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철학

歷史哲學

〔라〕philosophia historica · 〔영〕philosophy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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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제를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
[정 의] 역사학과 역사 철학이 '역사' 를 다루는 방법론적 차이를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역사학은 사료를 토대로 경험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반면, 역사 철학은 직접적으로 사료를 검토하고 확인하는 대신 역사적인 사건을 반성적으로 고찰하는 방법을 택한다. 예를 들면, 영국의 철학자 콜링우드(R.G. Collingwood, 1889~1943)에 의하면 역사 철학은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역사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 철학은 고서(古書) 속에 있는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혹은 역사 철학자 자신이 결정한 역사적 사유의 한 유형을 뜻할 뿐이다. 따라서 역사 철학의 고유한 목적은 역사 자체와 역사학을 '사유하는 관찰' (헤겔)에 종속시켜 존재와 인식의 궁극적 근거에서 이해하려는 것이다. 역사 철학은 역사학의 기초, 전제, 방법, 역사의 본질, 원인, 의미를 탐구한다. 우리는 역사를 인간과의 본질적 연관에서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존재와의 최종 관계에서 질서지울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철학적 인간학과 형이상학이 역사 철학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역사는 역사 신학에서도 다루어지나, 역사 신학은 역사 철학의 기초 위에 세워진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적인 계시가 세계사를 구원의 역사로서 인식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및 본질 이해에서 파악해야 할 과제가 역사 철학에 부과되어 있다면, 역사 신학은 구원사의 입장에서 이것에 새롭고 심오한 인류사의 관점을 보충해야 한다. 역사 철학의 방법론 논의와 관련하여 뢰비트(K. Lowith)는, 경험적으로 해답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신학과 철학의 특권이라고 하였다. 그는 역사 해석이 역사적 행위와 고통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서양에는 고통에 관한 질문에 두 가지의 답변, 즉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와 십자가에 못박힌 분의 신앙이 제시되어 있다고 말한다.
[문제와 범위] 역사 철학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를 동등한 수준에서 아니면 어떤 관계에서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진화와 역사적 발전과의 관계 문제, 역사에서의 필연성과 자유의 문제, 이해된 역사(Geschiche)와 일어난 역사(Historie)의 관계 문제, 역사 일반의 철학적 관찰 대상으로서의 가능성, 역사의 의미에 관한 질문의 의미 등이다. 어떤 문제가 역사 관찰에서 중심적이고 주변적인가 혹은 어떤 현상들이 대표적인 문제로서 취급되는가는 개별 사상가나 학파의 학문적인 태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역사가 단순히 철학적 질문의 대상인 것만은 아니다. 철학적 질문 자체가 그 주제와 형식을 고려할 때 역사를 통하여 조건 지워진다. 그래서 역사를 철학적으로 이해하려면 철학을 역사적으로도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 철학은 철학의 역사를 배제하고 성립할 수 없다. 현대 독일의 철학자 쉐플러(R. Schaeffler)는 증거(사료)의 해석을 통해 재구성될 수 있는 한, "역사는 인간적 생활 관계의 변천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사건들의 발생과 변천은 역사에 속하고 역사가 포함하는 변화는 다시 인간의 삶의 조건들과 관계를 갖는다. 여기서 이 조건들 중 어느 것을 역사 이해의 핵심으로 삼을 수도 있으며 문화를 중심 개념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국가를 비롯한 사회 제도 · 자유 . 정의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 원] '역사 철학' 이라는 명칭은 18세기에 볼테르 (Voltaire, 1694~1778)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주저인 《풍속론》(Essai sur les moeurs, 1756)에서 주된 원리는 역사 신학에서처럼 신의 의지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이성이다. 볼테르의 이와 같은 이성적인 방법, 즉 오직 이성에 의하여 역사를 파악하려는 방법을 받아들인 근세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노(Augusinus Hipponensis, 354~430)로부터 보쉬에(J.B. Bossuet, 1627~1704)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이론은 계시와 신앙에 의거하는 교의적인 것이므로 철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들은 역사적인 사유가 18세기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누가 역사 철학의 창시자인가 하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의 철학자 비코(G.Vico, 1668~1744)나 아우구스티노, 심지어는 구약성서가 역사 철학 사상의 단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우구스티노는 역사를 인류의 최종적인 구원을 위한 신적 계획의 실현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전체 역사가 하나의 일치되는 이념을 통해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의 역사 해석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간에 역사가 해석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양에 뿌리내린 것은 그의 덕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유의 전개 및 발전 과정] 역사 전체의 본질과 의미에 관한 질문 : 고대인들은 신화의 세계 속에서 살았다. 신화는 인간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역사와 유사하다. 신화는 고대인의 관념 형태 혹은 한 민족의 원시 철학이라고도 불린다. 신화는 당시의 현실을 재현한 것이고 인간의 종교적 · 도덕적 욕구에서 우러나왔으며, 원시 신앙의 표현으로서 인간의 삶을 지배하였으므로, 그것을 단순히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하찮은 이야기로 깎아 내려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단군신화에서 한국인의 얼의 원류를 찾으려는 학자들과 종교의 관심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한민족의 삶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신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서양 고대에는 어떤 완결된 역사 철학은 없었다. 당시 역사는 자연에 빗대어 상승과 하강을 하는 순환 발생적인 구조로서 이해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 이해는 헤시오도스(Hesiodos, 기원전 ?~700?), 투키디데스(Thucy-dides, 기원전 470/460~400/395) 부분적으로는 폴리비오스(Polybios, 기원전 202~120)에게서 발견된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아들[聖子]의 육화(incarnatio) 와 재림에 대한 믿음으로써 고대의 역사 이해를 철저하게 바꿔 놓았다. 역사를 목적론적인 구원사로 파악하는 중세의 역사 이해는 아우구스티노의 역사 이해에 근거를 둔다. 서양의 역사 철학은 헤겔(G.W.F. Hegel, 1770~1831) 에 이르기까지 아우구스티노의 구원사적인 역사 사상이 세속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계몽주의 역사 철학의 이상이었던 '진보' 는 '인간다움' (humanitas)이란 이념의 구현에 실질적인 목표를 둔다. 또한 헤르더(J.G. Herder, 1774~1803)는 독일 역사 철학의 창시자로서 비코와 몽테스키 외(C. de S. Montesquieu, 1689~1755)의 역사 철학적인 단초를 받아들여 낭만주의에 전달하였다. 여기에서 역사는 자연적 · 인간적인 발전의 역사, 인본주의 이념의 실현으로 이해되었다. 독일 고전주의 학자인 레싱(G.E. Lessing, 1729~1781), 훔볼트(W. von Humboldt, 1767~1835), 실러(F.von Schiller, 1759~1805)는 이와 같은 견해를 따른다. 독일관념론에 이르러 칸트(I. Kant, 1724~1804)는 역사적 행위가 조정되는 이념을 윤리적 국가에서 발견하였으며, 헤겔은 역사를 신적인 절대 정신의 자기 전개로 이해하였다. 낭만주의 시대의 랑케(L. von Ranke, 1795~1886)는 보편자를 중시한 헤겔에 반대하여 개별자를 강조하였다.
콩트(A. Comte, 1798~1857)의 실증주의 역사관은 역사의 목표가 인간의 사물에 대한 지배에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K. Marx, 1818~1883)와 엥겔스(F. Engels, 1820~1895)는 '사적(史的) 유물론' (historischer Materialismus)을 통해 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쳐 왔다. 본래 그들은 '유물론적인 역사 이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gassung)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으며, 그들은 역사가 자연 법칙에 비교할 수 있는 확실한 규칙에 따라 발전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중대한 과제는 역사 발전의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 해방된 사회로 이끄는 '운동의 법칙' 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 변증법에 의한 유물 사관이 그들 스스로가 말하듯이 '과학적' 이냐 하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진보 신앙과 회의 혹은 '진보' 개념의 이해 : 어떤 관점에서 역사의 진보를 이해하느냐에 따라 상이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인간 사회의 도덕적인 상태 · 도덕적인 삶 · 제도 등이 저급할 경우, 이런 상태가 진보로 간주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에 대한 어떤 판단 기준이 있어야 판정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서양의 철학자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기원전 565~488),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83~322/321)의 사상에서는 확실하지는 않을지라도 진보 사상의 싹을 발견할 수 있다. 중세의 아우구스티노와 요아킴(Joachim de Floris, 1132~1202)은 섭리에 의한 진보 사관을 제시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1274), 베이컨(R. Bacon, 1214~1294)의 사상에서도 이성의 진보와 관련된 언급을 발견할 수 있다. 진보 이념은 17세기와 18세기에 와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는 합리주의가 영국에서 유래한 경험주의와 혼합되어 등장한 것이다. 계몽주의에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인간의 행동과 인류의 완성을 위한 역사의 진보가 강조되었다.
20세기의 역사 철학은 문화 형태론이 주축이 된다. 예를 들어, 슈펭글러(O. Spengler, 1880~1936)는 쇼펜하우어 (A. Schopenhauer, 1788~1860)의 철학과 니체(F. Nietzsche, 1844~1900)의 사상을 토대로 역사를 몰락의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실존 철학은 '역사성' (Geschichtlichkeit) 개념을 제시하여 영원한 진리와 역사적(상대적) 견해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려 한다. 뢰비트는 우주에서의 영원 회귀를 믿어 진보 신앙을 부정했고, 벤자민(W. Benjamin)은 피억압자의 시각에서 역사를 거대한 파괴물 덩어리로 봄과 동시에 메시아니즘을 바탕으로 구원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자인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와 아도르노(T.W.Adorno)는 과거의 역사를 인류 수난의 역사로 간주하면서 구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또 포퍼(K.R. Popper)는 역사의 전체적인 진보는 가능하지 않고 오직 개인만이 각자의 행위를 통해 진보와 발전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알튀세르(L. Althusser)와 푸코(M. Foucault)에 의하면, 역사에 나타나는 것은 익명의 구조뿐이다. 드레이(W.H. Dray)와 단토(A.C. Danto)가 대표하는 언어 분석적 역사 철학은 현대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면서도 진보 신앙에 회의를 가질 수 있다. 특히 현대 세계의 위기 현상으로 지적되고 있는 경제적 위기(에너지 문제 등), 정치적 위기(국제적인 갈등 관계 등), 군사적 위기(군비 경쟁 등), 환경 위기(환경 보호 문제 등) 등을 생각할 때 그렇다. 역사의 진보 혹은 퇴보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기술의 발전과 복지 등의 관점을 포함하는 '인간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의 실현' 이어야 한다.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의 제도적 보장과 실제적 실현은 역사의 영원한 과제이며 인류에 부과된 도덕적 당위이다. (→ 역사 : 역사주의 ; 역사 신학)

※ 참고문헌  W. Brugger, Philosophisches Wörterbuch, Freiburg i. Br., 1961, pp. 134~136/ O. Brunner . W. Conze . R. Kossellek eds., Geschicht-Liche Grundbegriffe, Bd. 2, Stuttgart, 1975/ P. Ehlen, Marxismus als Welt-anschauung Miinchen . Wien, 1982/ R. Löw . P. Koslowski . Ph. Krenzer eds., Fortschritt ohne Maβ?, Miinchen, 1981/ K. Löwith, Weltgeschichte und Heilsgeschehen, Stuttgart, 1967/ J. Ritter ed., Historisches Worterbuch, Bd. 3, Basel Stuttgart, 1974, pp. 415~439/ R. Schaeffler, Einfihrung in die Geschichtsphilosophie, Darmstact, 1980/ H.J. Sandkuhler ed., Europciische Enzyklopadie zu Philosophie und Wiseenschaften, Bd. 2, Hamburg, 1990, pp. 298~307. 〔朴鍾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