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안드레아. 한국 이름은 옥낙안(玉樂安)
1884년 9월 21일 바이에른 지방에서 태어나 1909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12월 28일 입국하였다. 1911년 9월 베네딕도회가 백동(栢洞, 현 혜화동)에 설립한 승신학교(崇信學校)의 교장직을 맡았다가 그 해 말 기숙사 사감으로 전임된 그는, 1920년부터 베네딕도회가 원산대목구를 위임받게 되면서 이듬해 5월부터 1923년 11월까지 원산 본당 11대 주임을 역임하였으며, 그 뒤 팔도구(八道溝) 본당 5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1925년 10월까지 사목하였다. 서울의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는 도서관 관리를 맡는 한편, 새로 한국에 도착하는 선교사들에게 극동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쳤고, 1926년 9월부터는 물리학을 강의하였다. 경성 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에서 한때 중국어와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 에카르트 신부는 18개 국어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27년 10월 수도원이 덕원(德源)으로 완전히 이전되자, 이듬해 7월 시베리아를 경유하여 본국으로 돌아간 그는, 1929년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 대학에서 공부한 뒤 1931년 <한국의 학교 제도>(Das Schulwesen in Korea)라는 논문으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 교육학 연구소 동양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나 나치 정권에 의하여 연구소가 폐쇄되자 바이에른으로 돌아가 뮌헨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쳤으며, 이 무렵 수도회를 탈회하였다. 그는 독일에서 한국학(Koreanistik)을 출발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데, 한국 문화에 관한 저술을 여러 권 발간하였다. 1923년 한국어와 독일어로 된 《조선어 교제 문전〉(朝鮮語交際文典, Korea-nischen Konversations. Grammatik, Heidelberg)을 시작으로, 1929년에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알려진 《한국 미술사》(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 Leipzig ; A History of Korean Art, London)를 독일어와 영어로 출판했으며, 그 외에 《한국 음악사》(Koreanische Musik, Tokyo, 1930) · 《한국의 역사와 문화》(Korea : Geschichte und Kultur, Baden-Baden, 1960) · 《나의 한국 체험기》(Wie Ich Korea Erlebte, Frankfurt,1950) · 《오동나무 아래서》(Unter dem Odongbaum, Kassel,1955) · 《인삼 뿌리》(Die Ginsengwurzel, Kassel, 1955) 등이 있다. 1959년 그의 75세를 기념하여 축하 논문집인 《코리아니카》(Koreanica)가 증정되었으며, 1974년 1월 8일 그가 뮌헨에서 사망한 다음 독일의 한독 협회에서는 한국학 연구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에카르트 메달(Eckardt Medaille)을 제정하였다. (⇦ 옥낙안)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자료집 제2집,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1/,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최종고, 《韓獨交涉史》, 弘盛社, 1983/ , 〈在韓 선교사의 文化的 공헌>, 《교회와 역사》 179호(1990. 4), pp. 13~18/ 崔奭祐, (韓國 芬道會의 初期 修道生活과 教育事業〉, 《韓國敎會史의 探究》 Ⅱ, 한국교회사연구소, 1991. [崔起榮]
에카르트, 안드레아스 (1884~1974)
〔독〕Eckardt, And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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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에카르트 신부가 1923년 독일에서 펴낸 《조선어 교제 문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