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데, 머시 (1907~1986)

〔루〕Eliade, Mirc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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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시 엘리아데.

머시 엘리아데.

루마니아 태생의 미국 종교 학자.
[생애와 업적] 1907년 3월 9일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Bucuresti)에서 태어나 1986년 미국 시카고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세계적으로 학 문적인 영향을 미쳤다. 엘리아데는 종교학 · 문학 · 심리학 · 철학 · 동양학 전반에 걸쳐 관심을 가졌는데, 당대에도 그가 발표하는 모든 내용들은 항상 선진적인 것이었 지만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물의 깊이에서 작용하는 힘에 이끌리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지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히브리어 · 라틴어와 같은 고전어는 물론, 이탈리아어 · 프랑스어 · 영어 · 독일어 · 페르시아어 등을 20대 이전에 익혔고, 인도로 건너가 산스크리트어를 익혔다.
그의 관심은 종교 현상이었지만 작품 쓰기와 자전적 일기 쓰기는 평생을 두고 계속되었다. 1924년에 쓴 자전 소설 《유년 시절 이야기》(Romanul adolescentului miop)와 1928년 그 속편으로 《가우데아무스》(Gaudeamus, '즐겁게 놀자' 라는 뜻)를 출판한 것은 젊었을 때 쓴 대표적인 문학 작품이다. 대학생이 된 뒤에 그는 로마에 머무르면서 《이탈리아 철학, 마르칠리오 피치노부터 조르다노 브루노까지》(Italian Philosophy, from Marsilio Ficino to Giordano Bruno)를 쓰기 위해 연구하였는데, 이 무렵 다스굽타(Surend-ranath Dasgupta) 교수를 알게 되면서 그의 생애에 큰 전기를 맞게 되었다. 다스굽타에게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면서 동양의 정신 문화의 한 봉우리인 인도의 사상에 깊이 침잠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양의 고전적 전통을 이어받은 엘리아데는 인도의 상상력과 깊이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인도에서의 그의 관심은 다방면에 걸쳤지만, 그중에서도 요가와 명상에 집중되었다. 이 당시 집필된 논문이나 책은 대부분 유럽에서 출판했지만 그의 박사 논문으로 1936년에 펴낸 《요가 : 인도 신비주의 기원》(Yoga : Essai sur les origines de la mystique indienne)은 파리와 부쿠레슈티에서 동시 출판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유럽의 유명한 학자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연금술과 쿠사누스의 신비주의 우파니샤드나 불교를 통한 상징 해석에 남다른 특색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38년에 페타조니(Pettazzomi) 프리줄루스키(Pryzuluski), 아난다쿠마라스와미(Ananda Coomaraswamy), , 칼 클레멘(Carl Cle-men), 헨체(C. Hentze), 롤란드(B. Rowland) 등과 더불어 《잘목시스 : 종교학 연구 리뷰》(Zalmoxis A Review ofReli- gious Studies)를 출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 후 1949년에 그때까지의 그의 종교 연구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사 개론》(Traite d'histoire des religions)이 프랑스에 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곧 이 책은 《종교 형태론》(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이라는 제목의 영문판으로 출간되었는데, 그의 학문적인 무대가 미국으로 옮겨지면서 이책은 더 널리 읽혀지게 되었다.
엘리아데는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그의 생애의 원숙기를 보냈다. 시카고 대학의 하스켈 강좌를 시작으로 미국에서의 학술 활동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에서 그가 처음 강의한 내용이 《이니시에이션의 유형》이었다. 이것은 1958년에 《이니시에이션의 의례와 상징》(Rites and Symbols of Initiation) 《탄생과 재생의 신비》(Mysteriess of Birth and Rebirth)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으며, 이 강의를 계기로 1957년에 시카고 대학의 정식 교수가 되었다. 그 후 미국에서 그의 영향은 여러 면에서 나타났는데, 한때 미국의 신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신 신학자(死神神學者) 알타이저(Thomas J. Altizer) 교수가 쓴 《엘리아데와 성(聖)의 변증법》(Mircea Eliade and the Dialectics of the Sacred)이란 책이 대표적인 예이다. 유럽 문명의 우월성이라는 가면을 벗기고 제3 세계의 문화적 뿌리와 보편성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동양학 전반에 걸쳐 그의 종교 현상학 방법이 널리 응용되었다. 1982
년에 두 권으로 된 《종교 관념의 역사》(A History of Reli-gious Ideas)를 출간한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하다가 1986년 4월 22일 사망하였다. 그가 책임 편집자로 있었던 《종교 대백과 사전》(Encyclopedia of Religion)은 그가 사망한 다음해인 1987년에 세상에 나왔다.
[학문과 사상] 엘리아데는 부쿠레슈티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기, 인도의 캘커타 대학에서 다스굽타의 지도 아래 인도의 철학과 종교를 공부하던 시기(1928~1932) , 그리고 루마니아 외교관 시기(1940~1945)를 제외하면 창작과 저술로 일관된 삶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1969년 그의 회갑을 맞아 봉정된 기념 논총 《신화와 상징》(Myth and Symbols)에서는 그의 학문적 업적을 ① 현상학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 ② 역사적인 것, ③ 문학적인 것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현상학적인 것과 이론적인 면에서 엘리아데의 큰 공적은 서유럽 학자들의 문헌학적인 분석 경향, 지나친 전문화 경향, 현대의 살아 있는 문화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병폐를 지적하고 창조적 해석학, 새로운 휴머니즘을 찾아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한 역사적 비교 연구를 통해서는 소수 민족을 포함한 모든 문화 형태를 단순히 정치적 · 사회적 맥락에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접근함으로써 동양과 서양을 한 핏줄로 만나게 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의 소설 쓰기와 같은 문학을 통해서는 사실을 좇는 역사와 형이상학적 이론을 좇는 철학의 중간을 자유자재로 왕래하면서 사실과 진실을 일치시키고 피가 통하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만약 그의 자서전 쓰기를 하나 더 그의 업적으로 추가한다면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진실을 찾는 한 구도자임을 보여 주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어느 한 분야로 구분할 수 없는 전체적 인간을 산사람이요, 그것을 그의 천재적 통찰력과 학문으로 구현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관심을 가졌던 엘리아데의 사상을 간단히 요약하기는 쉽지가 않으므로, 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거나 혹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그의 독특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가 관심을 가졌던 광범위한 학문 영역에서 차별화된 그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찾는 방법도 그의 사상을 추출하는 방안일 것이다. 먼저 그와 선학(先學)들과의 관계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로는 루돌프 오토(Rudolf Otto, 1869~1937), 반 데 레우(Gerardus Van der Leeuw, 1890~1950) 요아킴 바흐(Joachim Wach, 1898~1955) 프레이저(J.G. Fra-
zer, 1854~1951), 슈미트(W. Schmidt, 1868~1954) , 융(C.G.Jung, 1875~1961) 등이 있다.
루돌프 오토는 종교적인 성(聖, das Heilige)의 개념을 통하여 다른 도덕적이거나 미적인 경험들로는 전혀 환원시킬 수 없는 종교의 독특한 경험이 있음을 밝히려고 하였다. 그것을 초자연적인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 누멘(numen)에서 유래되는 누미노제(das Numinose)라고 부르고, 그 누미노제의 본질을 밝히려고 하였다. 엘리아데도 종교의 본질을 생리학 · 심리학 · 사회학 · 경제학 · 언어학 · 예술 등과 같은 분야로 파악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성스러운 것(the sacred)이라는 말로 즐겨 표현하였다. 다만 오토와 다른 점은 오토는 성(聖)을 신적인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여 다분히 그리스도교적인 의미에서 신학적인 개념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엘리아데는 신성한 것은 반드시 신적인 것에만 국한하지 않고 존재론적이고 실재적인 의미를 가진 폭 넓은 개념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종교 경험은 도처에서 생겨나는 보편적인 것으로, 속(俗)과 대칭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고, 이러한 이분법은 히에로파니(hierophany)의 원리 때문에 생겨진다고 하여 새로운 용어를 창출하기도 하였다.
종교의 연구를 현상학적으로 접근한 엘리아데의 선배는 반 데 레우였다고 할 수 있다. 엘리아데도 크게 보면 반 데 레우와 같은 현상학적인 방법으로 종교를 연구하 였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점은 종교 현상을 낳은 개별적 '역사' 를 도외시하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비록 반 데레우처럼 역사적 특수성이 아니라 그 일반성과 종교 현 상의 '구조' 에 관심을 갖기는 하였지만, '현상학' 과 '역사' 의 상호 보충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엘리아데는 철저한 현상학자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카고 학파의 수장 격인 요아킴 바흐의 뒤를 이은 엘리아데는 바흐와 동일한 방법론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바흐의 해석학에 동조하여 그도 역시 종교 현상은 종교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해석학이라고 설명하였다. 종교 현상의 환원 불가능성은 해석학을 통해서만이 전달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 밖에도 엘리아데는 인류학적 업적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종교학에서 활용하려 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청년 시절부터 그의 큰 관심의 대상은 프레이저였다. 그러나 프레이저의 종교적인 자료들이 역사적인 문맥을 무시하였거나 동떨어진 해석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엘리아데는 종교 현상학자였지만 역사적인 문맥을 매우 중요시하려고 하였다. 인류학자 가운데 슈미트도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관점은 서로 달랐다. 슈미트는 인류학적인 자료들 가운데에서도 그 밑바닥에 흐르는 초역사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진화한 종교 형태의 진화론적인 관점이 암암리에 깔려 있다. 슈미트의 원시 일신교(urmonotheismus)는 엘리아데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다. 인간의 종교 생활은 처음부터 매우 복잡했고 비교적 진화된 정교한 사상들이 이른바 낮은 형태의 신앙들과 공존했다는 것이 엘리아데의 주장이다.
※ 참고문헌  M. Eliade, Patterns in Comparatuve Religion, London . New York, 1958(이은봉 역, 《종교 형태론》, 한길사, 1996)/ 一, The Myth ofEternal Return, New York, 1955(정진홍 역, 《우주와 역사》, 현대사상사, 1976)/ 一, Yoga : Immortality and Freedom, Routledge and Kegan Paul, 1958(정위교 역, 《요가》, 고려원, 1989)/ 一, Myth and Reality, Harper and Row, 1963(이은봉 역, 《신화와 현실》,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85)/ 一, The Sacred and the Profane, Harcourt, 1959(이은봉 역, 《성과 속》, 한길사, 1998)/ 一, Shamanism : Archaic Techmi-ques ofEcstasy, Routledge and Kegan Paul, 1964(이윤기 역, 《샤마니즘》,까치, 1992). [李恩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