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회 사적지. 충청남도 예산군 신종면 신암리 소재. '내포(內浦)의 사도'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1759~1801)과 그가 입교시킨 김광옥(金廣玉, 안드레아) · 김희성(金稀成, 프란치스코) 부자의 고향. 이곳 여사울에 복음이 전래된 것은 이존창이 1784년 겨울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에 스승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 ·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형제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천주교 신앙을 전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이곳의 복음은 내포 평야 지역에 널리퍼지게 되었고, 여사울은 내포 교회, 넓게는 충청도 교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에 앞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李潼)의 제자로 일찍이 서학을 받아들인 홍유한(洪儒漢)도 경상도로 이주하는 1775년까지 이곳에서 거주하였으며, 1777년에는 이존창의 스승인 권철신과 이기양(李基讓)이 여사울 이존창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존창은 1786년 이래 초기 교회의 지도층 신자들이 조직한 가성직자단(假聖職者團)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791년의 신해박해(辛亥迫害)로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고, 그 해 말에는 여사울을 떠나 충청도 홍산(鴻山)을 거쳐 전라도 고산(高山)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면서 여사울의 신앙은 김광옥 등 남아 있는 신자들에 의해 유지되어 나갔으나,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이존창 · 김광옥이 순교하고 김희성이 경상도로 이주하면서 여사울이라는 이름도 교회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후 1984년에 이르러 대전교구 신례원(新禮院) 본당에서는 구전을 토대로 여사울 이존창의 생가 터를 찾아 발굴한 끝에 십자고상 · 성모상 · 성패 등을 발견하여 절두산 순교 기념관에 기증하였으며, 1987년 11월 1일에는 그자리에서 이존창의 생가 터 축복식 및 기념비 제막식을 갖고 사적지로 조성하였다. (→ 이존창 ; 내포 교회)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가톨릭 사전》 車基眞, 〈丙寅迫害와 충청남도 殉教者에 대한 연구>, 《歷史와 社會》, 현암사, 1997.[車基真]
여사울
餘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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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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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존창의 생가 터에 조성한 여사울 사적지 전경(왼쪽)과 이곳에서 발굴되어 절두산 순교 기념관에 기증된 성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