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구 소속 본당. 부천시 중구 여월동 산 193 소재. 1983년 10월 15일 삼정동(三井洞)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103위 한국 순교 성인. 관할 구역은 여월동, 원종동, 원종2동, 작동 전 지역과 원종1동, 도당동, 오정동 일부 지역. [교 세] 1983년 800명, 1986년 1,765명, 1989년 2,193명, 1993년 3,816명, 1997년 4,767명, 2000년 5,401명. [역대 신부] 초대 옥슬리(B. Oxley, 玉) 베르나르도(1983. 10~1987.5), 2대 머피(J. Murphy, 全) 야고보(1987. 5~1990. 2), 3대 장태식(張泰植) 사도 요한(1990. 2~1993. 2), 4대 제정원(諸廷源) 베드로(1993. 2~1999. 2), 5대 현명수(玄明洙)바오로(1999. 2~2001. 1), 6대 김재수(金在洙) 토마스(2001. 1~현재).
1972년 여월동을 중심으로 원종동과 성곡동 지역에 거주하던 신자들이 오정(吾丁, 현 삼정동) 본당 주임 슈미트(P. Schmidt, 沈) 신부에게 공소의 필요성을 건의하였다. 이에 오정 본당에서는 그 해 3월 3일 오정면 여월리 193번지의 부지 503평을 매입하고 이듬해 2월 여월리공소를 설립하였는데, 당시의 신자수는 약 20명이었다. 그리고 건축비의 일부를 교구에서 보조받아 같은 해 11월 50평 규모의 공소 강당을 완공하였다.
그 후 신자수가 점차 늘어나자 여월리 공소는 1983년 10월 15일 삼정동 본당으로부터 443명의 교적을 이관받아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에는 옥슬리 신부가 부임하였다. 옥슬리 신부는 본당 활성화를 위해 사목회 · 성모회 · 성소 후원회 · 연령회 · 구역 반 · 성가대 · 성체회 · 성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 · 레지오 마리애 · 한울 청년회 · 중고등부 학생회 · 명도회 · 초등부 주일학교 등을 조직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8일에는 구역을 설정하고 반장을 임명하였다. 고강동(古康洞)에 전세로 마련한 사제관에 거처하면서 성당을 오가며 사목하던 옥슬리 신부는 같은 해 11월 사재를 털어 사제관을 건립하는 한편, 피정과 교리 강좌를 마련하여 신자 재교육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1984년 12월 23일에는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고 이튿날 성탄 전야 미사를 봉헌하였다.
2대 주임으로 부임한 머피 신부는 교세 확장과 사목회의 발전을 위하여 사목 운영회를 새로 구성하였고,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신심 생활을 돈독히 하기 위한 성령 세미나 교육을 실시하였다. 또 1988년 10월에는 120평 규모의 건물을 완공하여 1층은 교육관으로, 2층은 사제관으로 사용하고 옛 사제관은 수녀원으로 용도를 변경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3월 21일 고강동 본당이 신설되자 1,100여 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3대 주임 장태식 신부 때인 1992년 3월 1일에 청년 성가대가 발족되었고, 같은 해 2~5월에는 주말마다 1박 2일로 부천 은혜의 집에서 구역별로 남성 신자 피정을 실시하고 5~10명 단위로 남성 소공동체를 구성함으로써 남성 신자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이어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제정원 신부는 1994년 7월 17일에 기존의 8개 구역을 16개 구역으로 분할하였으며, 1996년 7월 19일에는 연립 주택 한 채를 전세내어 무의탁 노인 보호 시설인 '작은 성모의 집' 을 개원하였다. 6대 주임 김재수 신부는 본당 공동체의 결속을 중시하는 가운데, 예비 신자를 수시로 모집하고 성당 증축 계획을 세우는 등 활발한 사목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인천교구)
※ 참고문헌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白秉根]
여월동 본당
如月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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