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게 된 아이들에게 가족을 대체해 줌으로써 자립할 때까지 보호 양육하는 사회 복지 단체. SOS란 "우리들의 영혼을 구해주소서"라는 뜻의 'Save Our Souls' 의 약자이다. 대구 · 서울 · 순천 세 곳에 설립되어 있으며, 대구와 서울은 가톨릭에서, 순천은 프로테스탄트에서 그 운영에 관여하고있다. 한국 본부와 대구 마을은 대구시 동구 검사동 962-5번지, 서울 마을은 서울시 양천구 신월3동 149-7번지, 순천 마을은 전남 순천시 와룡동 158-6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어머니 1명과 6~8명의 어린이가 한 가정을 구성하며, 10~15가정이 하나의 SOS 어린이 마을을 형성한다. 어린이 마을에서 성장한 소년들은 15세가 되면 부속 시설인 청소년 마을로 옮겨 생활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3년의 자립 기간이 지나면 독립하게 된다. 대구대교구장 이문희(李文熙, 바오로) 대주교가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장효원(張曉沅, 요셉) 신부가 한국 본부장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의 SOS 어린이 마을〕 SOS 어린이 마을은 1949년 오스트리아의 티롤(Tirol) 지방 임스트(Imst)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헤르만 그마이너(Hermann Gmeiner, 1919~1986)는 전쟁 중에 고아가 된 아이들이 가정적인 환경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이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가정의 울타리 밖으로 내쳐진 아이들에게 어머니 · 형제 자매 · 집 · 마을 등 정상 가정과 흡사한 환경을 제공해 줌으로써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던 것이다.
이 사업은 시작과 더불어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당초 계획했던 규모를 훨씬 뛰어넘어 새로운 마을들이 설립되었고, 수많은 후원자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1959년 유럽에 10개 이상의 SOS 어린이 마을과 100만 명 이상의 정기 후원자를 확보하였고, 이듬해에는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Innsbruck)에 SOS 국제 본부를 창설하였다. 또 1963년에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로 확산되었고, 독일 뮌헨에 헤르만 그마이너 재단이설립되었다. 이듬해에는 개발 도상국의 SOS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덴마크 · 노르웨이 · 스웨덴 · 네덜란드 · 스위스 · 미국 등에 자매 본부가 설립되었으며 1970년에는 아프리카 최초의 SOS 어린이 마을이 코트디부아르(Côte d'Ivoire)에 생겨났다. 이후 SOS 어린이 마을은 꾸준히 확대되어 1987년에는 중국에 2개의 어린이 마을이 탄생하였고, 1989년에는 미국으로, 1991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으로까지 진출하였다. 그런 가운데 SOS 국제 본부는 1995년에 유엔 경제 사회 이사회의 비정부 조직(NGO) 자문 기구가 되었고, 1996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진출함으로써 5대륙 모두에 SOS 어린이 마을이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1999년 현재 131개 국에 343개의 어린이 마을과 1,005개의 부속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한국의 SOS 어린이 마을〕 한국에 SOS 어린이 마을이 시작된 것은 1963년이다. 당시 선교를 위해 한국에 와 있던 하 마리아(Maria Heissenberger)는 1962년 휴가차 고국인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헤르만 그마이너를 만나 한국에도 어린이 마을을 설립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헤르만 그마이너는 이듬해 한국을 방문하여 고아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뒤, 대구대교구의 서정길(徐正吉, 요한) 대주교와 협의하여 어린이 마을의 설립을 결정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쌀 주머니 2개를 가져갔는데, 이 쌀을 한 알씩 포장하여 유럽 각국의 SOS 마을과 후원 단체에 보내 1달러와 바꾸는 '쌀 한 알 캠페인' (Ein Reis-korn fur Korea)을 전개하였다. 이 캠페인은 엄청난 호응을 얻었으며, 그 결과 1965년에 '대구 SOS 가정' 15동(棟)을 건립할 수 있었다. 한편 1979년에 다시 한국을 방문한 헤르만 그마이너는 보사부 장관과 합의하여 서울에도 SOS 어린이 마을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이듬해 신월동에 부지를 매입하고, 1982년에 '서울 SOS 가정' 15동을 준공하였다. 한편 1981년에는 전남 순천의 '삼세 보육원' 이 독지가를 찾던 중, 독일 가롤로 수녀회의 주선으로 SOS 국제 본부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SOS 국제 본부에서는 삼세 보육원을 답사한 후, 이를 '한국 SOS 어린이 마을' 에 가입시키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순천 SOS 가정' 10동을 건립하였다. 그 사이 확대되는 어린이 마을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981년 대구 마을 내에 '한국 SOS 본부' 가 창설되었고, 1990년에는 본부 건물을 마련하였다.
어린이 마을에서 성장한 아이들 가운데, 소년들은 보통 15세 이상이 되면 어린이 마을의 부속 시설인 청소년 마을에서 생활하게 된다.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자립에 필요한 준비를 하게 되는데, 대구에는 1972년에, 순천에는 1982년에, 서울에는 1988년에 각각 청소년 마을이 설립되었다. 어린이 마을과 청소년 마을에서 생활한 청소년 · 소녀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자기 적성에맞는 직업을 선택하여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보통 2년 안에 자립하도록 요구하지만, 실제 독립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에 SOS 어린이 마을에서는 이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삶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 자립 준비관(생활관)을 설립하였다. 이곳은 직장을 가지고 사회 생활을 하는 청소년 · 소녀들이 2~3년 동안 기숙하는 곳으로, 1990년에 대구에 '여자 자립 준비관' 이, 1995년에는 대구의 삼덕동과 서울 · 순천에 '자립 생활관' 이 건립되었으며, 1999년에는 대구 검사동에도 자립 생활관이마련되었다. 이외 부속 시설로는 1992년 포항에 세워진SOS 교육관과 1999년 11월 대구에 설립된 'SOS 정서장애 아동 복지 센터' 및 대구(1965) · 서울(1982)에서운영하는 유치원 등이 있다. 2001년 1월 현재 대구 SOS 어린이 마을에는 13개 가정에 116명의 아동이 생활하고 있으며, 서울에는 15개 가정에 135명의 아동이, 순천에는 10개 가정에 111명의 아동이 생활하고 있다. 〔方相根〕
에스 오 에스 어린이 마을
〔영〕S.0.S. Children's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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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서울 신월3동에 소재한 에스 오 에스 어린이 마을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