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
기원전 341년 사모스(Samos)에서 태어나 플라톤주의자인 사모스의 팜필로스(Pamphilos)와 자연주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기원전 460~370?)의 제자였던 나우시파네스(Nausiphanes, 기원전 4세기)로부터 배웠다. 32세 때부터 제자들을 가르친 그는, 소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만난 뛰어난 제자들을 데리고 기원전 306년 아테네로 가서 자신의 집 '정원' 에 학원을 세웠다. 당시 아테네는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의 아카데메이아(Akademeia) 학원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83-322/321)의 '뤼케이온' (Λύκειον) 학원이 문화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유명한 두 학원과는 달리 에피쿠로스의 학원은 이론보다는 삶의 방식을 중시하였다.
에피쿠로스는 정치 활동을 피하라고 가르쳤는데, 후에반대파인 스토아 학파가 에피쿠로스 학파를 쾌락주의자라고 매도하였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육체적인 쾌락보다 정신적인 쾌적한 삶, 즉 '평정' (平靜, ataraxia)을 유지하는 삶과 우정을 중시하였다. 말년부터 병고에 시달린 그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대화를 기억해 내며 극복하였다고 한다. 그는 기원전 270년 전립선염으로 사망하던 날에도 친구들에게 감동적이고 애정이 담긴 편지를 썼으며, 자신보다 먼저 죽은 제자들의 가족들을 돌보아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섬세하고 고귀하며 매력적인 성품을 지녔던 에피쿠로스는, 욕심 없고 온화하고 선량하며 특히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다. 300권이 넘는다는 그의 저서들 중에 현재 전해지는 것은 40개의 짧은 경구와 3편의 서간뿐이다. 이 3편의 편지는 자연학을 다룬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편지>, 천문학과 기상학을 다룬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편지>, 윤리학을 다룬 <메노이케우스에게보낸 편지>이며, 그의 경구들은 디오게네스 래르티우스(Diogenes Laertius, 300~350)의 저서에 보존되어 있다.
〔철학 사상〕 에피쿠로스는 불안정한 이 세상에서 어떤 확실하고 안전한 것을 성립시키려고 노력한 철학자였다. 그는 회의주의와 이상주의를 거부하고 철학의 출발점을 이성이 아닌 감각 소여(所與)에 두었는데, 그에 의하면 감각적 경험에 수반되는 쾌락과 고통의 느낌이 궁극적으로 선과 악이 된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주의 철학은 인식론과 자연학 그리고 윤리학으로 나누어지며, 윤리학이 최종 목표이다.
인식론 : '규준학' (canonic)이라고도 불린다. 왜냐하면 올바른 인식을 위한 규준(척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식은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위해서만 의미 있는 것이며, 감각적 경험을 통해 성립된다. 우선 기억에 의해 보존된 반복된 경험들이 '예상' (prolepsis)을 가능하게 해주며, 이것은 언어의 사용을 가능하게 해준다. 예컨대 '사람' 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이 이름이 지칭하는 어떤 대상을 예상하게 된다. 따라서 이 예상은 경험을 분류하고, 그 변수의 한계를 정하게 된다. 가령 '사람' 에 대한 예상은 모든 종류의 사람을 포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광범위한 것이지만, 소 · 나무 같은 것들은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상' 은 단지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발견한 유사점과 차이점을 포착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참된 것이고, 따라서 판단 기준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논리학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낱말의 본질적 의미를 캐내기 위해 낱말을 정의할 필요가 없고, 언어와 사유의 형식적 측면에 관한 분석은 실상 아무것도 전해 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자연학 : "무(無)에서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으며, 아무것도 무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에피쿠로스 원자론의 제일 원리이다. 그에 의하면, 만일 이런 기본 가설을 부인하면 발생 가능한 일에 대한 모든 제한이 제기되며, 관찰 가능한 유사성과 차이에 관한 일정한 유형의 지속성은 이런 제한의 제거와는 양립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일정한 유형의 지속성은 어떤 지속하는 실체가 있는 것을 암시한다. 경험의 내용은 모두 변화되는 것이지만, 변화하지 않는 어떤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실제로 변화가 분명히 일어나기 때문에, 이 영속적 실체는 다수이고 상호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실체들은 '구체적인 것들' 〔具體]이다. 왜냐하면 '구체' 들만이 작용하고 작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데모크리토스와는 다른 새로운 원자론이다. 에피쿠로스는 실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운동하기 위해서 이 우주에는 텅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모든 존재는 '구체' (물체)와 공간이라는 두 요소로 설명될 수 있다. 원자들은 영원히 있으며 그들의 전체적인 양은 항상 동일하다(《자연에 관하여》 2권). 영혼과 정신도 원자로 된 물체이다. 따라서 그의 원자론은 곧 유물론이다. 이러한 원자론은 스토아 학파에 의해서 비판받았고, 근세에 들어와서도 논란이 되었다.
윤리학 : 에피쿠로스의 윤리학을 쾌락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가 말하는 기쁨(쾌락)은 욕망이나 욕정을 충족시키는 의미의 쾌락과는 다르다. 기쁨의 직접적인 경험은 비록 그것이 좋다고 느껴지더라도 영속성을 보장받지 못하면 선이 아니다. 그래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삶에서 실천적 지혜(phrone-sis)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실천적 지혜는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주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더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 쾌락을 거부한다. 이 지혜는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전통적인 덕들을 사용할 수도 있다. 철학자만 이 일시적인 기쁨과 무한히 지속될 수 있는 근본적인 기쁨을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철학자들만이 선한 삶을 살수 있다. 고통과 근심을 제거하면 정신은 '평정' 을 누리게 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경험의 한계일 뿐이다. 죽음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으로서 경험의 결과와는 무관한 것임을 인식하고 나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또 우리가 최소한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것 이상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은 기쁨보다는 더 큰 고통을 낳게 할 뿐임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 정신은 운명에 대비하여 여분의 기쁨을 쌓아 두는 역할을 한다. 육체는 현실 속에서만 살고 있지만 정신은 기억과 기대를 통해서 과거와 미래도 관조한다. 현자(賢者)는 지나간 기쁨의 기억을 보존하고 미래에 다가올 기쁨을 기다린다. 한편 그는 기하학이 인간이 직접 경험하는 세계를 기술하지 못하며, 웅변술은 언어의 남용이며, 음악과 시는 정확한 언어 사용과 사고를 방해한다고 비판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그 영향〕 에피쿠로스의 후계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거의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였으며, 에피쿠로스 학파는 4세기까지 존속하였다. 또 에피쿠로스의 직제자로 유명한 람파사쿠스(Lampasacus)의 메트로도루스(Metrodorus, 기원전 330~277)와 미틸레네(Mytilene)의 헤르마쿠스(Hermachus, 기원전 325~250)는, 인식론 · 윤리학 · 웅변술 · 시학 등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기원전 2세기에는 시돈(Sidon)의 제논(Zenon), 라코니아(Lacomia)의 데메트리우스(Demetrius) 등이 활발하게활동하였는데, 이들은 웅변술 · 논리학 · 시학 · 음악이 철학적 가르침과 도덕적 훈련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라틴 문학가로 유명한 치체로(M.T. Cicero, 기원전 106~43)와 베르질리우스(M.P. Vergilius, 기원전 70~서기 10), 호라시우스(F.Q. Horatius, 기원전 65~8) 등이 에피쿠로스 학파의 강의를 듣고 그들을 존경하였다. 그리고 루크레티우스(T. Lucretius Carus, 기원전 96~55)가 로마에에피쿠로스주의를 확산시켰다. 근세의 원자론 역시 그 기원을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찾을 수 있으며, 니체(F.W. Nietzsche, 1844~1900)의 도덕론과 삶에 대한 기술도 에피쿠로스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중요한 특색은 우정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은 친구들 때문에 살고 있으며 자기 자신까지도 친구들에게 바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가 삶의 행복에 기여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우정만큼 위대하고 성과가 많으며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편 539). "사람들은 기쁨을 위해 친구를 택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친구를 위해서는 가장 큰 고통도 받게 된다"(단편 546). 에피쿠로스주의는 철학의 초보자들, 부와 지위,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였으나 우 매하지 않은 더 많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삶, 필요 이상의 욕망을 억제하고 친구들을 믿고 우정을 가꾸며, 태평스러운 기쁨을 누리도록 가르쳤다. 그들에게 우정은 지혜의 결과이다. "벗이여,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황금 빛 생명의 나무는 푸르도다" 라고 한 에피쿠로스의 잠언은 후대에 괴테(J.W. von Goethe, 1749~1832)가 좋아한 경구가 되기도 하였다. (→ 그리스 철학)
※ 참고문헌 H. Usener, Epicurea, 1887/ E. Brigone, Epicuro, Bari, 1920/ H. Diels, T. Lucretius Carus, De rerum natura, Lateinisch und deut-sch, 1923 · 1924/ C. Bailey, Lucretius,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Oxford, 3rd ed., 1947/ J. Mewaldt, Die geistige Einheit Epikurs, 1927/ C. Bailey, The Greek Atomists and Epicurus, Oxford, 1928/ W. Schmid, Real-lex fur Antike und Christentum, 1960, S. 5/ K. Schlechta Hrsg., F. Nietzsche2, 1956, S. 744. 〔秦敎勳〕
에피쿠로스 (기원전 341 ~270)
〔그〕Epicuros
글자 크기
9권

에피쿠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