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 강도 공의회

强盜公議會

〔라〕Latrocinium Ephesinum · 〔영〕Robber Council of Eph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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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408~450)가 449년 에페소에서 개최한 공의회. 그러나 451년에 개최된 칼체돈 공의회에서는 이 공의회를 "강도 회의"로 규정하였다.
〔배 경〕 448년경 콘스탄티노플 근교에 있는 수도원의 원장인 에우티케스(Euthyches)는 도릴래움(Dorylaeum)의 에우세비오를 네스토리우스파로 지적하여 비난하였다. 에우티케스는 에페소 공의회 세대로서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치릴로(412~444)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네스토리우스 이단에 대해서 강경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강조하면서 육화한 그리스도 안에 처음에는 두 개의 본성이 있다가 인성이 신성에 흡수 · 소멸되어 신성만 남는다는 그리스도 단성설(monophysitismus)을 주장하였다. 이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플라비아노(Favianus, 447~449)는 회의를 개최한 뒤 에우티케스에게 그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에우티케스는 이에 불응함으로써 이단자로 단죄되었고 수도원장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디오스코루스(Dioscorus, 444-451)가 에우티케스를 지지하면서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에게 교리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에페소에서 449년 3월 30일에 공의회를 소집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이 공의회의 준비는 에우티케스 지지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반대파의 저명한 신학자들은 참석을 금지시켰다. 그래서 그리스도론의 전문가인 테오도레토(Theodoret of Cyrus,393~460?)는 이 공의회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이때 교황레오 1세(440~461)는 449년 6월 13일 그리스도의 육화에 대한 신학 논술을 써서 플라비아노 총대주교에게 보냈다. 이것이 <플라비아노에게 보낸 교의 서한>(Epistoladogmatica ad Flavianum)인데, 이 서간을 흔히 <토무스 앗플라비아눔〉(Tomus ad Flavianum)이라고 부른다.
〔회의 진행〕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449년 8월 1일 에페소에서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디오스코루스가 주도 면밀하게 계획하여 단성설을 지지하는 이들이 폭력적으로 나서자, 에우티케스에게 우호적이었던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었다. 예루살렘의 주교 주베날리스(Juvenalis, 422~458)의 지지를 받은 디오스코루스는 이 공의회의 사회를 맡으면서 대표자 역할을 하였다.
8월 8일 성모 성당에서 130여 명의 주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교황 사절단이 레오 1세 교황의 교서를 낭독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디오스코루스는 이 요청을 묵살하였다. 그 결과 에우티케스는 무죄가 입증되었으나, 그리스도가 육화한 뒤에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 있다고 주장했던 안티오키아 학파의 그리스도 양성론은 단죄를 받았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디오스코루스는 네스토리우스를 가장 먼저 비난했던 플라비아노와 도릴래움의 에우세비오를 파문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을 파문해야 한다는 디오스코루스의 선동에 공의회장이 소란스러워지면서, 군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공의회장에 쳐들어왔다. 이때 플라비아노는 그들에게 심하게 얻어맞아 3일 뒤에 죽었고, 에우세비오는 가까스로 도망쳐 목숨을 건졌다. 그렇지만 이 공의회에서 플라비아노와 에우세비오는 단죄를 받았고, 에우티케스는 복직되었다. 그리고 8월 22일자 회기에서 에데사(Edessa)의 이바스(Ibas, +457)와 테오 도레토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파문당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그때까지 그 공의회의 모든 절차를 찬성했던 안티오키아의 돔누스(Domnus)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안티오키아 학파의 그리스도 양성론에 대한 모든 전문가들이 제거당하였다. 디오스코루스는 치릴로의 12개 항의 파문 조문을 낭독하고 승인한 후 공의회를 폐회하였다.
〔결 과〕 이 공의회의 결정에 대해 교황과 이탈리아 주교단, 그리고 서로마 제국의 황제인 발렌티아누스 3세 (423~455)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리고 에우세비오는 교회와 황제에게 새로운 공의회의 소집을 요청하였다. 그 결과 451년에 칼체돈 공의회가 소집되었으며, 그리스도 단성설 교리를 단죄하고 디오스코루스를 파문시키는 동시에 플라비아노와 에우세비오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 그리스도 단성설 ; 레오 1세 ; 칼체돈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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