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아 학파

學派

〔라〕Elea schola, Eleatae · 〔영〕school of Elea, Elea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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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초 이탈리아 남부의 엘레아에서 생겨난 철학 학파.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기원전 565~488)가 주도하고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40~470)가 창시한 학파로서, 존재의 통일성 · 영원성 · 불변성 등과 함께 존재와 사고의 동일성을 주장하고 존재-일자(一者)를 진상(眞相)이라고 주장하였다. 크세노파네스가 조국 콜로폰(Colophon)에서 추방당하여 시칠리아(Sicilia)의 잔클라 칸타나에서 살았을 때, 이탈리아 본토의 엘레아를 왕래하며 그곳에서 파르메니데스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때문에 디오게네스(Diogenes von Sinope, 기원전 412~323)
는 그를 엘레아 학파의 창설자라고 하였지만, 엘레아 학파의 진정한 창시자는 파르메니데스이다. 엘레아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일자를 주장한 파르메니데스 외에, 다(多)와 운동을 부정한 제논(Zenon, 기원전 490~430)과 존재-일자의 전체적이고 완전한 무제한성 · 비물질성 · 무감각성을 추가로 주장한 사모아(Samoa)의 멜리소(Melissos, 기원전 5세기경)가 있다.
[크세노파네스의 사상] 발달된 문명 · 향락주의 · 부패 등으로 국가가 패망하는 것을 직접 체험한 크세노파네스는, 패망의 원인이 도덕의 부재(不在)에 있으며, 이는 당시 만연하였던 의인론적 신관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였다.
그는 우선 그 사회를 지배하던 올림피아 경기의 힘의 경쟁보다는 지혜의 우위성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을 지배하던 의인론적 신관을 비판하였다. 전통적인 의인론적 신관에서는 신들(호머나 헤시오드 등)도 간통 · 시기 · 질투를 하고, 신들의 수도 많다. 크세노파네스에 의하면, 신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사람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신은 다수일 수 없으며 단 하나이다. 그것은 전체이며, 동시에 일자이다. 신은 세계 자체이다. 신은 동일한 곳에 있으며,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움직인다는 것은 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신은 전신으로 보고, 생각하고, 듣는다. 그러나 신은 초월해 있지 않다. 신은 이성(理性) 자체이다. 이러한 크세노파네스의 신관을 이신론(理神論, deismus)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인격신(人格神)을 주장하는 유신론(有神論)과는 구별된다.
이오니아 학파(Ionische Philosophie)의 자연 철학을 성립시킨 이성이 크세노파네스에게서는 주체적이며 윤리적으로 파악되었으며, 과거의 인위적 종교를 비판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를 이용하여 그는 '하나' 와 '전체' 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연과 인간의 이성을 통한 일치를 주장하였을 뿐, 몰락해 가는 문명을 재건할 수는 없었다.
[파르메니데스의 사상] 밀레토스(Miletos) 학파에서 비롯한 초기 그리스 철학은 현상적인 존재를 출발점으로 하여 그것의 근원된 원질(原質)이 무엇인가를 물었고, 또 이 양자 사이에 있는 관계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방법은 경험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이 확연히 구별되지 않아서, 학문으로서의 체계가 다소 불완전하였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82~497/496) 학파에 이르러 수학이 정초되자, 이 양자는 구별되고 논리적인 것으로 학문이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이 논리적인 것에 있어서 개별적인 학문과 전체적인 학문이 구별되어야 하였으나, 그러한 반성 없이 수학은 물활론적(物活論的)인 경험론과는 다르게 철학적 사고가 성립하는 기초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순수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철학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경험적인 입장을 억누르고 또 선도할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수학의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방식을 철학에 도입한 사람이 파르메니데스이다. 파르메니데스는 피타고라스, 크세노파네스와 더불어 이탈리아 학파에 속하였다. 그는 나폴리 남쪽에 있는 조용한 식민지 엘레아에서 고독하게 사색을 즐기며 살았던 사람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당시 소란스러운 이오니아의 환경을 벗어나서, 현실을 떠나 '존재의 영원한 진리' 를 모색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의 철학시(詩)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젊은 파르메니데스가 태양의 여신에게 인도되어, 마차를 타고 밤[暗黑]의 집을 떠나 큰길을 가다가 진리의 길과 허위의 길이 나누어지는 지점에 당도하였다. 정의(正義)의 여신의 인도를 받아 전자의 길을 택한다(단편 1~27). 이런 내용은 철학사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지만, 영국의 철학사가 버네트(J. Burnet, 1863~1928)는 진리의 길이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갈라져 나온 파르메니데스 자신의 길이라고 해석하였다.
파르메니데스는 진위(眞僞)의 두 길이 다 있다고 하였다. "···풍부한 진리의 흔들리지 않는 정신과 참된 확신이 없는 가시적인 인간의 지식, 이 양자 모두를 다 아는 것이 당신에게는 적절하다. 그러나 당신은 또한 모든 사물들을 관통해 있는 현상 자체도 어떤 확률적인 방법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단편 1, 28~ 32). 진위 두 길 중에서 진리의 길을 택하는 것이 곧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 있어서 모든 존재는 수(數)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는 그 자체가 실체인 까닭에 수와 수 사이에 있는 것은 실체의 부정자 즉 허공이며, 허공은 허무(虛無)인 공간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허무 속에 들어 있으며, 그 속에 둘 러싸여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에게 있어서 이러한 세계관은 불안한 세계관이다. 따라서 수학에서 시작된 순수 사변적인 사고는 예기치 않 았던 문제에 부딪혀, 무(無, μή-ὄν)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만약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철학적인 문제는 헛수고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진리의 길 :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무는 없는 것이다. 무가 있다면, 무 자체의 본질에 배치된다. 무는 없는 것인데, 다만 말[言]에만 존재할 뿐 사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고는 존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라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억견(憶見, δοξα)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무의 존재가 진리일 수 없다면, 피타고라스가 말하는 '허공' 은 사라지고 만다. 무는 무이며 유(有)가 아니다. 또 유는 유이며 무가 아니다. 유는 유인 까닭에 생성되지 않는다. 만약 생성된다면, 무에서 생성되었거나 타자(他者, ἓτερον)에서 생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유가 무에서 생성될 수 없기 때문에 타자에서 생성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도 불가능하다. 타자가 있다면, 그것은 무를 가정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존재자 외에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존재자는 변화하지 않는다. 존재가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라거나, 무가 무이면서 동시에 존재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태양은 나날이 새롭다" (단편 6),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12), "우리는 있으면서 동시에 없다" (49)와 같은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기원전 576~480)의 학설은 '양두(兩頭) 괴물'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허위로 만들고, 허위를
진리로 만드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존재와 무의 논리적인 성격이 곧 그것의 존재 여부를 규정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따르면, 논리적인 것과 존재적인 것의 혼용(混用)은 분명히 수학과 같은 개념적 존재에서 볼 수 있는데, 수는 그것의 존재와 사고가 일치한다. 물론 수학에 있어서도 '0' [零]이 사고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존재와 사유의 교환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생성은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이거나 아니면 타자에서 나오는 것인데, 둘 다 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확인된 이상, 무는 사유의 대상이 안되며, 사유와 존재는 같아야 한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단편 2~8에서 여신을 통해 말하고 있다.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발견에 관한 유일한 길이 어떤 것인가를 나는 너에게 말하노라. 바로 그 유일한 길은, 사유하는 것(νοἑιν)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하나는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길, 이것은 여신의 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다른 또 하나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나는 그 길(비존재의 길)을 알수 없는 길이라고 표현한다. 무-불가능한 것은 알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다. 사유는 존재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편 2).
파르메니데스는, 무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유의 무성(無性)을 배제한다. "말하고 사유하는 것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왜냐하면 존재는 존재하고, 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그러한 것들을 말할 것을 명령하노라. 왜냐하면 그것(무)을, 연구의 첫 번째 방법으로부터 나는 너에게서 저지하노라. 그리고 나서 그런 일 은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가시적인 사람들이 방황하는 것으로부터 너를 방어하기 때문이다. 그들(방황하는 자들)의 마음속에는, 그들의 불행한 정신을 이끌어 주는(구해주는)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은 없다. 이들은 장님이며 귀머거리들과 같으며,이 사람들은 난처하게 되는 사람들이고, 분별이 없어서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예컨대 헤라클레이토스)에 있어서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동일한 것이요, 또 동일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며, 모든 유(有)를 위해 존재하는 길은 이 (존재와 무를 섞는) 두 개의 길의 과정인 것이다" (단편 6).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와 무를 뒤섞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존재하는 것-이 길에 대한 유일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존재라는 것에는 비생성적, 비소멸적, 전체적, 단순한(하나의) 수족을 가진, 확고한, 그리고 완전한 등등의 여러 가지 징표들이 있다. ···나(여신)는 그대에게 이 모든 생각들을 설득력 있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러한 즉 가시적인 인간의 어떤 생각들도 그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리라"(단편 8). 그런데 이러한 존재의 개념은 단순히 사고의 대상에서 벗어나서 자연학 안에 포함된다. 존재적으로 존재하는 것, 즉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단적으로 존재하며, 어떠한 가정 위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비성(非性)과 모든 차이(성)를 배제하는 까닭에 허공을 배제하며, 따라서 존재는 충만되어 있으며 연속적이고 불가분적인 것이 된다. 그것은 또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거리의 차(差)를 두지 않는 까닭에, 안팎이 없는 구형(球形, 완전성)을 이룬다(단편 8, 12~15. 26~33. 34~39.42~49). 그리하여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성립되는 모든 '다' 는 일자로 환원되고 만다. 물론 이러한 일자는 우주
의 현상이 아니고, 우주의 참다운 모습(진상)이다.
그러므로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일자란 모든 질적 차이가 배제된 것이기 때문에, 버네트는 존재의 가장 넓은 유(類) 즉 질료라고 해석하였다. 또 다른 철학사가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개념이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질료가 아니라 '형상' 이라고 하였다. 형상은 생성의 배후에서 자동성(自同性)을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논리적인 개념에서 존재론적 개념으로, 그리고 다시 자연학적 개념으로, 그리고 또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옮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위의 길 : 일자 밖에서 변화하고 생성하는 것은 억견이다. 즉 환상(幻想)의 세계이다. 그리고 감각의 세계이다. "나는 너에게 모든 가능적 인간적인 지식에 도움 이 될 확률을 가진 다(多)의 세계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하겠노라"(단편 8, 50~62). " '다' 의 어떤 것도 빛과 어둠이라는 기본적인 반대 쌍들의 상호 관계이지, 어느 하나만으로 된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만유는 빛과 어둠으로 명명되고, 각자 그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이런저런 것들에게 이런저런 이름들이 주어지는데, 만유는 양자 동일한 힘을 가지고 작용하지, 그 어떤 사물도 그 양자들 중 하나에만 참여하는 일은 없다" (단편 9). 억견의 세계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존재의 10개의 상호 원리인 양의 요소가 재현된다. 이 억견으로서의 감각적 '다' 의 세계의 모든 것은 비성(非性) 위에 정체되어 있고 점철되어 있다(단편 8, 50~61 ; 11~12). "···이런 불행한-비진리적인 요소들로써 이루어진 혼합에 따라 인간은 자기의 인식을 갖는다"(단편 16).
[제논의 사상] 엘레아 학파의 제2 인자인 제논은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이다. 제논은 스승과 동향의 사람이며, 젊었을 때 스승의 학설을 옹호하기 위하여 《철학자를 논박함》이라는 저서를 썼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자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이다. 제논에게도 무(無), 그리고 무인 까닭에 존재하는 변화와 다(多)는 오로지 억견과 오류의 세계이며, 세계의 일자성과 무변화성을 추구하는 것이 그의 굳은 신념이었다. 참다운 세계의 측면만이 참으로 존재하기에 억견과 오류의 세계는 참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것의 비존재성은 증명된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증명 방법이 파르메니데스의 직접적이며 연역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간접적인 방법(귀납법)이었
다. 모순율 위에 서서, 모순되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사유되지도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이 제논의 사유에 기초로 놓여 있다. 그의 사유 전개의 방법은 상대방 을 격파하는 논쟁술이며, 허위에 대해 자인(自認)하도록 상대자를 이끌어 자기 논리의 주장이 정당함을 논증한다는 점에 있어서 대인법(argumentum ad absurdum)을 쓰고있다. 제논은 플라톤 이전에도 이러한 대화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주장했으나,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제논은 '다' 와 운동을 다음과 같이 부정하였다. 즉 '다' 가 만약 있다면, 그것은 무한소(無限少)이거나 무한대(無限大)가 된다. '다' 는 일정한 단위로 구성되어 있 는데, 단위는 "그 이상 분할될 수 없는 것" 이어야 한다. 더 분할될 수 없는 것은 크기를 가질 수 없으므로, '다'의 단위는 크기(magnitude, 연속량)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다' 는 이러한 부분을 보태거나 뺀다고 해서 증감되지 않는다. 그런데 보태도 증가하지 않고, 빼도 감소하지 않는 것은 무이다. 이리하여 '다' 의 부분이 무인 까닭에, 그 크기에 있어서 무한소이다. 즉 다는 무한소이다. 따라서 그 다음으로 크기를 갖고 있지 않는 것은 없으므로, 단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크기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크기를 가지는 것은 무한히 분할되므로, 단위 자체가 다시 무한히 많은 단위로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 는 크기에 있어서 무한대가 된다. 이렇게 해서 '다'는 무한소이면서 동시에 무한대가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는 모순이므로 '다가 있다' 라는 명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제논은 이어서 두 번째로 '다' 를 수(數)로 가정하는 것을 논박하였고, 세 번째로는 '다' 가 공간을 점유한다는 논의들을 모두 논박하여 '다' 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또한 운동을 부정하면서 제논은, 운동이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도달하려면 전 과정의 중간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중간의 중간 지점이 무한히 계속된다거나, 발걸음이 빠른 아킬레우스가 발걸음이 느린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치거나, 날아가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는 역설을 펼치면서, 그러한 논리의 모순들을 기초로 운동을 부정하였다. 또한 만약 운동이 있다면, 일정한 시간이 그것의 두 배가 되는 시간과 같아진다는 논리를 펴면서 운동을 부정하였다. 이처럼 '다' 와 운동의 부정의 논리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논리를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루어졌으나, 사실 제논은 자신이 제시하는 많은 전제들을 통해서, 무의 논리 특히 운동에 있어서의 무의 논리, 부정의 논리를 펼쳤다. (→ 제논 ; 크세노파네스 ; 파르메니데스 ; → 그리스 철학)
※ 참고문헌  H. Diels . W. Kranz,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Weidmann, 1903, 1972¹⁶/ W.K.C. Guthrie, A History of Greek Philosophy, vol. 1, London, Cambridge Univ. Press, 1962/ L. Taran, Parmenides, Princeton, Princeton Univ. Press, 1965. 〔金完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