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와 현상은 그것을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불교의 기본 교리.
[어 원] 연기(緣起)는 산스크리트어 '프라티잇트야웃파아다' (pratityasamutpada)라는 말마디를 의역(意譯)한 것으로, 흔히 연기법 혹은 연기설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붓다(Buddha)가 발견한 진리를 법(法)이라고 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ma)를 번역한 말이다. 다르마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닌 말로써 진리 · 가르침 ·모든 존재와 현상 · 준행(遵行)해야만 하는 의무 등의 뜻이 있으므로, 연기법 혹은 연기설은 연기의 진리 혹은 연기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뜻이 된다. '프라티잇트야삼웃파아다' 는 프라티잇트야 (pratitya)와 '삼웃파다 (samut-pada)의 두 단어로 분리되는데, '프라티잇트야' 는 연(緣)으로 번역되며, '···때문에' · '···에 의해서' . '···으로 말미암아' 라는 뜻이고, 기(起)로 번역된 '삼웃파아다' 는 '생겨남' · '형성됨' . '태어남' 의 뜻이다. 따라서 연기라는 말은 '···에 의해서 생겨남'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연기설은 "모든 존재와 현상은 그것을 성립시키는 여러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불교의 교설을 말한다.
[중요성] 연기법은 불교의 존재론으로 모든 불교 교리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붓다는 진리를 깨달은 자라는 뜻인데, 붓다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은 진리의 내용이 바로 연기법이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그대들이) 만일 연기를 보면 법(진리)을 보는 것이고, 바르게 법을 보면 나[붓다]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본다는 것은 깨닫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붓다는 깨달음이라는 뜻의 보디(bodhi)에서 파생되었고 이는 '보다' 라는 동사 어근 보드(bodh)에서 왔다. 깨달은 자인 붓다는 깨달은 자만이 알아볼 수 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들은 붓다를 알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연기법을 보면 붓다를 본다' 고 하는 것은 연기법을 깨달은 자가 바로 붓다라는 뜻이며, 붓다가 되려면 연기법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불교의 궁극적 이상 중의 하나는 붓다가 되는 것이므로, 연기법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고 난 다음 처음으로 가르침을 펼치던 초기에, 그는 연기법을 깨닫고 가르치는 이로 이해되고 있었다. 훗날 붓다의 수제자가 된 사리푸트라(Sariputra)가 붓다의 제자 아슈와지트(Asvait)의 수행자다운 모습과 행동에 감명을 받아 "그대는 누구이고 스승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진리를 배웠소?"라고 물었다. 그때 아슈와지트는 붓다로부터 배운 진리를 짤막한 한수의 시로 전해 주었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諸法從緣起), 붓다는 그 원인을 설하셨다(如來說是因). 생겨난 존재와 현상은 원인을 따라 소멸한다(彼從因緣盡)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是大沙門說)." 흔히 연기법송(緣起法頌)이라고 하는 이 시에 담긴 붓다의 가르침은 '모든 존재와 현상들은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며, 그 원인과 조건들이 사라지면 모든 존재와 현상들도 소멸한다' 는 뜻이다. 이처럼 연기법은 고타마 싯다르타로 하여금 붓다, 즉 깨달은 자가 되게 하는 깨달음의 내용인 것이다. 모든 종교는 창시자의 종교 체험에서 비롯되는데, 연기법은 불교라는 종교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최초의 종교 체험인 것이다.
[법 칙] 상의성(相依性)의 법칙 : 연기의 진리를 가장 함축적이면서도 요약적으로 해명하는 경전의 구절은 마지마 니카야(Majiam Nikaya II,p. 32)나 잡아함경(雜阿含經, 335) 등 여러 곳에서 언급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겨난다(此起故彼起) .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진다(此誠故彼滅)"라는 것이다. 전반부 두 구절은 모든 존재와 현상의 발생을 해명하며 후반부 두 구절은 소멸을 해명한다. 연기법을 불교의 존재론이라고 하는데 연기법은 모든 존재와 현상의 발생과 소멸에 관한 진리이다. 연기법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법칙은 모든 존재와 현상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서로 의존[相依]해 있다는 사실, 즉 상의성의 법칙이다. 연기법이란 모든 존재와 현상은 상호 의존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 상호 의존적 관계가 깨어지면 모든 존재와 현상도 사라지게 된다는 진리이다.
인연 화합(因緣和合)의 법칙 : 우유는 변하여 버터도 되고 치즈도 된다. 어떤 존재나 현상이 발생하거나 변화하려면 질료인(質料因)과 동력인(動力因)이 필요하다. 버터나 치즈의 발생과 변화에 있어서 우유는 질료인이고 발효 조건인 온도나 습도는 동력인이다. 불교에서는 질료인을 인(因)이라고 하고 동력인을 연(緣)이라고 한다. 어떤 존재나 현상의 발생이나 변화를 위해서는 이 질료인과 동력인, 즉 인과 연이 동시에 모두 필요하다. 우유는 있지만 발효 조건이 없으면 버터나 치즈로 변할 수 없으며 발효 조건은 있더라도 우유가 없으면 역시 버터나 치즈가 생길 수 없다. 불교에서는 이를 인과 연의 화합, 즉 인연 화합의 법칙이라고 한다.
부독존(不獨存)의 법칙 : 연기법에 따르면 어떠한 존재나 현상도 홀로 존재(獨存)할 수 없고, 그것은 그것을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서로서로 원인이 되기도 하고 조건이 되기도 하면서 함께 존재한다. 바꾸어 말하면 이 세계의 모든 존재와 현상들은 서로 더불어 있다. 어떠한 존재와 현상도 타자와 전혀 관계없이 존재할 수는 없다.
무항존(無恒存)의 법칙 : 모든 존재와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존재하므로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과 조건이 변하면 그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어,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세계의 존재와 현상은 전부 일시적 존재이며 임시적 존재이다. 연기법에 따르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적 존재는 없다.
부자존(不自存)의 법칙 : 연기법에 의하면 모든 존재나 현상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자에 의해서 혹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연기법은 자존하는 어떠한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후기 불교에서는 연기법을 인과(因果)의 법칙,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해명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원인에 따른 결과 사이에는 다분히 시간적 격차, 즉 이시성(異時性)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연기법은 동시성이 강조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인과의 법칙은 크게 강조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 연기법으로 인간의 죽음과 해탈, 즉 고통이 발생하는 과정과 그것을 소멸시키는 과정을 해명하는 것이 십이 연기설(十二緣起說)이다. 십이 연기설은 여러 가지 연기의 형식 가운데서 가장 완성된 모습을 갖춘 후기의 것이다. 인간의 고통이 발생하는 과정을 무명(無明, avidya) · 행(行, samskara) · 식(識, vijinaia) · 명색(名色, namarupa) · 육입(六入, sadayatana) · 촉(觸, sparsa) · 수(受, vedana) · 애(愛, trsna) · 취(取, upadana) · 유(有,bhava) · 생(生,jati) · 노사(老死, jara-marana)의 12단계로 설명하는 것을 십이 연기의 순관(順觀)이라고 한다. 즉, 무명이 행을 초래하고 차례대로 진행하여 결국에는 죽음에 이른다. 무명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지고 차례대로 진행하여 죽음이 사라진다. 무명의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사라진 해탈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이를 십이 연기의 역관(逆觀)이라고 한다.
연기설은 십이 연기설을 요약하여 혹(惑) · 업(業) ·고(苦)의 3단계로 설명하는 업감(業感) 연기설, 업의 종자(種子)가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보존되어 있다가 인과 연을 만나 연기된다고 설명하는 아뢰야 연기설, 전 우주의 모든 존재가 예외 없이 모두 서로 인과 연으로 얽혀있어 한 덩어리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하는 법계(法界) 연기설, 일미평등(一昧平等)의 진여(眞如)가 있어서 이로부터 우주의 모든 존재가 연기되어 나온다고 설명하는 여래장(如藏) 연기설을 4종 연기설이라고 한다.
[의 의] 붓다는 연기법 자체보다도 연기법이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고 설파하였다. 그는 연기법이 인간에게 궁극적인 자유와 평화, 즉 해탈을 가져다 준다고 말한다. 붓다는 인생의 본질을 고통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그가 시작한 종교적 삶의 목적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나'를 위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나를 위한 이기심은 나와 너를 가르고 우리와 너희를 나와 그들을 분별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것과 너의 것, 우리 것과 너희 것, 나의 것과 그의 것, 우리 것과 그들 것을 가르게 된다. 인간은 나에 대한 이기심이 생기는 순간부터 나를 향한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집착심을 갖게 된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절대적 존재가 되고 만다. 여기에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생기고 이들이 고통을 낳는다. 그러나 이 세계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홀로, 영원히,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타자에 의존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이 일시적이고 상대적이며 유한한 존재일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면, 그러한 존재와 현상들은 집착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모든 인간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나' 혹은 '나의것' 에 대한 이기심과 집착을 버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나에 대한 이기심과 집착심이 사라질 때 욕망이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질 때 번뇌와 고통이 사라지며, 번뇌와 고통이 사라진 상태가 다름아닌 인간의 실존적인 자유, 즉 열반이자 해탈인 것이다.
연기법은 이러한 개인적 자유인 해탈뿐만 아니라 세계의 해탈, 즉 사회의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연기법은 내가 나의 존재 근거가 아니라 네가 나의존재 근거임을 말한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어느 하나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마는 공동 운명체인 것이다. 즉 모든 존재는 서로 '더불어' 존재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뜻이다. 모든 인연은 이 우주에서 관련이 없는 존재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에 《화엄경》의 법계 연기설은 하나의 티끌 속에 전 우주가 담겨 있다(-微塵中含十方)고 설파하는 것이다. 연기법에 의하면 나무 한 그루 · 풀 한 포기 · 뒹구는 돌 하나도 전 우주의 모든 존재와 얽히고 설킨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하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그 모든 존재들 중에서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우주의 전 존재들은 서로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너와 내가 따로 없다. 모두가 하나로 얽혀 있는 한 덩어리, 한 생명체이다. 연기법의 의미는 세상이 한 몸이니 차별 없이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붓다는 그러한 가르침을 한마디로 묶어서 '동체대비' (同體大悲), , 즉 '온 세상을 한 몸으로 여기는 위대한 자비' 라고 하였다. 세상이 한 몸이라는 연기법의 깨달음,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에 입각한 실천이 세상을 한 몸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위대한 자비의 삶이다. 그래서 연기법은 개인적 자유로서의 해탈뿐만 아니라 세계의 해탈, 즉 사회의 평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교설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붓다가 깨달은 진리, 바로 연기법의 의미이다.
※ 참고문헌 E. Conze, Buddhism : It's Essence and Development, New York, Harper & Row, 1992/ 《ER》/ 《ERE》/ P.J. Kalupahana, Buddhist Philosophy : A Historical Analysis, Univ. Press ofHawaii, 1976/ E. Lamotte, History of Indian Buddhism, trans. by Sara Webb-Boin, 1988/ W.S. Rahula, What the Buddha Taught, Goreon Fraser, 1978/ E.J. Thomas, The History of Buddhist Thought, New York, 1963/ H.C. Warren, Buddhism in Transla-tion, New York, Atheneun, 1984/ 고익진, 《불교의 체계적 이해》, 새터사, 1995/ 교양 교재 편찬위원회 편, 《불교학 개론》,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1/ 불교 교재 편찬위원회 편, 《불교 사상의 이해》, 불지사, 1997/ 小口偉一 · 堀一郎 監修, 《宗敎學辭典》, 東京大學出版會, 1973/ 中村元, 鄭太爀 역, 《原始佛教》, 東文選, 1993. 〔尹泳海〕
연기설
緣起說
〔산〕pratityasamutpada
글자 크기
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