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신학적 성찰. 신앙에 입각한 역사관.
[기원과 발전] 성서의 묵시 문학 작품에 우주적 종말에 대한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학사에서 세계사의 이념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나타난 것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에 의해서였다. 이후 중세의 요아킴(Joachim de Flore, Gioacchino da Fiore, 1130/1135~1202)을 거쳐 현대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판네베르크(W. Panneberg, 1928~ )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신학의 독자적인 영역은 아니지만, 조직 신학의 한 갈래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였다.
고대 그리스도교에서 최초로 역사 신학을 전개한 아우구스티노는 세속 역사의 성장 과정을 여섯 기(期)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인간의 생애 주기에 해당하는 명칭을 각각 부여하였다. 이른바 영아기(infania) · 유아기(pueritia) · 청년기(adolescentia) · 장년기(junventus) · 중년기(gravitas) · 노년기(senectus) 등이다. 영아기는 아담부터 아벨과 카인까지, 유아기는 아벨과 카인 이후부터 노아의 홍수까지, 청년기는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장년기는 그로부터 모세까지, 중년기는 예언자들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까지, 그리고 그 후 교회의 역사를 노년기로 보았다. 그는 이때의 각 기를 1,000년으로 보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앞의 다섯 기 5천 년이 지나고, 마지막 여섯 번째 기에 접어든 것으로 생각하였다. 즉 종말에 가까운 시기로 이해한 것이었다. 그는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첫째는, 신정론 (神政論, theodicy)으로서의 역사이다. 그는 역사가 하느님의 의로움 즉 옳음이 나타나는 증거의 표시라고 보았다. 둘째는, 인류 교육으로서의 역사이다. 그는 역사는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사이기에 이를 통하여 하느님은 인간이 구원되게끔 가르친다고 보았다. 셋째는, 하느님의 작품으로서의 역사이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하면 그가 본 역사는 하느님의 섭리의 무대이고 차원 높은 인류의 학원이며 하느님의 시극(詩劇)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가 역사의 과정을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뜻대로 건설해 간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노에 이어 역사 신학을 전개한 요아킴은 역사를 삼위 일체론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역사를 세 가지 지위 혹은 시대로 구분하였다. 우선 그가 첫 번째 지위에 둔 것은 성부의 시대로, 42대가 지속된 구약성서의 시대를 가리킨다. 두 번째 지위는 성자의 시대로, 역시 42대가 지속된 신약성서의 시대이다. 요아킴은 이 계산법에 따라 자신의 시대가 성자의 시대의 마지막 세대이거나 기껏해야 두 세대(60년) 이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적(敵)그리스도인 머리가 일곱 달린 용의 마지막 일곱 번째 머리에 해당되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될 시기라고 보았다. 그는 마지막 세 번째 지위로 성령의 시대를 상정하였는데, 그는 이 시대를 관상적인 교회의 유토피아 시대로 보았다. 그는 성서 특히 요한 묵시록을 역사화하여 이해하였고,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상징을 현실의 사건과 유비시키는 독특한 역사 이해를 보여 주었다.
프로테스탄트에서 역사 신학의 대표적인 주자로 이름난 신학자는 판네베르크, 니부어(R. Niebuhr, 1894~1962) , 몰트만(J. Moltmann, 1926~ ) 등이다. 그중에서 특히 판네베르크를 필두로 해서, 20세기에 대두되어 가톨릭과는 다르게 역사 신학을 전개한 프로테스탄트계 신학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판네베르크는 구약학자인 폰 라트(G. von Rad, 1901~1971)의 제자로서, 폰 라트의 구원사 개념을 자신의 독창적 개념인 '역사로서의 계시' 로 확대시켰다. 그리고 1964년에 출판한 《그리스도론의 근본 문제》(Grundfragen der Christologie)에서는 불트만 학파의 역사 비판적 탐구가 예수의 역사적 모습을 케리그마화시키는 데 반해서, 예수의 출현과 숙명에서 출발해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밝히려고 하였다. 그는 신학이 현대 사회의 보편 역사의 지평 안에서 통용되고 있는 합리성이라는 기준에 순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바르트(K. Barth, 1886~1968)가 강조한 것처럼 신학이 계시라는 폐쇄되고 권위주의적인 개념에만 매달리게 될 때, 신학은 보편성을 결여하는 초라한 부분적 학문이 되고 말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불트만(R. Bultmann, 1884~1976)의 신학도 일종의 자의성과 주관주의에 빠졌음을 비평하면서, 신학을 역사적 지성의 합리성 위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학문으로 성립시키고자 하였으며, 호프만(J.C.K. von Hofiman, 1810~1877)으로 대표되는 에어랑겐 학파의 구원사 신학이나 쿨만(O. Cullmann, 1902~ )이 새롭게 제기한 구원사 신학의 신앙과 이성의 분리, 계시 개념의 성령론적 제한성에 대해서 보편 역사를 그리스도교 계시 개념의 지평으로 주제화함으로써 독창적인 길을 개척하였다. 한편으로는 구약의 계시적 역사 개념을 가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헤겔 철학의 이성적 역사 개념을 가지고 이 둘을 보편 역사적인 기획 속에서 조화시키려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미래가 과거와 현재를 거슬러, 결정하는 미래의 존재론적 우위성을 강조하였다.
[방법론] 출발점으로서의 신앙 : 역사 철학이 역사에 대한 이성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면, 역사 신학은 신앙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른바 '탁신' (託信, 신앙에 의 탁함)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여기서 순 역사적 연구(역사 철학 또는 역사학)의 한계는 끝나고, 신앙의 결정을 요구하고 전제하는 신학이 시작된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이 인류를 다시 당신과 결합시키고 인류와 가까이 있고자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살아 계시면서,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와 민족을 초월하여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중재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이른바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동일성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 지상 생활에서 시작한 사업은 종말적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된다고 믿는 것이다. 역사 신학은 바로 이러한 신앙을 근본으로 해서, 또 출발점으로 해서 구체적인 역사를 신학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역사 이해 : 첫 번째로, 그리스도교는 역사 전체에 대해 하느님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확신한다. 모든 역사적 운명은 유일한 하느님의 주도권 아래 있고, 따라서 하느님의 주도권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일반적 틀을 제시한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하느님의 주도권은 합리적으로 논증되거나 또는 경험적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앙에 의탁할 때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 신학이 역사 철학의 한 분야로서 평가 절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신학도 보편사의 지평 안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까닭이다.
구약성서는 이미 보편사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구약성서 전반에 드러나는 하느님이 지닌 역사의 주도권이란 선택된 하느님의 백성인 특수한 민족의 임의에 맡겨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에 대항한 적들의 활동에 의해서나 혹은 이스라엘을 희생해서라도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약의 통찰은 야훼와 어떤 특정 민족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신자들-잠재적으로는 모든 인간-사이의 두 번째 거룩한 계약이라고 하는 통찰로 발전하여, 세계 역사를 구원사의 테두리안에 포괄시켰던 것이다.
두 번째로, 창조 설화와 신명기 역사관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와 그러한 인간이 엮어 나가는 역사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창조 설화를 통해서는 원죄를 통하여 얻게 된 인간의 한계를 지적한다. 신명기 역사관은 인간이 자유의 부패를 극복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인간 이해를 기초로 역사 신학은 인간이 주도권을 쥔 역사가 현실 안에서 비극으로 마감되는 사례를 성찰하면서 구원사의 지평을 열어보여 준다.
[평 가] 역사 신학에서 보여 주는 그리스도교 역사관은 역사 철학이 지향하는 진보적인 역사관과는 다르다. 먼저 역사 신학은 인간의 본성과 상황에 대해 더 현실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이성주의자들의 진보적 역사관에 비하여 인간의 진보가 항시 비극적인 퇴보로 이어지는 현실을 잘 드러내 준다. 두 번째의 차이는, 사건 과정의 의미에 대한 역사 신학의 견해는 적어도 어느 정도로는 검증되거나 확인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앞서 지적한 차이점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이런 차이점이 긍정적인 역사관으로 평가될 수는 있다. 하지만 역사 신학은 판네베르크가 보여 준 것처럼 당대의 지성과 호흡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관조의 경지를 보여 주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참고문헌 Gustavo Gutierrez, Liberation Theology, New York, Orbis Books, 1973/J. Pelikan, Historical Theology, New York, 1971/ William H. Dray, Philosophy ofHistory, New Jersey, Prentice Hall Inc., 1964/ Williston Walker, A History ofthe Christian Church,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70/ 김영한,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 대한그리스도교 출판사, 1982/ 정의채 . 김규영,《중세 철학사》, 지학사, 1977. [朴文洙]
[역사 신학과 교회사] 신앙이 역사와 만나게 될 때 이루어지는 역사 신학에 대해서 가톨릭 교회사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교회사가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얻은 역사 진리와 자신이 신앙인으로서 인정하는 종교 진리의 종합을 시도할 수는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종합이 실현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과거의 교회사가들은 긍정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다. 교회사란, 순전히 인간의 작업도 아니고, 신의 역사(役事)만도 아니다. 따라서 교회사가는 양자를 종합 · 단일화하여 신앙적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다. 이것이 인류 발전 과정을 신앙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제시하는 역사 신학이다. 인류의 종교 역사에 대한 신학적 고찰은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는 교회사가들이 역사가로서 연구할 때 그들에게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보완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역사를 신앙의 입장에서 고찰할 경우, 아우구스티노가 지적하듯이 신앙인은 인류의 역사 특히 교회의 역사를 요한 묵시록에 나타나는 것처럼 하느님과 사탄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본다. 이러한 신앙적 고찰은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오베르(Roger Aubert)와 같은 교회사가들은 학문적 역사 진리와 신앙의 종교 진리의 종합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신앙에 입각한 역사관은 역사가에게 교회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어느 때에 선과 악의 세력이 구체적으로 발견되는지 그 시기를 정확하게 지적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사가는 신앙의 입장에서 역사 속에 나타난 사실 중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를 명백하게 구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종교 개혁을 고찰할 때 가톨릭 교회사가는 자신들의 신앙적 입장에서 종교 개혁가들을 하느님 백성인 유일한 정통 교회에 대해 반발을 일으킨 악의 도구로 판단하여 종교 개혁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가톨릭 교회사가는 반드시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아야 한다. "종교 개혁가들은 하느님의 섭리적 도구로 하느님이 자신의 교회를 각성시키고 멸망에서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같이 격렬한 구제책을 사용하신 것은 아닌가?" 신앙은 교회사가가 일련의 현상에 대한 순수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것 외에 무엇이 하느님의 입장에서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며, 누가 역사적 인물인지 인지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없다. 예를 들어 종교 개혁이라는 사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에 대한 신의(神意)를 밝혀 내기는 어렵다. 따라서 신앙에 입각한 역사관은 즉 역사 신학은 신앙인에게 자신의 정체와 존재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교회사가가 그의 직업인 역사 연구를 올바르게 수행하여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 교회사학 ; 역사 ; 역사주의 ; 역사 철학)
※ 참고문헌 K. Rahner, History of the World and Salvation History, Theological Investigations, vol. 5, London, 1966/ E.H. Harbioon, Christi-anity and History, New Jersey, Princeton Univ. Press, 1966/ R. Aubert, Historiens croyants et historiens incroyants devant I'histoire religieuse, L'histoire et'historien. Recherches et debats du Centre catholique des intel-letuelsfrancais, no. 47, Paris, Fayard, 1964, pp. 28~43/ P. Fisichella, Theology ofHistory, Dictionary ofFumdamental Theology, R. Latourelle . R. Fischella eds., New York, Crossroad, 1995, pp. 439-4421 김성태, <교회사 연구의 문제점>,《세계 교회사》 I,바오로 딸, 1995, pp. 38~45.[金聖泰]
역사 신학
歷史神學
〔라〕theologia historiae · 〔영〕theology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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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학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 지상 생활에서 시작한 사업은 종말적 완성인 재림 때까지 계속된다고 믿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