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50-1 소재. 1974년 9월 17일 영등포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파티마의 성모. 관할 구역은 여의도동 전 지역. [교 세] 1974년 304명, 1980년 2,201명, 1985년 4,892명, 1990년 6,719명, 1995년 7,233명, 2000년 7,257명. [역대 신부] 초대 최용록(崔鏞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74. 9~1979. 6), 2대 김택암(金澤岩) 베드로(1979. 6~1984. 8), 3대 조순창(趙順昌) 가시미로(1984. 8~1988. 9), 4대 이계광(李啓光) 세례자 요한(1988. 9~1993. 11), 5대 김승훈(金勝勳) 마티아(1993. 11~1996. 10), 6대 김정직(金正直) 디오니시오(1996.10~1998. 10), 7대 김현배(金鉉培)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8. 10~1999. 10), 8대 정광웅(鄭光雄) 요셉(1999. 10~현재).
여의도 지역은 1970년에 서울시가 시범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이듬해 10월부터 입주자들이 이주하여 새로운 주거 지역으로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의도로 이주한 신자 중 이 데레사(일명 분홍신 아줌마) · 김덕순(요안나) · 남봉원(모니카) 자매 등이 적극적으로 신자 찾기에 나서, 19세대 30여 명의 신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한 이들은 1972년 3월 교구에 공소 설립을 요청하였고, 같은 해 12월 19일에는 당시 유치원 2층에 있던 성모병원 진료소(현 성당 자리)에서 당산동 본당 주임 김대성(金大星, 바오로) 신부 집전으로 첫 미사를 드렸다. 이후 신자들은 김대성 신부의 집전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미사를 봉헌함과 동시에 공소 설립을 위한 노력도 계속하여, 마침내 1973년 5월 18일 영등포 본당 소속 공소로 인가를 받게 되었다. 비록 공소인가는 받았지만 미사 드릴 장소가 없어 이곳저곳으로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신자들은, 그 해 8월에야 겨우 아파트 한 채(시범 아파트 19동 12호)를 6개월 간 전세내어 임시 공소로 사용하다가 그 뒤 20평 규모의 시범 아파트 6동 26호를 매입하였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신자들은 적극적으로 선교 활동을 전개하여 1974년 9월 17일 드디어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최용록 신부를 맞이하였다.
10월 1일 부임한 최용록 신부는 평일 미사는 아파트에서, 주일 미사는 성모병원 강당에서 드리면서 점차 본당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사목위원회를 재편성하는 한편, 제대로 된 성전을 마련하기 위해 성당 신축 계획도 세웠다. 그리고 이듬해 3월 23일 250평의 부지(현 여의도 성모병원 영안실 자리)를 마련하여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며, 착공 10개월 만인 1976년 1월 25일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렇지만 곧 여의도에 입주자가 늘어나면서 신자수 역시 배가되자, 최용록 신부는 이듬해 12월 현재의 성당 터 즉 첫 미사를 드렸던 바로 그자리를 매입한 뒤 그곳에 있던 여의도유치원 건물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도 얼마 안 가 늘어나는 신자수를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택암 신부는 1981년 10월 11일 '새 성당 신축위원회' 를 발족시켜 1983년 12월 새 성당을 완공하고 이듬해 4월 28일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봉헌 미사를 드렸다.
이 무렵 본당은 신자가 완전히 정착되고 경제적으로나 사목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조순창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할 당시 3,700명이었던 신자수가 2년 뒤 5,200명으로 늘어남에 따라 1986년 8월 16일 박항오(朴M트, 마르티노) 신부가 첫 보좌로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본당에서는 성모 동산을 조성하여 아늑한 성당 분위기를 만드는 한편, 1987년 9월에는 노인 신자들을 위해 노인대학을 개설하였고, 이듬해 2월에는 매월 첫 주일을 성가정 주일로 정하고 화목한 가정 · 좋은 가정 만들기에 노력하였다.
4대 주임 이계광 신부는 1988년 10월 구역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본당을 7개 지구에서 12개 지구로 재편성하였고, 1990년 1월에는 본당 창립 15주년 기념 사업의하나로 '천주교 여의도 성당 장학회' 를 발족시켰으며 그 해 11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는 '화요 성서 공부' 를 개설하여 신자들의 성서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이어 5대 주임 김승훈 신부는 그 동안 중단되었던 구역 미사를 다시 봉헌함으로써 소공동체를 통한 신앙 생활의 활성화를 도모하였고, 농촌 살리기 운동은 물론 타본당 설립을 위한 기금 마련에도 적극 동참하였다. 아울러 대림 시기 · 사순 시기 특강을 통해 신자들의 재교육을 강화하였고, 1995년에는 본당 설립 20주년을 맞아 《여의도 성당 20년사》를 발간하였다.
김승훈 신부에 이어 6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정직 신부는 남성들의 구역 모임을 실시하는 한편, 전례단을 조직하여 주일 · 평일 · 혼인 · 장례 미사를 전담하게 하였고, 7대 주임 김현배 신부는 구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하여 13개 구역을 31개 구역으로 분할하였다. 그리고 8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광웅 신부는 신자 교육을 중시하여 교육 훈련 예산을 대폭 늘렸으며, 관할 구역을 재정비하여 전 지역을 5개로 나누고 이를 다시 31개 구역으로 세분하여 본당 조직을 체계화시켰다. 아울러 본당 공동체의 화합을 위하여 본당의 날 체육 대회' 를 개최함은 물론, '나눔 사랑 주머니' 행사를 통해 사랑의 실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여의도 성당 20년사》, 천주교 여의도 교회, 1995.[方相根]
여의도동 본당
汝矣島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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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