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신비주의 사상가. 신학자. 철학자. 도미니코회 신부.
[생애 및 저서] 독일 중부의 튀링겐 지방 에르푸르트(Erfurt) 근처 호흐하임(Hochheim)의 기사(騎士)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청소년 시기에 에르푸르트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보냈다. 쾰른의 '수도회대학' (Studium Generale)을 거쳐 파리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였으며, 이어 대학에서 베드로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 1095~1160)가 집필한 《명제집》(命題集 , Libri Sententiarum)을 강의하였다. 1296년에 에르푸르트의 수도원장 그리고 튀링겐 지방의 관구장 대리가 되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첫 번째 독일어 저서인 《강화》(講 話, Reden der Unterweisung, 1294~1298)를 집필하였다.
1302년 파리 대학에 파견된 그는, 이듬해 교수 자격(Meister)을 획득한 뒤 강단에 섰는데 이때부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t)라고 불렸다. 이 첫 번째 파리 대학 교수 시기(1302~1303)에 저술된 저서가 세 개의 《문제집》(問題集, Opus Quaestionum)이다. 1303년 여름 도미니코회 독일 관구로부터 삭소니아 관구(Provinz Saxonia)가 독립하자, 그는 그 첫 관구장으로 임명된 데 이어 1310년에는 독일 관구(Provinz Teutonia)의 관구장으로 선출되었다.
1311년에 에크하르트는 또다시 파리 대학으로 파견되었다. 파리 대학의 교수직을 수행하던 이 시기(1311~1313)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분기점을 이루었다. 이때 라틴어로 된 주저 《삼부작》(三部作, Opus Tripar-titum)을 저술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저서의 전체 골격과 주요 부분들이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삼부작》의 첫 부분은 《명제집》(命題集, Opus Propositionum), 둘째 부분은 《문제집》(問題集, Opus Quaestionum) 그리고 셋째 부분은 《주해집》(註解集, Opus Expositionum)이다. 그런데 에크하르트의 이 라틴어 주저는 미완성 작품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삼부작》 속에는 신학자이자 철학자로서 그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1313년에 에크하르트는 파리 대학을 떠나 독일 관구에 속해 있는 슈트라스부르크(Straßburg)로 파견되었는데, 그 지역의 수녀원들을 돌보는 것이 긴급한 일로 대두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독일 관구장 헤르만(Hermam von Minden)은 "이 지역의 설교를 위해서는 유능하고 경험이 많을 뿐 아니라, 학식이 풍부한 수도자가 파견되어야 한다" 고 주장하고 있었다. 에크하르트의 슈트라스부르크 체류 시기(1313~132)는 그의 생애에서 또다시 하나의 분기점을 이루었다. 그 이유는 그가 저술한 대부분의 독일어 저서가 이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또 이 저서들 속에 '신비가' (神秘家, Mystiker)로서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는 1318년경 《신적 위로의 서(書)》(Das Buch der göttlichen Tröstung)를 저술하였는 데, 이 작품 속에는 <고귀한 사람>(Von edlen Menschen)이라는 그의 설교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신적 위로의서》는 그 내용상 에크하르트가 라틴어로 저술한 《삼부작》을 독일어로 해설한 책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신적위로의 서》와 <고귀한 사람>에서도 역시 신학자이자 철학자로서의 그의 면모가 드러나고 있다.
에크하르트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저서는 《독일어 설교집》(Deutsche Predigten)이다. 이 저서에서 '신비가' 로서의 신비 사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의 설교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설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슈트라스부르크 시기에 쓰여진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직책상으로 보아 에크하르트가 본격적으로 설교가로 활동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1323년 또는 1324년 에크하르트는 쾰른의 수도회 대학의 교수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1326년에 쾰른의 대주교 하인리히(Heinrich von Virneburg)는 에크하르트를 상대로 '이단 심문' (異端審問)을 시작하였다. 이에 에크하르트는 당시 아비뇽에 있던 교황청에 상소하였다. 1328년 에크하르트가 사망한 뒤 이듬해 3월 27일 교황 요한 22세(1316~134)는 교서 <인 아그로 도미니코>(In agro do-minico)를 통해서, 에크하르트의 가르침 중에서 17개 항목이 오류 또는 이단의 성격을 띠며, 11개 항목이 "잘못표현"되고 "대단히 모험적인" , "이단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판결하였다. 1980년 이후 도미니코회는 교황청에 에크하르트의 복권을 상신하고 있다.
[사 상] 사상의 기원과 계열 :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첫 째로 소위 '중세의 독일 철학' 그리고 둘째로 당시 라인 강가를 중심으로 발생한 '여성 신비 사상' (Frauenmystik)과의 대화 내지는 대결에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중세의 독일 철학' 이란 알베르토(Albertus Magnus, 1200~1280)에서 시작되어 디트리히(Dietrich von Freiberg, 1250~1310)를 거쳐 에크하르트에게로 이어지는 철학-신학 노
선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는 신플라톤주의가 두드러지게 수용되고 있다. 에크하르트는 라틴어 저서에서 바로 이러한 사상의 노선에 서 있다.
또 당시의 '여성 신비 사상' 이란 하데부히(Hadewijch von Antwerpen, 13세기 초), 메히틸드(Mechthild von Magde-burg, 1208~1282), 그리고 마르게리트(Marguente von Porète,+1310) 등을 통해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사물(事物)과 자기 자신을 떠나, 인간과 하느님이 하나가 되는 신비 사상(神秘思想)을 강조하였다. 에크하르트는 《독일어 설교집》에서 이 여성 신비가들과 대 화 내지는 대결을 하고 있다.
철학 및 신학 : 에크하르트는 《삼부작》의 <서문>(Pro-logus generalis)에서 그의 저서가 《명제집》 · 《문제집》 ·《주해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하나의 단일성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 즉 '문제' 와 '주해' 는 그때마다 하나의 '명제' 에 속하는 것이어서, 그들을 서로 분리시켜 놓고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존재는 신이다"(Esse est Deus)라는 명제, "신은 존재하는가?" (Utrum Deus sit)라는 문제, 그리고 "태초에 신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였다" 라는 주해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삼부작》에서, '저자의 의도' 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빌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그 사상의 내용에 따르면, 오직 '신' 만이 '있다' . 그 리하여 그는 '존재 자체' (存在自體, esse abstute et simplic-iter)이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은, 그 자체로서는 없다' . 그들은 '무' (無, nihil)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있는 것" (esse hoc et hoc)이 되는 근원(根源)은, 전적으로 '존재 자체' 인 '신' 이다. 바로 여기서 신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즉 형이상학자로서 에크하르트의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신비 사상에 있어서 하나의 발판을 이룬다.
신비 사상 : 에크하르트의 신비 사상은, 특히 《독일어 설교집》에 드러나고 있다. "내가 설교할 때, 나는 언제나 첫째로 '버리고 떠나 있다는 것' (die Abgeschiedenheit)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모든 사물과 자 기 자신마저도 떠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둘째로 인간은 신 속으로 되돌아가서 그와 하나의 형상(eingebildet)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고 하였다.
모든 사물을 떠나고 자기 자신마저 떠난다는 것은, 결국 '가난' 을 말한다. 그런데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 이란,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 것도 알지 않으며,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란 사물과 자기 자신을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신의 뜻"을 채워 내려는 마음까지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알지 않는 사람"이란 감각적 지식과 이성적 지식을 갖지 않을 뿐 아니라,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그
리고 심지어 "내가 왜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왜?"가 없으며, "무엇 때문에"가 따로 없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 그에게 "왜 이 일을 하느냐?" 라고 물으면, 그는 단순히 "나는 이 일을 한다. 왜냐하면 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에게 "왜 사느냐?라고 물으면, 그는 단순히 "나는 산 다. 왜냐하면 나는 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란 이 세상 것이나 저 세상 것을 가지지 않을 뿐 아니라 ,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 자 신 속에 신을 위한 자리(장소)를 따로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치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이처럼 인간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지 않으며,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그러한 "가난한 사람"이 될 때, 비로소 그 "영혼 속에 신이 탄생한다" (Gottes Geburt in der Seele).
[의 의] 에크하르트의 사상 특히 그의 신비 사상은 서양 신비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왔다. 그리고 오늘날 그의 신비 사상은 서양과 동양이 서로 대화하는 교량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독일 신비주의)
※ 참고문헌 Meister Eckhart, Die deutschen Werke, 5 Bde, Hrsg. und iibersetzt von JosefQuint, Die lateinischen Werke, 5 Bde, Hrsg. und iibersetzt von Josef Koch et alii, Die deutschen und lateinischen Werke, Hrsg. im Auftrag der Deutschen Forschungsgemeinschaft, Stuttgart, 1936ff/ Niklaus Largier, Bibliographie zu Meister Eckhart, Dokimion, Bd. 9, Freiburg-Schw., 1989/ Alois M. Haas, Meister Eckhart als nommative Gestalt geistli-chen Lebens, Einsiedeln, 1979/ Bernhard Welte, Meister Eckhart. Gedanken zu seinen Gedanken, Freiburg-Bael-Wiien, 1979, 2. Aufl., 1992/ Kurt Ruh, Meister Eckhart. Theologe, Prediger, Mystiker, Miinchen, 1985, 2. Aufl.,1989. 〔鄭達龍〕
에크하르트, 요한네스 (1260~ 1328)
〔독〕Eckhart, Johan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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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