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영〕Republic of El Salv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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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메리카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로, 공식 명칭은 엘살바도르 공화국(La Republica de El Salvado). 북쪽과 동쪽은 온두라스, 서쪽은 과테말라와 접해 있으며, 남쪽은 335km에 걸쳐 태평양과 맞닿아 있다. 면적은 21,041k㎡이고, 인구는 6,030,000명(2000)이며, 수도는 산살바도르(San Salvador)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 국민은 메스티조가 대다수이며, 인디언이 소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의 94%가 가톨릭 신자이다.
16세기 초 엘살바도르 지역에는 마야계 부족인 피필족(Pipiles)과 렌카족(Lencas)으로 이루어진 쿠스카틀란(Cuzcatlan)과 차파라스더케(Chaparrastique)라는 왕국이있었다. 그러나 1522년 스페인인 니뇨(A. Nino)가 탐험한 뒤부터 이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정복 활동이 시작되었다. 1524년 스페인인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가과테말라를 물리친 뒤 쿠스카틀란 지역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면서 정복한 다음, 산살바도르(1525) · 산미겔(SanMiguel, 1530) 등 주요 식민 도시들을 건설하였으며, 이 시기에 가톨릭 신앙이 전해졌다. 식민지 시대에 엘살바도르 지역은 과테말라 총독의 관할이었으며, 1811년 마티아스(J. Matias) 신부가 산살바도르에서 처음으로 독립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 1821년 과테말라가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자 엘살바도르는 이를 지지하는 형태로 독립되어 멕시코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이듬해 제국이 무너진 후 다른 중앙 아메리카 국가들과 함께 '중앙 아메리카 연방' (Provincias Unidas de Centroamerica)을 결성하였으나 연방 내 분쟁이 끊이지 않자 1841년 연방으로부터 분리 · 독립하였으며, 1856년에는 공화국이 되었다. 독립 국가로서 엘살바도르는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논쟁과 반목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으로 정상적인 발전을 이룰 수 없었다. 인접 국가들과의 영토 분쟁도 계속 되었으나 1907년 니카라과(Nicaragua)의 제안으로 중앙 아메리카 국가들이 모여 평화 조약을 맺으면서 분쟁은 다소 진정되었다. 그러나 1931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이 지방 자치 단체 선거에서 승리한 공산당원들의 취임을 막고, 이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수만 명의 농민들을 학살하면서 정치적 불안은 다시 심화되었다. 1979년 군부가 쿠데타로 축출된 뒤, 임시 정부는 여러 개혁 정책들을 추진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이에 따라 이듬해 10월 다양한 좌익 분파들이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 해방 전선' (FMLN)을 형성하였고, 엘살바도르 전역은 내전상태에 빠졌다. 12년 동안의 내전 끝에 1992년 1월 정부와 FMLN은 평화 협정을 체결하였다.
〔복음의 역사] 식민지와 독립 시대의 교회 :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시대의 엘살바도르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원주민 인디언들의 종교는 단순하고 정령 숭배적인 탓에 그리스도교에 쉽게 동화되었으며, 설립된 교계 제도는 식민지 사회의 엄격한 계층적 구조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였다. 교회는 독립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으나,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의견 대립으로 사회는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은 외국 사상에 상대적으로 더 개방적이고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며 자유 방임적인 경제 발전을 선호하였으며, 가톨릭 교회가 일반 국민의 생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규제하고자 하였다. 이에 반해 보수주의자들은 보호주의적 경제 정책을 더 선호하였고 도덕의 중재자, 그리고 사회적 · 정치적 기존 질서의 수호자로서 교회의 전통적인 역할을 옹호하고자 하였다.
자유주의 정부와 현대의 교회 : 1871년부터 1927년까지 엘살바도르의 자유주의 정부는 자유 시장 경제 원리에 충실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의 반성직자주의적 태도는 직접적인 억압이나 소유권 몰수 등을 통해 표출되었다. 교회에서는 1930년대의 사회적 갈등 · 저항 · 억압 등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응답으로, 이른바 '사회적 그리스도교 라는 개혁적인 가톨릭 흐름이 나타났다. 교계와 독립적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관여하는 평신도 활동가들에 의해 주도된 이 운동은 기존 사회 체제를 부정함이 없이 그 안에서 점진적 개혁을 시도하였고, 196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다. 이 같은 운동에도 불구하고 엘살바도르는 다른 중앙 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결혼 · 세례 등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세속화되어 가톨릭적 전례나 관습 또한 크게 약화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메델린 라틴 아메리카 주교 회의(1968)
등의 영향으로 교회는 더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대한 지배층의 방해와 반발이 끊이지 않았고 이러한 갈등은 교회 안에서도 반복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 3월 적극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정의와 인권을 옹호했던 산살바도르 교구장 로메로(Oscar Arnulfo Romero y Galdamez) 대주교가 미사 중에 살해되었고, 또한 4명의 미국인 신자들이 살해되었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교회는 사회 정의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산살바도르 대교구의 인간 권리 사무소인 '투텔라 레갈 (Tutela Legal)은 직권 남용 · 정치적 살인 등을 자세히 조사하여 기록하였고, 희생자들에게 법률상의 지원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1989년 11월 16일 엘살바도르의 중앙 아메리카 대학교에서 6명의 예수회 회원과 2명의 여성 신자가 암살당하였다. 또한 교회의 지도자 특히 로메로 대주교의 계승자인 다마스(Arturo Rivera Damas) 대주교는 평화 발전과 정착 과정에서 활동적이었는데, 그로 인해 1990년대에 교회와 정부의 관계가 냉각되었다. 교회 지도자들은 종종 미국 정부가 불법 이민자이지만 엘살바도르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는 수천 명의 엘살바도르 이주자들을 추방하지 않도록 촉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에 있었던 태풍 미치(Mitch)의 피해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2000년 현재 5,675,000명의 신자가 있으며 대교구 1, 교구 7, 군종 교구 1, 본당 361개에 대주교 2, 주교 11, 사제 602(교구 소속 394, 수도회 소속 208), 수사 100,수녀 1,279명이 있다. → 라틴 아메리카 ; 로메로, 오스카 아르눌포)
※ 참고문헌  L. Lamadrid, 《NCE》 5, pp. 288~289/ 2001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16/ Ramon Garcia-Pelayoy Gross, Pequeno Larousse Ilustrado, Ed. Larousse, Paris, 1988/ Pablo Richard, Morte das Cristandades e Nascimento da Igreja, Ed. Paulinas, Sao Paulo, 1984. [金沆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