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촌동 본당

驛村洞本堂

글자 크기
9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은평구 역촌2동 56-12 소재. 1974년 5월 9일 불광동(佛光洞) 본당, 응암동(鷹岩洞) 본당, 홍제동(弘濟洞)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승천. 관할 구역은 역촌1 · 2동, 구산동 전역과 갈현동 일부 지역. [교 세] 1976년 1,578명, 1981년 4,537명, 1986년 8,586명, 1992년 10,947명, 1999년 7,378명. [역대 신부] 초대 백은기(白殷基) 라파엘(1974. 5~1978. 8), 2대 김창석(金昌錫) 타데오(1978. 8~1983. 8), 3대 김병학(金炳學) 라파엘(1983. 8~1988. 9), 4대 안경렬(安慶烈) 토마스 아퀴나스(1988. 9~1993. 10), 5대 염수완(廉洙完) 야고보(1993. 10~1998. 9) ,6대 박고빈(朴槁彬) 시메온(1998. 9~1999. 9), 7대 남국현 (南國鉉) 사도 요한(1999. 9~현재).
불광동 본당 주임 유영도(柳榮道) 신부는 관할 구역이 넓어 사목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자 응암동 본당 · 홍제동 본당과 함께 신자를 이관하여 1974년 5월 역촌동 본당을 설립하였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백은기 신부는 성당이 건립되기 전까지 역촌1동 22번지의 엔젤 유치원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는데, 그 해 6월 교구에서 마련해 준현 성당 부지(300평)에서 기공식을 가진 뒤, 9월에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백운기 신부는 성당 신축 공사 등 바쁜 가운데에서도 예비 신자 교리반을 시작하고, 어머니 성가대를 조직하는 등 본당의 기틀을 잡아 나갔으며, 7월에는 본당 소식지 <홀씨>를 창간하였다. 그렇지만 짧은 기간 동안에 기반이 다져지고 신자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백운기 신부는 성당 증축과 교리실 신축을 계획하고, 이듬해 8월 공사를 시작하여 9월 말 증축 성당을 완공하였다. 2대 주임 김창석 신부는 학생들과 청년들의 모임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철회(중학생회) · 반석회(고등학생회) · 다산회(청년회) · 레지오 마리애 등의 단체들을 조직한 데 이어 1979년에는 서울 성가 소비녀회의 분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본당 공동체의 활성화에 주력함으로써 1979년 성탄에는 160명이 세례를 받는 등 신자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에 사목위원회에서는 성당을 새로 짓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새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11월 지하 1층 지상2층 성당(406평)을 완공하였다.
5대 주임으로 부임한 염수완 신부는 신자들의 친교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고, 1994년 2월 22일에는 갈현동(葛峴洞) 본당을 분리하면서 240세대 724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또 그 해 7월부터는 부지 확장을 위한 모금 운동을 전개하여 12월에 성당에 인접한 가옥 두 채를 매입한 뒤 이를 사제관으로 개축하였으며, 이듬해 5월에는 가옥 한 채를 추가 매입하여 수녀원으로 고쳤다. 1998년 9월 25일 신사동(新寺洞) 본당을 분리하면서 980세대 2,900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7대 주임 남국현 신부는 신유박해 200주년을 맞아 신앙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이어받는 첫 번째 길은 공동체가 미사의 참 의미를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2001년에 '평일 미사 고리 잇기 운동' 을 전개하였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