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의 거장. 바로크의 선구자로 스페인 최초의 화가.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enikos Theotokopoulos) 보통 '엘 그레코 (그리스인)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이름은 그가 이탈리아에서 생활할 때 얻은 별명으로, 고향을 떠나 일생을 여러 곳을 떠돌며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그에게 붙여진 애칭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태어난 국가 이름이나 출신 도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엘' 이라는 관사는 베네치아 사투리이거나 스페인어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생 애] 엘 그레코는 1541년 고대 그리스 문명이 태동한 크레타(Creta) 섬 칸디아(Candia)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크레타는 베네치아의 영토였으며, 멸망한 비잔틴 제국의 미술이 옮겨 와 예술의 중심지가 된 곳이었다. 크레타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회화 수업을 받았는데, 초기에 받은 추상적이며 영성이 강조된 비잔틴 이콘의 영향은 그의 생애 동안 회화에 반영되었다.
1560년경 베네치아로 간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베네치아파 화가인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490~1576)의 제자가 되어 본격적인 회화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1565~1566년에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의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얼마 후에는 베로네세(P. Veronese, 1528~1588)를 만났다. 그는 환상적인 색채와 고도로 세련된 구성 등 당시 절정에 이른 베네치아 회화를 거장들에게서 직접 배워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혀 갔다. 1570년 만토바, 페라라, 보로나, 파르마, 피렌체를 거쳐 로마로 간 엘 그레코는 세밀화가이며 그의 후원자인 클로비오(G. Clovio, 1498~1578)의 주선으로 페르네세(A. Fernese) 추기경의 집에 머물렀다. 이 시기에 그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와 라파엘로(Raffaello)의 작품을 접하게 되는데, 특히 미켈란젤로의 조각으로부터 감명을 받았다. 당시 로마는 양식사적인 관점에서 매너리즘(mannerism)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엘 그레코도 그 영향을 받았다.
1576년 이탈리아를 떠나 스페인으로 간 그는 마드리드를 거쳐 1577년 톨레도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헤로미나(Geromina de las Cuevas)와의 사이에서 외아들 호르헤 마누엘(Jorge Manuel)이 태어났다. 스페인에서 그는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Santo Domingo el Antiguo) 수도원 성당의 중앙 제단화를 비롯하여 톨레도 수도원, 에스코리알(Escorial) 궁 등 많은 교회와 수도원의 제단화와 종교화를 제작하였다. 1614년 4월 7일 톨레도에서 사망한 엘 그레코는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 성당에 있는 가족 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호르헤 마누엘이 수녀들과 말다툼을 벌인 일로 가족 묘지가 산토르 콰토 성당으로 옮겨졌으나, 현재는 그 성당이 파괴되어 아무런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작 품] 주제적인 측면에서 엘 그레코의 작품은 몇몇 초상화를 제외하고는 초기부터 일관되게 성서, 특히 복음서의 내용에 기초한 종교화가 주를 이룬다. 특히 반종교 개혁의 영향과 16세기부터 꽃피우기 시작한 스페인의 신비주의 문학이 그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기록에 의하면, 엘 그레코는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와 십자가 성 요한의 글에서 많은 종교적인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 그의 작품들은 색채와 구성에서 탁월함을 보인다. 아마도 베네치아에서 머무르던 시기(1560~1570)에 투명하고 찬란한 색채에 대한 충분한 학습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장님을 고쳐 주는 그리스도>(Chist Healing the Blind, 1567~1569)와 <성전 정화>(Purification of the Temple, 1566~1571)가 있는데, 색채와 구도 면에서 틴토레토와 베로네세의 영향이 다분히 나타나 있다. 또 로마 시기(1570~1576)의 작품들은 구성 면에서 웅장하고 움직임이 강하며 황금색에 가까운 노란 색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대표적 작품으로는 <주님 탄생 예고>(Ammunciation, 1575) · <삼위 일체의 우의> (Allegory of the Holy League, 1576~1577)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이 완숙기에 이른 톨레도 시기(1577~1614)의 작품들은 베네치아화파의 투명하고 찬란한 색채에서 가져온 붉은 색과 노랑과 초록의 묘한 조화, 미켈란젤로의 격정적이며 웅장한 구성, 매너리스트들의 길게 늘어진 인체들과 신랄한 색채 등이 골고루 혼합되어 엘 그레코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승화되어 있다. 그 절정은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Burial of the Count of Orgaz, 1586~1588)에서 볼 수 있다. 톨레도의 산토 토메(Santo Tomé) 성당에 있는 이 거대한 작품은 신앙심 깊은 오르가스 백작이 사망하자, 그의 장례식에 스테파노 성인과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나타나 자신들의 손으로 유해를 무덤 속에 안치시켰다는 1323년의 기적을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은 신심 깊은 이의 덕을 찬양하고, 하늘 나라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하여 제작되었는데, 지상과 천상의 이분법적인 구도가 죽은 이의 혼을 들고 가는 천사에 의해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왼쪽에 있는 소년은 엘 그레코의 아들인 호르헤 마누엘로, 그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손수건에 화가의 서명과 소년이 태어난 해인 1578년이라는 연도가 적혀 있다. 모든 행동이 그림의 정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작품에는 마니에리스모(manierismo) 양식을 따른 엘 그레코의 구성법이 다른 작품보다 가장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의 작품은 특히 1600년 이후, 인체는 더욱 가늘고 길어지며 색채는 한층 신비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띠게 된다. <부활>(Resurrection) · <성령 강림>(Pentecost, 1605~1610)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강한 행동, 극적인 반사광, 격양된 듯한 격렬한 움직임과 가늘고 길어진 인물의 표현과 대담한 단축법은 엘 그레코 예술 혼의 자유로움과 함께 바로크를 예견하고 있다. → 가톨릭 미술 ; 티치아노)
※ 참고문헌 J. Lassaigne, El Greco, 1973/Leo Bronstin, El Greco, Abrams, 1950/ Thames and Hudson Ellis Water-house, El Greco, Funk & Wagnaills, 1978. [朴性垠]
엘 그레코 (1541~1614)
〔스〕El Gr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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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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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