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가장 유명한 네덜란드의 화가. 초기 플랑드르(Flanders) 회화의 창시자.
에이크의 출생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그의 형으로 추정되는 휘베르트(Hubert van Eyck, +1426)에 관한 기록 역시 확실하지 않아 에이크의 작품에 그가 어느 정도 관련 되어 있는지를 추정하기가 매우 힘들다. 헨트(Gent) 제단화에 새겨져 있는 글에 따르면, 형인 휘베르트가 시작하고 동생인 에이크가 완성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글의 진위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또한 이 제단화 외에 휘베르트의 작품으로 알려진 작품들이 없기 때문에 학자들 중에는 그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휘베르트의 양식을 에이크가 완성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에이크에 대한 최초의 기록에 따르면 1422년 헤이그에서 그가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1425년 이후에는 부르고뉴의 필리프 3세 공작의 궁정 화가로서 활동을 시 작하면서 '헨트 제단화' 를 제작하는 한편, 공작을 대신하여 외교 사절로서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여행하였다.
제작 시기가 알려진 그의 작품들은 모두 1432~1439년 사이에 브뤼주(Bruges)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기의 경력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1432년에 완성된 헨트 주교좌 성당의 거대한 제단화를 기점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작품은 1426년 형 휘베르트가 착수하여 1432년에 에이크가 완 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체 제단화의 주제는 그리스도에 의한 속죄이며, 장대한 구상과 사실적으로 그려진 세부 묘사 등으로 플랑드르 회화의 기념비적인 작품 으로 꼽힌다.
그의 유명한 또 다른 작품은 <아르놀피니 결혼>(The Arnolfini Marriage, 1434)으로 불리는 아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이다. 이는 이탈리아의 상인인 아르놀피니(Giovanni Arnolfini)가 자신의 약혼녀인 체나미(Giovanna Cenami)의 손을 잡고 서서 결혼의 맹서를 하고 있는 순간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뒷면의 벽에 걸려 있는 볼록 거울에 그 방의 입구에 서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이 비쳐진 것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에이크가 두 사람의 결혼 서약에 증인으로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여러 소품들은 결혼에 연관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가 정교하게 형상화한 종교적인 상징주의를 보여 주고 있는 이 작품은 객관적인 사실주의와 정신성이 융합된 그의 원숙기의
걸작이다. 에이크는 1441년 사망하여 브뤼주에 있는 생도나티앙 성당에 묻혔다.
바사리(G. Vasari, 1511~1574)를 포함한 작가들은 에이크가 유화를 발명했다고 주장하였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유화 기법을 발달시킨 것은 에이크였음이 확실하다. 즉 안료와 반짝이는 면을 여러 층으로 구사한 세부 묘사, 각각 다른 재질감의 사실적인 묘사,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명확한 빛의 효과는 에이크만의 특성이며, 이에 견줄 만한 화가가 없을 정도이다. 공간과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의 처리는 무한정 작거나 무한정 크거나 간에 모든 종류의 주제를 망라하는 그의 능력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해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는 "에이크의 눈은 현미경이기도 하면서 또한 망원경이기도 하다" 라고 평하였다. 한편 그의 작품이 깊은 종교성과 상징성을 보여 주는 면에 있어서 는 여전히 중세적이라 할 수 있다.
에이크의 영향은 플랑드르 지방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나라에까지 파급되었다. 그는 당시 플랑드르의 문화 및 상공업의 중심지인 브뤼주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그의 작품이 근대 회화에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이탈리아의 마사초(Masaccio, 1401~1428)의 작품에 비길 만하다.
※ 참고문헌 The Illustrated Library of Art, Part 1, pp. 783~784/ <서양 미술사 1>, 《세계 미술 대사전》, pp. 294, 312. 〔鄭泳沐〕
에이크, 얀 반 (1390? ~ 1441)
〔네〕Eyck, Jan 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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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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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반 에이크 작품인 헨트 제단화(왼쪽)과 <아르놀피니 결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