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본당

礪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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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196 소재. 1959년 1월 17일 화산(華山, 현 나바위)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치명자의 모후. 관할 구역은 여산면 전 지역과 충남 논산시 연무읍, 익산시 망성면 내촌리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두화 봉동 · 마전 · 고분 · 신근리 · 황화정 · 성치 7개소. [교 세] 1964년 1,358명, 1971년 1,503명, 1977년 1,298명, 1984년 1,081명, 1989년 1,272명, 1993년 1,341명, 1999년 1,330명. [역대 신부] 초대 권영균(權寧均) 안토니오(1959. 1~1962. 3), 2대 강윤식(姜允植) 베네딕도(1962.3~1963. 6), 3대 이태규(李泰圭) 요셉(1963. 6~1964. 6), 4대 서석기(徐錫基) 베드로(1964. 6~1966. 12), 5대 김병엽 (金炳燁) 베드로(1966. 12~1969. 12), 6대 김봉희(金鳳熙) 세례자 요한(1969. 12~1972. 9), 7대 김종길(金鍾吉) 라파엘(1972. 9~1975. 7), 8대 김반석(金盤石) 베네딕도(1975. 7~1979. 1), 9대 박창신(朴昌信) 베드로(1979. 1~1984. 1), 10대 서용복(徐龍福) 토마스(1984. 1~1987. 1), 11대 김의철(金義哲) 에두아르도(1987.1~1988. 1), 12대 정천봉(鄭千峯) 베네딕도(1988. 1~1990. 1), 13대 김기곤(金箕坤) 프란치스코(1990. 1~1992. 1), 14대 한병헌(韓秉憲) 필립보(1992. 1~1995. 9), 15대 이수현(李秀賢) 라우렌시오(1995. 9~1999. 1) 16대 김시몬(金) 시몬(1999. 1~2000. 1), 17대 한기호(韓奇瑚) 세례자 요한(2000. 1~현재).
[전사와 공소 시기] 현 여산 본당 관할 지역에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으로부터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면서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하였으며, 1868년 무진박해 때는 26명의 신자가 여산 · 숲정이 등지에서 순교하였다. 이후에도 신자들은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였고, 여산 일대에는 성치골 공소(1886) · 시오목 공소(1887) · 삭골 공소(1897) · 마전리 공소(1898) · 두화 공소(1901) · 신근리 공소(1920)가 설립되었다. 이어 본동(1943) · 황화정(1946) · 고분(1957)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이 공소들은 나바위 본당과 되재 본당 관할에서 수청(水淸) 본당, 1950년 이후에는 삼례(參禮) 본당, 1956년부터는 다시 나바위 본당 관할이 되었다가 여산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본당 설립과 발전] 여산 본당 설립은 여산 지역이 성지로 지정됨으로써 앞당겨지게 되었다. 1951년 가을에 교구에서 여산을 성지로 지정하자 여산 지역을 관할하던 화산 본당은 이 지역에 성당을 건립하고자 하였고, 교구의 허가 이후 1953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부지를 매입하였다. 이어 1957년 나바위 본당의 14대 주임 김영태 (金永泰, 도미니코) 신부는 현 성당 부지 2,300평을 매입한 후, 이듬해 6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0월 28일 성당(106평)과 교리실(40평)을 완공하고 봉헌식 및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959년 1월 17일 여산 본당이 설립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권영균 신부가 부임하였는데, 당시 여산 본당 신자수는 900여 명이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공소 신자였으므로 권영균 신부는 전교사의 활동을 활성화하였고, 그 결과 예비 신자와 본당 관할 구역의 신자수가 증가하였다. 3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태규 신부는 1963년 6월 성모상을 건립한 데 이어 교리실로 사용하던 건물을 사무실 · 교리실 · 식당으로 개조하였고, 6대 주임 김봉희 신부는 1970년 1월 성치 공소와 신근리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다.
9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창신 신부는 여산 성지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성지 관련 자료와 구전(口傳)을 정리하는 한편, 도시 성당 순회와 본당 소유의 논을 매각하여 성지 매입 기금을 마련하였다. 이어 서울대교구 화양동(華陽洞) 본당의 성지 후원회로부터 기금을 지원받아 성지 개발을 시작하였으며, 1982년에는 제대와 계단 등의 공사를 마치고, 예수 성심상도 건립하였다. 한편 1981년 4월 20일에는 금마(金馬)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자 412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서용복 신부 역시 1985년 여산 성지에 십자가상을 건립하고, 조경수를 심는 등 성지 개발을 위해 노력하였다. 12대 주임 정천봉 신부는 1988년 7월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이듬해 3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의분원을 마련하였다. 13대 주임 김기곤 신부는 1991년 3월 사무실로 사용하던 건물에 교육관(67평)을 신축하였고, 15대 주임 이수현 신부는 사제관 · 교육관 · 성당 앞마당 등의 보수 및 정리 공사를 실시하였다.
본당 관할의 여산 성지는 전주교구의 제2 성지로 조성되어, 많은 신자들이 순례하고 있다. 그러나 여산 본당은 신자 비율에 있어 젊은 층보다는 노인층의 구성비가 현저하게 높으며, 도시로 떠나는 신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신자수도 감소하고 있다. 17대 주임으로 부임한 한기호 신부는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여 특히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목에 힘쓰고 있다. → 전주교구 ; 나바위 본당)
※ 참고문헌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I , 천주교 전주교구, 199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