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히〕יְהוֹשֻׁעַַ · 〔그〕'moois · 〔라〕Liber losue · 〔영〕Book of Jos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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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가운데 하나. 히브리어 성서의 분류에 따르면, 중심 인물에 따라 제목이 붙여진 여호수아서는 '전기 예언서' 의 첫 번째 책이다. 하지만 칠십인역 성서에서는 여호수아서가 그 다음에 이어지는 판관기, 사무엘서, 열왕기와 함께 역사서로 분류된다.
[내 용]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들은 광야를 거쳐 마침내 요르단 강 동쪽, 예리고 건너편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모세가 생을 마감하자(신명 34장) 모세의 시종이었다가 그의 후계자로 임명된 여호수아의 지휘로 이스라엘인들은 요르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먼저 종교 의식을 거행한 다음, 예리고 함락을 시작으로 중부에 이어 남부와 북부까지 차례로 점령하였다. 여호수아는 정복을 완료한 뒤 열두 지파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특수 영토로서, 실수로 살인한 이들이 피신하는 도피 성읍과 레위인들이 사는 성읍들도 지정하였다. 영토 분할이 끝난 뒤 가나안 정복에 동참한 요르단 동쪽 지파들은 돌아갔다. 마지막에는 여호수아의 유언과 세겜에서 소집된 집회, 여호수아의 죽음과 장례가 서술되어 있다.
[구 성] 이러한 내용의 여호수아서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I . 가나안 땅의 정복 : 1, 1-12, 24
1, 1-18 : 여호수아의 소명과 요르단 강 도하 명령
2, 1-24 : 예리고로 파견된 정탐대
3, 1-5, 1 : 요르단 강 도하와 기념비 건립
5, 2-12 : 가나안에서의 첫 할례와 과월절
5, 13-15 : 주님 군대의 장수 발현
6, 1-27 : 예리고 함락
7, 1-8, 29 : 아간의 죄와 아이 함락
8, 30-35 : 에발 산 위에서의 제사와 율법 봉독
9, 1-27 : 기브온인들과의 계약
10, 1-43 : 남부 연합군과의 전투 및 남부 점령
11, 1-15 : 북부 연합군과의 전투 및 북부 점령
11, 16-23 : 점령의 요약
12, 1-24 : 이스라엘이 정복한 임금 명단
II . 가나안 땅의 분배 : 13, 1-21, 45
13, 1-7 : 점령하지 못한 지역
13, 8-33 : 요르단 동쪽 지역의 분배
14, 1-19, 48 : 요르단 서쪽 지역의 분배
19, 49-51 : 분배의 완료
20, 1-9 : 도피 성읍
21, 1-42 : 레위인 성읍
21, 43-45 : 하느님 약속의 실현
Ⅲ . 요르단 서쪽 지파들의 귀향과 제단 건립 : 22, 1-34
IV . 여호수아의 말년 : 23, 1-24, 33
23, 1-16 : 여호수아의 유언
24, 1-28 : 세겜 집회와 계약
24, 29-33 : 여호수아의 죽음과 장례 및 요셉과 엘르아잘의 장례
[저자와 저술 과정] 여호수아서는 통일성이 명백히 드러나고 구조도 일관되게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내용이 서로 어긋나는 이른바 '이중 서술' 들이 적지 않다. 돌 열두 개로 된 기념비가 요르단 강 한복판(4,9)에 세워졌다고 한 반면에, 길갈에도 세워진다(4, 20). 예리고를 함락할 때 나팔 소리에 이어 백성이 함성을 지르게 되어 있는데(6, 5), 나팔이 울린 뒤에도 여호수아가 따로 명령하기까지 입을 다무는 것으로 되어 있다(6,10). 아이를 공격할 때에는, 여호수아가 3만 명을 매복지로 보내는데(8, 3) 다음날 같은 장소로 다시 5,000명을 보낸다(8, 12).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함께 헤브론과 드빌을 점령한다(10, 36-39). 그러나 갈렙이 헤브론을, 오드니엘이 드빌을 정복했다는 내용이 잇달아 언급되어 있다(15, 13-14. 17 : 판관 1, 11-13).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에 단 지파가 레셈을 점령하고 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나오는데(19, 47), 판관기에는 후대의 단 지파가 그렇게 하였다고 나올 뿐만 아니라 레셈도 라이스로 되어 있다(18, 27-31).
유대교의 탈무드를 비롯하여 오랫동안 여호수아가 직접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호수아서는 그의 죽음과 장례까지 이야기한다(24, 29-30). 또자주 되풀이되는 "오늘날까지"라는 말은(4, 9 : 5, 9 : 6,25 : 7. 26 : 8, 29 : 9, 27 : 10, 27) 여호수아서에 서술된 사건들과 그것들이 저술된 시점 사이에 오랜 기간이 흘렀음을 뜻한다. 더구나 위에 나열한 것 같은 내용의 불일치와 이중 서술은 이 책을 구성하는 사료의 다양성과 이 책의 긴 형성 과정을 시사한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문학 비평' 방법론에 따른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이 책 역시 모세 오경처럼 '야훼 전승 문헌' , '엘로힘 전승 문헌' , '사제계 문헌' , '신명기 문헌' 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여호수아서의 내용이 오경과 바로 연계되어야 의미가 제대로 이해된다는 사실도 부각된다. 곧 멀리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여 계속 재확인되는 땅의 약속(창세 12, 7 : 13, 14-17 : 15, 7. 18 : 17, 8 등)과 가까이는 이집트 탈출이 여호수아서의 중심 내용인 약속의 땅 정복과 배분, 곧 이스라엘인들의 가나안 땅 입주로 실현되고 완료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다섯 책을 '오경'이라고 부르는 대신, 여호수아서까지 포함하여 '육경'(六經)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창세기에서 시작되는 주제가 여호수아서에서 일차 마무리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성서 문헌 가설' 에 따른 여호수아서의 분석은 오경의 경우처럼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그동안 여호수아서와 관련된 문헌 가설이 다양하게 제시되었지만, 그것들이 내놓는 결과가 확신을 주지 못할 뿐더러 서로 일치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그래서 '양식 비평' 과 '전승사 비평' 과 함께 '편집사 비평' 에 따른 해답이 제시되었다. 특히 1장과 23장의 긴 설교 등에서 잘 드러나듯이, 여호수아서는 어휘와 어조와 사상이 신명기와 매우 가깝다. 이 독특한 흐름은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에서 시작하여 판관기와 사무엘서를 거쳐 열왕기 끝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들을 '신명기계 역사서' 라고 한다. 그리고 모세를 기점으로 기원전 587년에 시작하는 유배까지 이어지는 선택된 백성의 역사를 독특한 관점으로 재조명하는 이 역사가를 '신명기계 저자' 또는 '편찬자' 라고 부른다. 이 역사가가 한 사람인지 또는 둘이나 세 세대까지 계속된 일종의 '학파'인지, 그리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활동하였는지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적어도 여호수아서와 관련해서는, 유배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뒤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으면서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쇠망에 이은 유다 왕국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라는 비극적 사건을 통하여 선택된 민족의 역사를 반성하는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신명기계 저자 또는 편찬자가 기존의 다양한 사료를 자기의 역사관과 신학에 따라 재해석하면서 가나안 정복과 배분의 역사를 동 시대인들에게 펼쳐 보인다는 설명이, 여러 미해결의 문제와 반론에도 불구하고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성] 여호수아서에 따르면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기적적으로 요르단 강을 건너, 다시 신비한 방식으로 예리고 성읍을 함락한다. 이렇게 가나안 땅의 중부 지방부터 시작하여 단 한 번의 출정으로 남부와 북부 지방까지 정복한다. 실패는 아이 성읍을 공격할 때에 유일하게 아간이라는 자가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써 일어난다. 여호수아서는 이 일화를 한 장에 걸쳐 길게 서술하고 있다(7장).
그런데 요르단 강 도하 기적(3장)은 갈대 바다 도하(출애 14장)와 비슷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 사건이,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계약의 궤를 앞에 모시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전례 행렬처럼 묘사된 면도 있다. 계약의 궤 · 사제 ·뿔 나팔 · 행렬 등이 주요 요소로 작용하는 예리고 점령에서는, 군사적 면이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으면서도 전례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남을 볼 수 있다. 가나안 정복도 비(非)신명기계 전통(판관 1, 1-2, 5)에 따르면 한 번이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역사적으로 더 큰 개연성을 지닌다. 여호수아서에도 이러한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13, 1-7 등). 또 이스라엘인들은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전멸시킨 것이 아니라, 이들이 잘 살지 않는 산악 지방을 조금씩 차지하면서 평화적으로 공존하였다(15, 63 : 16, 10 ; 17, 12. 18).
여호수아서의 서술은 이처럼 실제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의 역사성을 낱낱이 부정할 수도, 또 반대로 모조리 긍정할 수도 없다. 역사성은 단순히 그때에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 하고 시간상 '수평적' 으로만 판별하는 것이 아니다. 자료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형성된 전승이라는 사실과, 본문이 서술하는 사건 당시는 아니더라도 후대의 상황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면서 시간상 '수직적' 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실제로 벌어진 역사가 성서 저자의 일차 관심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곧 600여 년 전에 일어난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신명기계 저자의 의도가 아니다. 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의 주도로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열두 지파별로 나누어 차지하였다는 사건은 그에게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초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다. 그는 역사 이야기를 통하여, 불행에 빠져 있는 선택된 민족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신 학] 여호수아서에서 줄곧 되풀이되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7, 13. 20 ; 8, 30 : 9, 18 : 10, 40 등)이라는 표현이 강조하는 것처럼, '하늘과 땅의 주인' (2, 11)이신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이 한 분이시기에 그분의 백성도 하나이다. 통일 국가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유다 왕국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와 유배로 여기저기 흩어져 정체성과 일치가 위협을 받지만, 그들은 계속 '이스라엘' 곧 선택된 한 민족이다. 그래서 옛날에도 요르단 동녘에 살든 서녘에 살든 모든 지파가 합심하여, 모세의 뒤를 이은 민족의 지도자 여호수아 한 사람의 선도 아래 약속의 땅을 함께 점령한 것이다. 혈통의 단일성은 민족과 종교의 순수성을 내포한다. 가나안 정복 때 이스라엘인들이 원주민들과 그들의 소유를 전멸시켰다는 잔혹한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의도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동 시대인들에게 현재를 위한 가르침을 주려는 데에 있다. 곧 옛날처럼 다른 신들 또는 우상들을 모시는 이민족들 사이에 섞여 나라 없는 소수 민족으로 살아야 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순수성을 보존해야 하는 과제를 상기시키고 또 경고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순수한 민족으로서 섬겨야 하는 하느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특히 21, 43-45). 오경에 나오는 그분의 가장 큰 약속이 '자손의 약속' 과 함께 '땅의 약속' 이다. 하느님은 이 약속에 따라 가나안 땅을 당신 백성에게 나누어 주시고 평온히 살도록 해주신다(21, 44). 여호수아서는 이 약속의 실현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의 가시적 징표이며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역사가 펼쳐지는 마당인 이 가나안 땅의 배분을-오늘날의 독자는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느낄 수밖에 없지만-더할나위 없이 기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세세히 서술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러한 성실성에 상응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충성이다. 이 충성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만을 사랑하며 그분이 일러주신 계명에 따라 사는 것(22, 5), 곧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그분의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1, 8 : 23, 6 등). 하느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한 순종 또는 불순종에, 그분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이 다시 살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려 있다. (→ 구약성서)
※ 참고문헌  J.A. Soggin, Joshua. A Commentary, London, SCM Press, 1972/ H.W. Hertzberg, Die Biicher Josua, Richter, Ruth, Das Alte Testament Deutsch 9,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3/ H.-J. Zobel, Josua, Josuabuch, Theologische Realenzyklopadie XVI, Berlin . New York, Walter de Gruyter, 1988, pp. 269~278/ R.G. Boling, 《ABD》 3, pp. 1002~1015/R.D. Nelson, Joshua. A Commentary, Louisville-Kentucky,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7. [任承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