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로마의 동정 순교자. 축일은 12월 25일. 〔생애 및 전설〕 여러 오래된 전기를 통해 전해 오는 전설에 따르면, 에우제니아는 로마 황제 콤모두스(Commo-dus, 180~192) 시대 때 이집트의 집정관이었던 필립포스(Philipos)의 딸로서,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헬리폴리스(Helipolis)의 주교인 헬레노(Helenus)에게서 세례를 받은 그녀는, 환관인 프로토(Protus)와 히야친토(Hyacinthus)의 도움으로 남장을 하고 남자 수도원에 입회하였으며, 그 후 수도원 원장이 되었다. 그러던 중 황제에게 고발되어 아버지의 법정 앞에 끌려가 진상을 밝혀야 하였는데, 결국 그녀는 아버지를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며, 개종한 뒤 그녀의 아버지는 순교하였다. 그 후 에우제니아는 로마로 가 그곳에서 동정녀들의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253~260)와 갈리에누스(Gallienus, 253~268) 황제들의 박해로 그리스도교 신자로 고발되어 로마의 여신 다이아나(Diana)의 신전으로 끌려갔으나, 이때 갑작스럽게 여신상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래서 박해자들은 그녀를 돌로 친 다음 강물에 던졌다. 그러나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 다시 불속에 던져 버렸는데 그래도 죽지 않자, 그녀를 감옥에 가두고 먹을 것을 일체 주지 않았다. 그녀는 발현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음식을 받아 먹고 목숨을 부지하였다고 한다. 에우제니아는 참수형을 받았는데, 형 집행이 끝나자 곧 기이하게도 산사태가 일어났다고 한다.
〔전기와 공경〕 에우제니아의 생애를 다룬 전기는 일반적으로 대중적인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한데 엮은 것으로 두 개의 라틴어 개정본이 전해지지만, 각각 서로 다르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 여러 개의 그리스어 개정본도 있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메타프라스테(Metaph-raste)의 그리스어본이다. 그 밖에 시리아본 · 에티오피아본 · 아르메니아본이 있다. 에우제니아의 전기에는 교황 소테르(166~174?)와 고르넬리오(251~253), 그리고 순교자 프로토 · 히야친토 · 바실라(Basilla) · 헬레노와 같은 4세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의 이름과 콤모두스 황제 치세 때 직무를 수행한 페렌니(Perennis)의 총독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녀의 유해는 로마의 라티나 가도(Via Latina)에 있는 아프로니아노(Apronianus)의 묘지에 묻혔다. 전기에 따르면 그녀에게 봉헌된 성당이 8세기의 교황들 특히 하드리아노 1세(772~795)에 의하여 복원되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이 성당은 남아 있지 않다.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과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에는 에우제니아가 전기에서 전하는 바와 같은 장소에 묻힌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순교한 날짜는 12월 25일로 기록되어 있다.
※ 참고문헌 G. Bardy, 《Cath》 4, p. 679/ H. Grieser, 《LThK》 3, pp.983~984/ Les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nnaire hagiographique, Belgique, Brepols, 1991, p. 178. 〔梁蕙貞〕
에우제니아 (3세기)
〔그〕Eug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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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