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6세(1963~1978)가 교황에 즉위한 후인 1964년 8월 6일에 자신의 교황직 수행에 관한 기조를 밝힌 회칙.
[배경과 목적]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1958~1963)가 사망한 뒤 새 교황으로 선출된 바오로 6세는, 선임 교황의 뜻에 따라 공의회를 지속시켜제2 회기(1963. 9. 29~12. 4)를 주재하고, 제3차 전체 회의(1963. 12. 4)에서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과<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Inter Mirifica)을 공포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8월 6일 발표한 것이 바로 이 회칙이다.
이 회칙은, 예수가 당신 교회(Ecclesiam suam)를 온 인류 사회의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고 구원의 봉사자가 되도록 세웠다는 말로 시작된다. 여기서 교황은 교회의 본질에 관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세계의 활력과 교회의 열망이 어우러져 세계와 교회가 서로 알고 사랑하여야 한다며 인류 사회의 실제 상황 속에서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직무라고 강조하였다. 이 회칙의 목적은 가톨릭 교리나 도덕적 · 사회적 원칙의 천명이 아니라, 교황직 수행에 따른 자신의 주요 정책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교황은 자신의 주요 정책을 크게 서론과 3부로 나누어 밝혔다. 하지만 라틴어 원문에는 "교회의 본질"(Denatura Ecclesiae)이라는 회칙의 부제 외에는 중간 제목이나 소제목이 없고, 항 번호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내 용] 서론 : 교회는 자아 성찰을 통하여 자기 존재의 신비를 숙고하여야 한다. 자신의 기원, 본질, 사명, 목적에 관한 가르침을 더욱 깊이 살펴 빛과 영감을 이끌 어 내야 한다. 교회의 자기 각성은 설립자인 그리스도가 세운 이상적인 교회상과 현대 세계에 비치는 교회의 실상을 비교하게 하며, 그 실상은 결코 원초적인 교회상과 완전히 부합한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구성원들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쇄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교회 구성원들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고 완덕을 추구하며 쇄신에 필요한 수단을 선택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본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적절한 개혁의 도입을 위하여 더 큰 용기를 내고 여러분의 동의와 조언과 협력을 얻으려는 것이다. 자각과 쇄신은 교회가 온 인류 공동체와 나누는 대화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교회가 현대인들과 나누는 대화의 범위와 내용은 공의회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그 문제에 대한 토론을 준비하여야 한다. 이 세계가 안고 있는 온갖 문제들을 이회칙에서 다룰 생각은 없지만, 세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가 세운 정의와 평화의 나라의 힘으로 사람들을 형제애로 결합시켜, 국제 협력과 세계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 본인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자각 : 이 시대의 교회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진리의 보고에 대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세계 내 사명에 대하여 한층 더 분명하고 충만한 의식을 지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특정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교회는 지금 자기 자신을 숙고하여야 한다. 교회의 이러한 자아 성찰은 신앙의 행위이다. 주님의 권고에 따라 우리는 모든 일에서 깨어 있어야 한다. 모든 이가 의식적이고 헌신적으로 열렬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앙 행위를 바쳐야 한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새로운 신앙 고백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주님, 믿습니다" (요한 9, 38). "주님께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 16). 세상에 구원의 소식을 전하려면, 교회는 완전한 자기 이해를 지녀야 한다. 격변하는 현대 세계에서 교회가 그 혼돈을 치유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에 바란 그대로 철저한 자기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자아 성찰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래로 수많은 신학자들과 지성인들이 크게 진전시켜 왔으며,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토론에 이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에 관한 정의와 교의를 계속하여 다루고 있다. 성령의 빛과 도움을 받아 공의회는 위대한 과업을 이루어 내리라고 믿는다. 공의회를 통하여 교회가 더욱더 완전하고 확고한 자각을하게 되길 바란다.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신비체로서 교회에 대한 자각은 곧 신앙의 성숙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시적이고 영적인 공동체인 교회의 신비에 대한 이해는 교계 제도의 봉사에서도 드러난다. 영성 생활의 계발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이룬 사람들은 초자연적 생명으로 새로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로서 또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드높은 품위로 들어 높여져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쇄신 : 하느님의 교회가 그리스도가 바랐던 바로 그러한 교회, 곧 하나이고 거룩한 완전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교회는 그 나그네 길에서 많은 문제에 부딪히면서도 그리스도를 향하여 완덕의 길을 걷고자 한다. 교회의 외부 조건이 세계의 변화에 무관심하거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완덕의 추구는 더 재촉을 받고 있다. 교회는 세상과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교회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삶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회의 기본 가르침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고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 이는 또한 교회의 외적 행동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사목적인 성격을 지닌 공의회의 주요 목적은 교회법을 개정하여 신앙 생활을 더욱 수월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의회는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여러 교령들이 발표될 것이다. 교회의 법제와 규율에 대한 개혁의 도입은 당연히 공의회가 결정할 일이다. 교회법 개정위원회가 이미 설치되었다. 이러한 개혁에 대한 본인의 지지를 거듭 표명하고자 한다.
쇄신 작업에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워야 한다. 가톨릭 교회의 본질이나 기본 구조는 결코 손댈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비체의 살아 있는 지체이며 그리스도 복음의 진정한 상속자이고 사도들의 정당한 후계자들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는 것은 어떤 긍지나 오만이 아니라 바로 확고한 신앙이다. 따라서 개혁이란 그리스도가 당신 교회에 부여한 특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회상을 본래의 모습대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개혁은 축소 · 환원이 아니라 회복이어야 한다. 지나친 적응만을 강조하여 현대의 그릇된 풍조나 생활 방식을 무턱대고 따르지 말아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 원리와 어긋나는 자연주의나 상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살아야 하지만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다. 쇄신의 지도 원리는 교황 요한 23세가 말한 "현대화" (Aggiornamento)이다. 쇄신의 비결은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는 완덕의 실천, 곧 회개(Metanoia)에 있다. 그 정신은 복음의 정신, 곧 가난과 사랑이다.
대화 : 교회는 현대 세계에 대하여 어떤 정신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날로 새로워지는 교회의 자각과 그리스도의 이상을 본받으려는 교회의 노력은, 교회가 주위 세계와 전혀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면서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것이다. 복음은 분명히 우리가 세계와 구별되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세상과 구별된다고하여 분리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과 대립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까이하려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자각한다면, 교회는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봉사에 온 힘을 쏟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구원의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고, 온 백성을 가르치라는 명령이 있다. 우리는 만민의 구원을 위하여 파견된 사도이다. 사도라는 말 자체가 회피할 수 없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안으로부터 일어나서 밖으로 드러낼 길을 찾고 있는 이 사랑의 충동에 본인은 "대화" 라는 말을 적용하려 한다. 교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대화를 하여야 하며, 말과 대화의 종류를 그 세계와 맞추어야 한다.
이 문제는 공의회에서 숙고할 것이지만, 제3 회기를 시작하기 전에, 본인은 교회의 대화를 촉진하는 동기와 따라야 할 방법과 지향하는 목적을 더욱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몇 가지 고찰을 제시하고자 한다. 대화는 교황으로서 본인의 직무에 합당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대화의 고귀한 근원은 바로 하느님의 마음 안에 있다. 종교는 그 본질 자체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요청되는 어떤 관계이다. 종교는 기도로 표현되고, 기도는 대화이다. 계시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초자연적 관계로서 대화로 볼 수 있다. 육화나 복음에서 계시란 우리에게 건네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인간 구원의 온 역사가 하나의 길고 다양한 대화이다. 구원의 대화는 하느님께서 먼저 시작하셨다. 그 대화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서 나왔다. 그것은 압력이 아니라 사랑의 호소였다. 구원의 대화는 모든 이에게 가능하고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화도 보편적(Catholic)이어야 한다. 대화는 조그만 일에서 시작하여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간다. 날마다 대화를 새롭게 하고 또 우리가 먼저 시작하여야 한다.
교회와 세계의 관계는 대화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비현실적인 대화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이해의 자세이다. 사도적 사명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구원의 대화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어야 한다. 대화는 명료하여야 한다. 말하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화는 온화하여야 한다. 대화 자체가 덕행의 모범이 되도록 넓은 도량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신뢰 또한 필요하다. 가르치는 사람은 지혜롭게 대화를 나누며, 듣는 사람의 심리적 · 도덕적 조건을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한 대화에서 진리가 애덕과 결합되고 이해가 사랑과 맺어지는 것이다. 구원의 대화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필요하다면 실제 경험을 참작하고 적절한 수단을 선택하여야 한다. 편견에 얽매이지 말고, 무의미한 표현 방식을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여야 할 역사적 지역적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하여야 하는가? 또 어떻게 하여야 모든 이에게 다가가서 구원을 전하고 모든 이가 구원되도록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있는가? 세계는 밖으로부터 구원될 수 없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처럼,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려는 그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남들이 들어주고 이해하여 주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비천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그들과 한마음이 될 것이다. 대화의 밑거름은 형제애와 봉사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을 실천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가 진리를 소홀히 하거나 신앙을 약화시키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영합주의와 혼합주의, 거기에 따른 회의주의를 경계하여야 한다. 본인은 설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설교는 으뜸가는 사도직이다. 우리는 단순하고 명료하며 효과적이고 권위 있게 대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찾아야 한다. 말씀의 교역에 관한 <전례 헌장>의 가르침을 지혜롭게 또 열심히 실천하기 바란다. 교회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여야 한다. 교회의 어머니다운 품에 안기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화의 대상은 먼저 온 인류, 무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을 포함한다. 그 다음이 다른 종교인들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일치를 향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또한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봉사와 순명을 바탕으로 사랑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평 가] 교황 바오로 6세의 교황직 기조를 밝힌 이 회칙은 "대화" 라는 공의회의 승고한 목적을 바라보며 이른바 "대화 신학"의 기초를 놓은 교도권의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별히 이 회칙에서 개괄하고 있는 대화의 원칙과 방법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여러 문헌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대화 ; 바오로 6세)
※ 참고문헌 Paulus PP. Ⅳ , Litterae encyclicae Ecclesiam suam de quibus viis catholicam Ecclesiam in praesenti munus suum exsequi oporteat,6 augusti 1964, 《AAS》 56, 1964, pp. 609~659/ Enchiridion Vaticamm Ⅱ,pp. 198~299. 〔姜大仁〕
<에클레시암 수암>
〔라〕Ecclesiam su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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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