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人 - 便紙

〔그〕Πρός 'Eφεσίους · 〔라〕Epistola Pauli Apostoli ad Ephesios · 〔영〕Letter of Paul to the Church at Eph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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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에 속하며 사도 바오로의 이름으로 쓰여진 편지 가운데 하나.
〔저자와 수신인〕 이 편지의 처음은 "하느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에페소에) 사는 성도들에게, 곧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인사합니다)" (1, 1)라고 시작된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보면, 에페소서는 에페소 교회의 신자들을 수신인으로 하여 저자인 바오로가 보낸 편지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약성서 학계에서 이 서문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인정하는 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먼저 에페소서라는 이름이 유래된 1절의 "에페소에"( έν 'Eφεσω)가 나오는 사본들은 4세기 이후에 쓰여진 것들이고(A,D,G···· 그 이전의 오래된 사본들에는 에페소라는 지명이 등장하지 않는다(P⁴⁶ , ℵ, B···) 그리고 이 작품이 '에페소서' 라고 이름붙여진 것도 2세기 말 무라토리 단편의 목록(Z. 51),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Stom. 4. 64), 리용의 이레네오(haer. 5, 2. 3) 등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따라서 이 편지가 정확히에페소 교회로 보내진 것인지, 나아가 에페소서라는 명칭이 정당한 것인지 질문해 보아야 한다.
편지의 수신자와 관련해 이른바 '라오디게이아 가설'에 따르면, 이 편지가 라오디게이아(Λαοδίκεια)에 있는 교회에 보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가설의 문헌 증거로는 테르툴리아노(160~223)의 《마르치온 반박》(Adv. Marc. 5, 17)이 있는데, 마르치온은 이 편지를 '라오디게이아서' 로 취급하였다는 보도를 전해 준다. 말하자면 원래 "라오디게이아 교회에게"라는 수신 공동체의 이름을 삭제하고 그 자리에 "에페소에"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필자 문제에 있어서도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편지가 비록 바오로의 이름을 쓰고는 있으나(1, 1 : 3, 1) 어휘나 문체, 신학에 있어서 바오로의 친서로 여겨지는 편지들과 차이가 많다. 먼저 어휘들을 보면 신약성서에서 오직 에페소서에만 나오는 어휘가 49개이고, 바오로친서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어휘가 51개 정도이다. 문체에서도 다른 점이 상당히 많은데, 이를테면 동의어 중첩(1, 15-18), 소유격 연결, 대단히 긴 문장(1, 3-14 : 1, 15-23 : 2, 1-7 등), 접속사와 전치사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차이점은 신학적인 부분이다. 에페소서가 바오로의 신학을 이어받기는 했으나, 그리스도론 · 구원론 · 종말론 · 교회론 · 윤리 등에서 세부적인 차이점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에페소서가 바오로의 작품이라는 전통적인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필자 문제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에페소서가 골로사이서와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흡사하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편지 서문, 디키고의 파견(에페 6, 21-22 ; 골로 4, 7-8), 기도를 청함(에페 6, 18-19 : 골로 4, 2-4), 가정 질서(에페 5, 22-6, 9 : 골로 3, 18-4,1), 같은 주제들(그리스도의 신비,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새것과 옛 것 등) 등이다. 두 편지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능한 추측으로는 같은 필자, 혹은 서로를 집필 자료로 사용하였을 경우가 있다. 아무튼 양자
의 밀접한 관계로 볼 때 에페소서의 바오로 친저성 문제가 골로사이서에까지 확대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학계에서는 흔히 에페소서를 바오로 학파에서 작성한 위서(僞書)로 간주한다(콘젤만, 슈낙켄부르크, 케제만, 그닐카 등). 수신인에 대해서도 상당히 유동적인 자세를 취해, 특정 교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에 보낸 회람 서간(回覽書簡)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견해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이 편지에 특정한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필 장소와 연대〕 집필 장소로는 바오로 자신이 갇혀 있다는 부분(3, 1 : 4, 1 : 6, 20)을 근거로 흔히 가이사리아(사도 23, 35-25, 32), 에페소(1고린 15, 32), 로마 (사도 28, 16-31) 등이 꼽힌다. 그러나 앞서 지적하였듯이 에페소서가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라면 모두 부질없는 추측이 된다. 다만 바오로의 전도 지역을 고려할 때 소아시아의 어느 지역이었다고 광범위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집필 연대에 대해서는 골로사이서의 집필 연대가 70년경이므로, 70년경을 상한선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100~110년경에 쓰여진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의 편지들에서 에페소서에 대한 언급들이 나온다(IgnEph 5, 1 : 9, 1)는 점을 감안할 때, 집필 연대의 하한선은 100년경이 된다. 학계에서는 흔히 80~90년을 에페소서의 집필 연대로 추정하고 있다.
〔신학 사상〕 에페소서는 전체적으로 '신학 교리서' 라는 인상을 풍긴다. 신학적인 내용을 주제별로 나누어 다룬 점이라든가, 유다인과 이방인을 뛰어넘는 세계화의 전망(2, 11-13)이 그런 인상의 중요한 원인이다. 에페소서는 기본적으로 바오로의 신학 노선을 따른다. 그러나 바오로의 무비판적인 답습은 아니고 필자 나름대로의 시각도 충분히 실려 있다.
그리스도론 : 에페소서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는 하늘에 올라간 존재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있고(1, 20), 그분발 앞에 세상 만물이 엎드리며(1, 22a), 만물이 그분을 통해 완성되고(1, 23), 교회는 그분의 몸이고, 그분은 교회의 머리이다(1, 22b-23). 이런 강력한 그리스도론이 등장한 배경에는 에페소서 저자의 세계관 때문이다. 그는 세계가 4~5가지의 차원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하였는데, 하느님과 예수의 옥좌가 있는 "모든 천계보다 높은" 곳 (4, 10)-다양한 "천공" (3, 10)- 악마의 세력권인 "대기 권을 다스리는" 세력(2, 2)-인간들이 사는 "세상" -죽은 자들의 세계인 "땅의 낮은 곳" (4, 9)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대로 예수를 통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하나' 가 된다(1, 10. 20-23 : 4, 9-10). 그러므로 위의 세계관을 고려할 때 에페소서는 '우주적인 그리스도론' 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바오로의 십자가 그리스 도론, 영광-고양(高揚) 그리스도론과 비교하면 보다 광범위하게 체계화된 그리스도론인 셈이다.
구원론 : 인간은 원래 죄에 얽매여 있었고, 본능적인 욕망에 끌려 다니는 존재였다(2, 1-3).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내 하늘에 앉아 있게 한다
(2, 4-7).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며 인간의 '업적' 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선을 행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일이다(2, 10). 즉 우리는 하느님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이 되는 것이다(2, 15 : 4, 24). 바오로 구원론의 핵심인 의화론(義化論)과 비교할 때, '이미-아직' 이라는 긴장 관계가 상당히 감소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이미 변화된 현재와 종말로 닥쳐올 미래가 확실히 구분된다는 뜻이다. 또한 의화론의 중심 개념이었던 '의' 가 여러 덕행들 중의 하나로 밀려나 있고(4, 24 : 5, 9 : 6, 14), '율법' 에 대한 언급도 미미하다(2, 15).
교회론 : 바오로 친서에 나오는 교회들이 대부분 지역 교회에 머물렀다면, 에페소서에 나오는 교회는 보편적인 교회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도 더 체계화되어 '머리-몸' 이라는 뚜렷한 구조를 가지게 되며(1, 22-23 ; 5, 23 : 1고린 12, 31 ; 로마 12, 48과 비교), "사도들과 예언자"들도 예수와 더불어 교회의 기초가 된다(2, 20). 예수를 교회의 유일한 기초로 간주했던 바오로와는 차이가 나는 점이다(1고린 3, 11).

※ 참고문헌  K.H. Schelkle, 김영선 외 공역, 《신약성서 입문》, 분도출판사, 2판, 1976/ 김영남 역주,《에페소서》, 200주년 기념 성서, 분도출판사, 1998/ R. Schnackenburg, Der Brief an die Epheser, 《EKK》 10, Benziger · Neukirchener, 1982/ J. Gnilka, Der Epheserbrief, 《HThK》 10, Freiburg, 1982/ F. Muliner, Epheserbrif, 《TRE》 9, pp. 743~753. [朴泰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