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8년부터 36년까지 대제관으로 재직했던 인물(유대고사 18, 2, 2 ; 18, 4, 3). 대제관은 본디 사독 가문에서 선발되고 종신직이었으나 헬라 시대(기원전 333~63)로마 시대(기원전 63~서기 70)에는 정교간의 알력과 제관 가문들의 권모술수로 하급 제관 가문에서 선발되었고, 수시로 퇴직하거나 파직되기도 하였다. 헤로데 대왕이 아나넬을 대제관으로 임명한 때부터 서기 70년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재직한 대제관이 무려 28명이나 되었다(유대고사 15, 22, 34). 그중에서 한나스와 가야파가 오래 재직했다. 한나스는 6~15년에 대제관으로 재직하다가 퇴직했지만 그 영향력이 막강하여 아들 다섯(엘레아자르, 요나단, 테오필루스, 마티아스, 한나스 2세)이 대제관이 되었다(유대고사 20, 9, 1). 무려 18년 동안 재직한 대제관 가야파는 한나스의 사위였다(요한 18, 13).
가야파는 신약성서에 아홉 번 거명된다(마태 26, 3. 57 ; 루가 3, 2 ; 요한 11, 49 ; 18, 13. 14. 24. 28 ; 사도 4, 6). 가야파는 최고 의회를 소집하여 예수를 심문하고 본시오빌라도 총독에게 대역 죄인으로 고발했는데, 역사 비평적으로 그 경위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30년 4월 6일 목요일 밤 예루살렘 시내 친지 집 이층 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 만찬을 드신 다음 올리브 산 기슭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시다가, 최고 의회에서 보낸 하인들에게 붙잡혀 대제관의 저택으로 끌려갔다. 대제관 저택은 지금의 시온 산에 자리했던 것 같다. 정식으로 최고의회(정원 70명)를 소집하지는 않고 아마도 중견 의원들만 불러 예수를 심문했던 것 같다. 심문 결과 본시오 빌라도 총독에게 대역 죄인으로 고발키로 의결하고, 4월 7일 금요일 아침에 총독 관저로 압송했다(마르 15, 1). 총독 관저의 위치를 두고 주장이 분분하나 지중해변 가이사리아에 상주한 총독이 예루살렘에 출장 올 때면 예루살렘 서쪽 요빠 성문 근처에 자리한 헤로데 궁전에서 유숙하며 정무를 보았으리라 여겨진다. 총독은 최고 의회의 정치적 고발을 그대로 받아들여 당일 예수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사형 집행을 명했다.
가야파 대제관과 최고 의회가 예수를 처단코자 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평소에 예수가 그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율법 이해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개인적 감정과 종교적 동기로 예수를 처단코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로마 총독만이 사형 집행권을 가지고 있고 총독이 종교 문제를 다루기를 꺼렸기 때문에, 최고 의회에서는 부득이 종교적 죄목 대신 정치적 죄목을 만들어 예수를 총독에게 고발했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 14장 61-64절에서는, 예수가 최고 의회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여 사형을 언도받은 양 말 하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기보다는 후대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론적 언명일 것이다.
※ 참고문헌 Joseph Blinzler, Der Prozess Jesu, Regensburg : Pustet 4th ed. 1969/ Joachim Gnilka, Das Evangelium nach Markus, 《EKK》, Ziirich : Benziger 1979, pp. 284~288/ Karl Kertelge(ed.), Der Prozess gegen Jesus, 《QD》 112, Freiburg : Herder 1988/ Bruce Chilton, 《ABD》 1. 〔鄭良謨〕
가야파
〔그〕Kaiphas · 〔라〕Caiph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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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가야파의 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