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서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 4번 언급되는 지명. 동시에 가나안 지방에 거주하였던 한 민족의 이름으로 41번 등장한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정착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가나안의 여섯 민족(가나안, 헷, 아모리, 브리즈, 히위, 여부스), 또는 여기에 기르갓족(Girgashites)이 추가된 일곱 민족의 명단이 모두 27번 나온다. 이 명단에 여부스는 22번이나 포함되어 있다. 창세기 10장의 '민족들의 계보' 에서는 여부스가 가나안의 아들로 나와 있다(창세10, 16). 여부스 민족은 예루살렘 근처의 산지에 퍼져 있는 것으로 나타나며(민수 13, 29 : 여호 11, 3),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난다(여호 15, 8 ; 18, 16). 또한 여부스 민족은 예루살렘의 거주민과 일치하기도 한다(여호 15, 63 : 2사무 5, 6).
그런데 여부스가 곧 '예루살렘' 이라는 구절(여호 18, 28 ; 1역대 11, 4)은 후대에 첨가했을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이집트의 저주 문서나 아마르나 문서에 등장하는 반면에, 여부스라는 지명은 구약성서 외의 다른 자료에는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여부스가 베냐민 지파의 남쪽 경계를 이룬다고 하였는데(여호 15, 8 : 18, 16) 만일 예루살렘이 여부스라면 너무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베냐민의 경계가 되기에는 부적합한 면도 있다. 따라서 예루살렘이 여부스라는 지명의 일치는 아마도 여부스 민족이 한때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거주하였기 때문에 여부스 민족의 도시라는 개념이 와전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막강한 요새로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여부스는 다윗의 부하 요압이 점령한 뒤부터 '다윗의 도성' 이라고 불렸다(1역대 11, 4-7 ; 2사무 5, 6-9). 다윗이 여부스를 정복한이후에도 여부스 민족이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왜냐하면 다윗은 야훼께 번제를 드리기 위해 여부스의 왕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은 50세겔에 구입하였기 때문이다(2사무 24, 18-25). 솔로몬 시대에 들어와서 여부스 민족은 이스라엘의 노예로 고용되었다(1열왕 9, 20-21) .
※ 참고문헌 T. Ishida, The Structure and Historical Implications of the Lists of Pre-Israelite Nations, Biblica 60, 1979, pp. 461~490/ J.M. Miller, Jebus and Jerusalem : A Case of Mistaken Identity, Zeitschrift des deutschen Palastina-Vereins 90, 1974, pp. 115~127/ S.A. Reed, 《ABD》 3, pp. 652~653. [金 聲]
여부스
〔히〕יְבוּסִי · 〔라〕lebus · 〔영〕Je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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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여부스는 다윗이 점령한 뒤 '다윗의 도성' 이라고 불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