과 재산의 공유로 대치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화를 위해 매일 목욕을 하고, 빵과 물의 회식에 참여하였으며 안식일과 주일을 준수하였다. 한편 신약성서에 대해서 확실한 것은 바오로 서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서간, 야고보 서간, 요한의 서간 등에 대해서는 어떠했는지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히브리 복음서' 를 사용하였는데, 이 복음서는 마태오 복음서의 변형본이다. 하지만 예수의 족보나 동정녀가 임마누엘을 탄생하리라는 이사야서의 예언, 초자연적인 잉태, 동방 박사의 방문 등은 삭제되었다. 또한 교의적 관심사에서 마태오 복음의 여러부분의 본문을 삭제하거나 변형시켰다.
셋째로, 에비온파는 바오로의 사상을 배척하였다. 그래서 신약에서 바오로 서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에 의하면 바오로는 참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고 이방인이라고 하면서, 대사제의 딸과 결혼하지 못해 실의에 빠진 후 유대교를 배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율법을 가장 철저하게 반대한 인물로서 예수의 참된 사상을 왜곡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바오로는 사도적 직분을 부여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예수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만 부여되는 직책이 사도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오로가 주장하는 사도적 성소는 발현과 계시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악마가 조작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넷째로, 삼위 일체 교리를 부정하였다. 에비온파는 삼위 일체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였던 구약성서의 구절들을 거부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구원론적 의미를 거부하였다. 메시아의 사명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완수되는 것이지, 구원의 특별한 행위나 인간 구원을 위한 죽음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의 죽음이 구원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순간에 그에게서 떠났기 때문이다. (→ 이단)

※ 참고문헌  G. Bareille, Dictionnaire de Théologie Catholique 4-2, pp. 1987~1995/ F.L. Cross · E.A. Livingstone,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3rd ed., 1997, p. 523/ G. Gennaro, Enciclopedia Cattolica 5, Citttà del Vaticano, pp. 3~4/ A.F.J. Klijn, Dizionario Patristico edi Antichità Cristiane 1, Marietti, Casale Monferrato, 1983, pp. 1047~1048/F.S. Jones, Encyclopedia of Early Christianity, Garland Pub., 2nd ed., 1997, pp. 357~358. 〔邊宗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