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공식 명칭은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 공화국(Yeetiyop' iya Hezbawi Dimokrasiyawi Republek). 동쪽으로 지부티와 소말리아, 남쪽으로 케냐, 서쪽으로 수단과 접경해 있으며, 북동쪽 1,010km의 해안은 홍해를 끼고 있다. 면적은 본토와 홍해에 있는 150여 개의 섬들을 포함하여 1,133,882k㎡이고, 인구는 59,680,000명(1999)이며, 수도는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이다. 공용어는 암하라어이고,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부족 언어가 사용된다. 국민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하라족과 오로모족을 비롯하여 티그레족 · 아파르족 · 소말리족 · 사호족 · 아게우족 등의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교는 없으며 동방 교회에 속한 에티오피아 정교회와 이슬람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기원전 2000~1000년 남아라비아로부터 이주해 온 셈계 인종이 에티오피아의 북부와 중부 지역을 점령한 것으로 알려지며, 기원전 1000년경부터는 고대 왕국이
형성되었다. 서기 100년경에는 악숨(Aksum) 왕국이 등장하였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왕국은 에티오피아의 세바 여왕이 예루살렘의 솔로몬 왕에게 조공을 바칠 때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아들 메넬리크 1세의 계통을 이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번성하던 왕국은 7세기 무슬림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다른 그리스도교 왕국들과 단절되었다. 11세기 자구에(Zague) 왕조가 권력을 잡았으나 13세기 말 악숨 왕국의 전통을 지닌 후손들이 다시 왕국을 건설하였다. 16세기에 이르러 일시적으로 무슬림의 지배를 받았으나 포르투갈의 도움을 받아 소말리족의 무슬림 세력을 몰아냈다. 1855년 테오드로스 1세(1855~1868)는 집권 후, 계속되는 전쟁으로 혼란에 빠져 있던 에티오피아를 통일하고 근대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어 메넬리크 2세(1889~1913)는 에티오피아의 통일을 완성하였고, 1930년에 즉위한 하일레 셀라시에(1930~1974) 황제는 근대화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935년 이탈리아에 의해 국토 대부분을 점령당하자, 하일레 셀라시에는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1941년 독립 후 귀국한 셀라시에 1세는 다시 근대화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1974년 군사 혁명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이듬해 왕정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에티오피아 공화국이 설립되었으며, 1977년 마리암 육군 대령이 국가 원수 및 의장으로 등장하였다. 이후 군사 정부는 내전을 겪게 되었는데, 계속되는 분쟁과 주기적인 가뭄 · 기근으로 수십만 명의 에티오피아인들은 인근의 지부티 · 소말리아 · 수단 등으로 피난하였다. 1991년 반정부군은 군사정부를 붕괴한 뒤 과도 정부를 수립하였다. 1994년 집권 세력인 '에티오피아 인민 혁명 민주 전선' (EPRDF)은 내각 책임제 및 연방제를 채택한 후, 이듬해 8월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 공화국을 설립하였다.
〔복음의 역사] 사도 행전(8, 26-40)에 보면 필립보가 간다케(에티오피아 여왕의 칭호)의 고관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질적인 그리스도교 전파는 프루멘시오(Frumentius)에 의해 이루어졌다. 320년 성 프루멘시오는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Athanasius, 295?~373)에 의해 초대 에티오피아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에티오피아 교회와 콥트 교회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를 역사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프루멘시오는 악숨 왕국의 왕 에자나(Ezana)의 신임을 얻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으며, 에자나도 솔로몬 왕 때 전래된 유대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국교화하였다. 이어 6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파견된 시리아 선교사들이 그리스도 단성설을 전파하고 수도회를 설립하였으며, 성서를 '게즈' (Ge' ez, 고대 에티오피아어)로 번역하였다.무슬림의 지배를 받는 동안 에티오피아 교회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에티오피아인들과 이집트에 있는 에티오피아 수도자들을 통해 바깥 그리스도교 세계와 교류할 수 있었다. 12세기 이래로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는 이집트인 콥트 교회 수도자만을 에티오피아 주교로 임명하였는데,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는 프루멘시오 임명에 따른 수위권과 에티오피아 교회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은 니체아 공의회의 가(假)법규를 근거로 에티오피아인 성직
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17세기 무렵부터 시작된 예수회 선교 결과 에티오피아 전역에 서양 지식이 전파되었고, 종교 문헌들의 기록에 '게즈' 대신 암하라어가 쓰여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
가톨릭과의 일치를 이루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수도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17~19세기 동안 에티오피아 교회는 "바로 나자렛 출신 예수의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을 부으셨으니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모든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10, 38)에 대한 해석으로 분열되었다. 이 구절이 예수 안에서 인성과 신성의 결합과 그 결합 안에서의 성령의 도유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분쟁은 1879년 당시 왕이었던 요한 4세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의 이론이기도 한 북부 지역 수도회들의 그리스도 단성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함으로써 종결되었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이 있다가 결합 후에 인성은 신성에 흡수되어 결국 신성만 남는다고 주장하였던 에우티케스(Eutyches, 375~454)를 이단론자로 간주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인성과 신성이 있다는 가톨릭의 교리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한편 이와 같은 신학 이론의 혼란 속에서도 가톨릭은 서유럽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조금씩 성장하였다.
1852년에는 야코비스(G. de Jacobis, 1800~1860)가 설립한 신학교에서 15명의 에티오피아인들이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그에 앞서 1846년에는 카푸친회가 갈라(Galla) 지목구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에티오피아 교회도 이집트 콥트 교회로부터 점차 독립하였는데, 1926년 교구장이 사망한 후 젊은 성직자들이 새로운 교구장에 에티오피아인을 임명할 것을 요구하자 1929년 이집트인 치릴로(A. Cyrilus)를 교구장으로 임명하면서 최초로 4명의 에티오피아인 주교를 임명하였다. 그러나 1936년 에티오피아인 성직자들은 치릴로를 내쫓고 에티오피아인 주교 중에 한 명이던 아브라함(A. Abraham)을 교구장으로 선출하였다. 이듬해에는 아디스 아바바에 교황청 관할의 관할구가 조직되었다. 1949년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는 교구장에 에티오피아인을 임명하기로 합의하였고, 1959년에 자치권을 지닌 에티오피아 총대주교구가 설립되었다. 1975년 설립된 사회주의 정부는 에티오피아 교회를 해체하고, 총대주교를 추방하였으며 교회가 소유해 온 많은 토지들을 몰수하였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공화국이 설립된 이후 소규모 가톨릭 공동체는 에티오피아 교회와 프로테스탄트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에티오피아를 좀더 발전된 사회로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1998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446,000명이고, 대교구 1, 교구 1, 대목구 5, 지목구 1, 본당 183개에 추기경1, 대주교 1, 주교 9, 사제 415(교구 소속 146, 수도회 소
속 269), 수사 66, 수녀 742명이 있다. (→ 그리스도 단성설 ; 동방 전례 ; 야코비스, 주스티노 데)
※ 참고문헌 F.X. Murphy, 《NCE》 5, pp. 583~586/ 《EB》 8, pp. 780~790/ 2001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317/ Ammuario Pontificio 1998, Citta del Vaticano, 1998/ 《EU》 Les Chiffres du Monde, pp. 218~219. 〔金善美〕
[성서에서의 언급] 칠십인역 성서에서는 히브리어로 “쿠쉬”(כוּשׁ”)라는 민족과 나라를 대부분 "아이티오피아" (Αἰθιοπία)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특정인으로 등장할 경우 음역 그대로 "코우스" (Xous) 또는 "코우시" (Xovol 로 표기하였다(창세 10, 6-8 : 2사무 18, 21-23. 32). 모세는 자신의 아내가 쿠쉬 여인이라는 이유로 미리암과 아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민수 12, 1). 반면에 다윗의 신하들 중에 쿠쉬인이 있었고(2사무 18, 21-32), 곤경에 처했던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왕궁의 대신 중에서 쿠쉬인 에벳멜렉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예레 38, 4-13 : 39, 15-18).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자주 이집트와 쿠쉬를 함께 빗대어 비유하였다(이사 20, 3-6 ; 에제 30, 1-9 ; 다니 11, 43). 아시리아의 산헤립(기원전 704~681)은 이집트의 티르하가가 아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해서 팔레스티나로 진격해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유다왕 히즈키야(기원전716-687)에게 외교적 보복을 위협하였다(2열왕 19, 8-13 : 이사 37, 9-13). 그런데 이 구절에서 티르하가를 "쿠쉬의 왕" 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보아, 이집트 제25 왕조가 쿠쉬인들의 정권이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제24 왕조(기원전 730~715) 때 쿠쉬의 임금인 샤바카(Shabaka, 기원전 715?~696)가 이집트에 침입하여 제25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아시리아에 저항하던 히즈키야(기원전 716~687)를 도우려다 산헤립에게 패하였다. 이후 샤바카의 후계자들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사이에서 정치적 득실을 놓고 저울질하면서 두 나라 가운데 더 큰 세력을 치기 위해 동맹 관계를 이리저리 옮겼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적어도 기원전 8세기 중엽 이후 쿠쉬는 이집트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아모 9, 7 : 스바 2. 12 : 3, 10). 기원전 6세기 이후 그리스 사람들은 오늘날의 이집트와 수단, 그리고 아프리카 북동부의 에티오피아를 포함하는 모든 지역을 에티오피아라고 불렀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인 에티오피아는 로마 시대에는 "누비아" (Nubia)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성서 시대의 쿠쉬와 에티오피아, 그리고 누비아는 대부분 같은 지역을 의미한다.
[지리적 상황] 쿠쉬의 지리적 범위는 나일 강을 기준으로 할 때, 이집트의 전통적인 남쪽 경계인 제1 급류에서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Khartoum) 북쪽의 제6 급류 지 역까지이다. 쿠쉬의 북부 지방은 일 년 중 거의 비가 오지 않는 매우 건조한 지역이고, 남서쪽은 늪 지대인 수드(Sudd), 그리고 남동쪽은 홍해로 이어지는 최고봉 해발 5,000m나 되는 에티오피아 고원 지대이다. 쿠쉬 중에서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은 남동쪽의 에티오피아 고원지대로 기후가 온화하고 기름진 땅과 적당한 강수로 곡식 재배도 가능한 곳이었다.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홍해의 양안, 즉 오늘날의 에티오피아와 아라비아 연안 지역까지 퍼져 살았다. 이집트는 나일 강의 장애물인 급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쿠쉬의 풍부한 물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이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이집트는 쿠쉬로부터 황금 · 노예 · 향신료 ·
향 · 상아 · 코뿔소 뿔 · 흑단목 · 황옥 등의 특산품을 얻을 수 있었다. 이집트 문헌에서는 쿠쉬가 기원전 1970년경제12 왕조의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쿠쉬는 중왕국 시대에는 제2 급류 지역까지, 그리고 신왕국 시대에는 제6 급류 지역까지 이집트 영토로 귀속되었다. 기원전 1050년경 이집트 신왕국이 붕괴되었을 때 쿠쉬는 독립할 수 있었다. 쿠쉬의 고유한 문명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시대별로 차례대로 나일 강 유역의 케르마(Kema) 나파타(Napata) 메로에(Meroe)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집트의 고왕국 · 중왕국 시대의 쿠쉬는 나일 강의 제3 급류 근처에 위치해 있던 케르마를 중심으로 기원전 2500~1500년 동안 발전하였다. 이집트가 쇠퇴하기 시작한 기원전 1000년경 쿠쉬 문명의 중심지는 나일 강 제4 급류 근처의 나파타로 옮겨져 기원전 300년경까지 번성하였다. 기원전 300년부터 쿠쉬 왕국은 좀더 남쪽으로 이동하여 제6 급류 북쪽의 메로에를 중심으로 동로마 제국 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중요한 쿠쉬 문명의 유적지로는 솔렙(Soleb) , 카와(Kawa) , 제벨 바르칼(Jebel Barkal) 등이 있다.
※ 참고문헌 T.O. Lambdin, 《IDB》 2, PP. 176~177/R. Smith, 《ABD》 1, pp. 665~667/E. Ullendorf, The Ethiopians, New York, 1973/ D.K Welsby, The Kingdom ofKush : The Napatan and Meroitic Empires, London, Bri-tish Museum, 1996/ D. Wildung ed., Sudan : Ancient Kingdoms of the Nile,Paris, Flammarion, 1997. [金 聲]
에티오피아
〔영〕People' s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
글자 크기
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