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독일 튀링겐(Thuringen)의 헝가리인 왕비.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 축일은 11월 17일.
[생 애] 1207년 헝가리의 프레스부르크(Pressburg)에서 헝가리의 왕 엔드레 2세(Endre Ⅱ, 1175~1235)와 왕비 제르트루다(Gertuda) 사이에서 태어났다. 튀링겐의 영주 헤르만 1세(Hermann I , 1156?~1217)는 1211년에 헝가리에 사절을 보내 자신의 맏아들 헤르만과 당시 네 살이었던 엘리사벳을 정혼시키자고 제의하였다. 이는 교회 갈등을 빚고 있던 독일의 오토 4세(Otto Ⅳ, 1175/1182?~1218)에 맞서 정치적인 연대를 공고히 하려는 일종의 정략적인 결혼 제의였다. 이 결정이 있은 뒤 얼마 안되어 어린 엘리사벳은 튀링겐의 궁정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왕의 아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궁정의 화려하고 세속적이며 호사스러운 생활 속에서도 깊은 그리스도교 신심을 간직하였던 그녀는, 늘 기도하기를 좋아하였으며 경건하 고 희생적인 삶을 살고자 하였다.
한편 엘리사벳의 어머니 제르트루다가 1213년에 헝가리 귀족들에게 살해당하였는데, 이는 독일인들의 계략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1216년 12월 31일 엘리사벳과 결혼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헤르만이 사망하자, 엘리사벳은 헤르만 1세의 둘째 아들인 루트비히와 다시 약혼하였다. 사려 깊고 경건한 엘리사벳은 튀링겐 궁정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기를 받아 적지 않은 고통을 겪었으나, 루트비히가 그러한 박해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그녀의 시어머니가 될 소피아도 경건하고 인자한 여인으로서 어린 엘리사벳에게 친어머니처럼 대해 주었다.
헤르만 1세는 교회를 등진 채 정치적인 야망만을 좇다가 1217년 4월 25일에 사망하였다. 1221년에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루트비히 4세는 동시에 마이센(Meissen)과 동 마르크(Mark)의 통치자가 되었으며, 같은 해 엘리사벳과 결혼하였다. 당시 신랑의 나이는 21세, 신부는 14세였다고 한다. 그들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며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모범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였다. 루트비히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그녀의 자선 활동 및 보속과 철야 기도 등의 신심 행위를 존중하고 옹호해주었다. 그는 유능한 통치자요 용감한 군인으로서 명망이 높아졌다.
한편 1221년에 작은 형제회가 독일에 정착하였는데 이는 엘리사벳의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되었다. 작은 형제회 독일 관구의 첫 독일인 회원인 로데거(Rodeger)는 한동안 바르트부르크(Wartburg)에서 엘리사벳의 영성 지도를 담당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로부터 프란치스코(Franciscus Assisii, 1181~1226)의 이상에 대해 듣게 된 엘리사벳은 큰 감명을 받았다. 엘리사벳의 도움으로 1225년 아이제나흐(Eisenach)에 수도원을 세운 로데거와 그 동료들은 그녀에게 자기 신분에 걸맞게 자선과 겸손, 인내와 기도와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쳤다. 로데거의 뒤를 이어 엘리사벳을 지도한 사람은 마르부르크(Marburg)의 콘라트(Conrad)였는데, 어떤 수도원에도 기거하지 않고 있던 그는 매우 금욕적이고 다소 거칠고 엄격한 사람이었다. 또 십자군의 필요성을 역설한 설교가이자 이단 재판관으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콘라트는 엘리사벳을 가차없이 냉혹하게 대했으며, 체벌까지도 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성덕에 도달하기 위한 자아 포기의 길로 인도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엘리사벳이 사망한 다음 그녀를 시성시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루트비히와 엘리사벳은 세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맏아들 헤르만 2세는 어려서 죽었고, 두 번째로 낳은 딸 소피아(1224~1284)는 브라반트(Brabant) 공국의 하인리히 2세와 결혼하였다. 튀링겐 계승 전쟁에서 소피아는 헤센(Hessen)을 빼앗아 자신의 아들 하인리히 1세에게 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낳은 딸 제르트루드(1227~1297)는 아버지가 사망한 몇 주 후에 유복자로 태어났다. 1226년 봄 루트비히 4세가 프리드리히 2세(Fiedrich Ⅱ, 1212~1250)와 함께 이탈리아 크레모나(Cremona)에서 열린 제국 회의에 참석하였을 때, 튀링겐에는 홍수와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 대신 국가의 일을 맡은 엘리사벳은 남편이 다스리는 나라의 곳곳에 자선금을 나누어 주고 심지어 관리들의 옷과 귀금속까지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불우한 사람들을 직접 돌보기 위해서 바르트부르크에 28개 병상의 자선 병원을 세우고 매일 그들의 요구와 호소를 직접 듣기 위해 그곳을 방문하였다. 루트비히 4세는 돌아와 아내가 그동안 한 일을 듣고 모든 일을 흔쾌히 추인하였다고 한다.
이듬해 루트비히 4세는 프리드리히 2세와 함께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다가 그 해 9월 11일 오트란토(Oranto)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엘리사벳은 제르트루드를 낳은 후에야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제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은 죽었도다" 하며 슬피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 후 엘리사벳의 두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졌고, 엘리사벳은 자신의 유산인 헤센의 마르부르크 성에서 쫓겨났는데, 키칭겐(Kitingen)의 수녀원 원장이던 숙모 마틸다가 그녀를 거두어 주어 밤베르크의 주교이던 숙부 에크베르트(Eckbert)에게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숙부가 그녀를 다시 결혼시키려고 하였지만, 엘리사벳은 누가 먼저 죽든 죽은 뒤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던 중에 남편을 따르던 사람들이 이탈리아로부터 남편의 유해와 유품을 보내 와 튀링겐의 가족 무덤에 안장하였다.
콘라트는 자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남편의 유산을 버리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러한 명령은 프란치스코의 청빈을 따르려는 그녀의 뜻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콘라트의 도움으로 남편의 유산을 돈으로 환산하여 받고, 그중에서 상당 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놓았다. 그리고 1228년 성 금요일에 콘라트가 있는 아이제나흐로 떠났다. 그녀와 그녀를 따라간 하녀들은 콘라트에게서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의 옷을 받아 입었다. 그 해 그녀는 마르부르크에 성 프란치스코의 자선 병원을 세우고 스스로 병든 자, 특히 가장 혐오스러운 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서원하였다. 콘라트는 여전히 그녀에게 엄격한 금욕과 영적인 자아 포기를 요구하였으며, 그녀에게 충실한 하인들의 돌봄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하느님을 향한 항구한 신심과 자선을 위한 고된 노동에 지친 엘리사벳은 마르부르크에서 1231년 11월 17일에 사망하였다.
[시성과 공경] 엘리사벳이 사망한 직후부터 병원에 안치된 그녀의 무덤에서는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녀를 시성시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한 콘라트는, 1232년 · 1233년 · 1235년에 일어난 치유 기적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도중 불행히도 살해당하고 말았다. 1235년 5월 28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9세(1227~1241)에 의해 그녀의 시성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같은 해 8월 마르부르크에 엘리사벳에게 봉헌된 아름다운 고딕식 성당의 기초가 놓였고, 1249년에 성녀의 유해가 성당에 안치되었으며, 참배를 위해 찾아오는 순례자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1474년에는 성녀의 축일이 로마 전례력에 수록되었다. 1539년에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된 헤센의 영주 필리프(Philipp, 1504~1567)가 성녀를 참배하는 순례를 금지하였으나, 엘리사벳을 향한 독일 사람들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14세기 이후 엘리사벳의 성화는 망토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몰래 빵을 감추고 나가다가 남편에게 들키자 그 빵이 장미꽃으로 변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 참고문헌 M.F. Laughlin, 《NCE》 5, p. 2821 É. Longpré, 《cath》 4, pp. 19~20/ Les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nnaire hagiographique, Belgique, Brepols, 1991, p. 164/ 《ODCC》, p. 540/ David Hugh Farmer, The Oxford Dictionary ofSaints, Oxford Univ. Press, 1987, p.139/ Enzo Lodi, Saints of the Roman Calendar, trans. by Jordan Aumann, O.P., The Society of St. Paul, 1992, pp. 358~359. [宋炯萬]
엘리사벳, 헝가리의 (1207~1231)
〔독〕Eisabeth Hungariae
글자 크기
9권

헝가리의 엘리사벳 성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