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부터 교황 비오 2세(1458~1464)까지 로마주교, 즉 교황들의 연대기를 모아 놓은 책.
'리베르 폰티피칼리스' (Liber Pontificalis)는 12세기부터 사용되어 15세기 이후로 널리 알려진 명칭이다. 오래된 주요 사본에는 '폰티피칼리스' (Pontificalis)라는 단어대신에 '에피스코팔레' (Episcopale)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복된(천국에 있는) 로마 주교들의 행전을 담고 있는 연대 주교표" (Liber episcopalis in quo continentur acta beatorum pontificium Urbis Romae)라고 적고있다. 그렇지만 최근의 사본에는 '업적' (Gesta) 혹은 교황 연대기' (Chronica pontificium)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초기 교황들에 대한 서술은 상대적으로 짧지만, 4세기 이후의 교황들에 대한 서술은 점차 길게 언급되고 있다. 서문은 두 통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다마소 교황(366~367)이 예로니모(341?~420)에게 베드로 사도부터 현재까지의 교황사를 서술하라는 요청을 담은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예로니모가 다마소 교황에게 보낸 답장이다. 하지만 이 두 편지는 실제로 다마소 교황이나 예로니모가 쓴 것이 아니다.
《연대 교황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교황사를 서술하고 있다. 교황의 이름, 고향, 부모, 재위기간, 간혹 황제나 이탈리아 고트 왕들과의 통사(通史),교황의 교령, 성당 건축과 봉헌 등 역사적인 사건, 로마교구 사제와 부제 서품자 명단과 교황의 사망 연도 및 무덤 장소 등이다.
[저 자] 라바노(Rabanus Maurus, 780?~856)는 서문에 나타나는 두 편지의 진위성에 바탕을 두고, 《연대 교황표》의 저자가 다마소 교황이라고 주장한 첫 인물이다. 13세기와 그 이후에도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다마소 연대기' (Chronica Damasi)나 '교황들의 업적에 관한 다마소' (Damasus de Gestis Pontificium)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폴로노(Martinus Polonus) 역시 이 주장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였다(147). 1600년에 판비니오(Onofio Panvinio,1530~1568)는 《연대 교황표》의 저자가 도서관장인 아나스타시오(Anastasio il Bibliotecaio)라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아나스타시오가 활동하던 시기가 9세기 후반인 데 반해 《연대 교황표》는 그 이전에도 자주 인용되었으므로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라르미노(R.F.R. Bellarminus, 1542~1621) 역시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1602). 바로니오(C. Baronius, 1538~1607)는 이 주장을 약간 변형하여, 아나스타시오는 자신보다 이전에 살았던 이들이 쓴 것을 수집한 편저자라고 주장하였다. 그후 1687년에 피어슨(Pearson)은 《연대 교황표》가 6세기 경에 쓰여졌고, 아나스타시오 시대 이전에 가필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셀스트라테(E. van Schelstrate, 1645~1692) 역시 아나스타시오가 저자라는 주장에 반대하였고, 이 주장은 비안키니(F. Bianchini, 1662~1729)에 의해 수용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나스타시오의 이름을 자신이 편집한 《연대 교황표》의 제목 안에 삽입시켰다. 미뉴(J.P. Migne, 1800~1875) 역시 《라틴 교부 선집》(Series Patrologia Latina)에 연대 교황표를 아나스타시오의 작품으로 분류하였다.
[편집 시기] 프랑스 교회사가 뒤센(L. Duchesne, 1843~1922)에 따르면, 《연대 교황표》는 본질적으로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초기 연대 교황표' (Liber Pontificalis primitivo)라고 불리며 로마에 고트족의 왕이 있던 시기인 5세기경에 편집되었고, 두 번째 부분은 7세기 말경에 편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펠리치아노 요약본과 코노니아노 요약본에서 발견되는 초기 《연대교황표》는 빠르게 널리 전파되었는데, 이는 투르의 그레고리오(Gregorius Turonensis, 538~594)와 베다 존자(Beda Venerabilis, 672/673~735) 등이 사용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후 《연대 교황표》는 호노리오 2세 교황(1124~1130) 때까지 종종 교황 재위 기간만 기록하면서도 계속 이어졌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으로는 판돌포(Pandol6)의 《연대 교황표》로, 피에르 굴리엘모(Per-Guglielmo)의 《연대 교황표》라고도 한다. 이는 생질(Saint-Gilles) 수도원의 도서관장이었던 그가 사본을 만든 것에서 유래한다. 이외에도 스페인의 토르토사(Tortosa)에 있는 데르두센 사본(codex Dertusensis)에 따라 마르쉬(J. March)가 1925년에 편집한 《연대 교황표》를 꼽을 수 있다.
[자 료] 헤제시포와 이레네오, 히폴리토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미 2세기에 로마 주교들의 연대표가 존재하였다. 로마 교회는 초대부터 전례 때 기억하기 위한 목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354년 《연대기 작가》 (Cronografo)에 삽입된 '로마 주교들의 목록' (Depositiones episcoporum Romanorum)과 유사하였다. 이 목록은 254~352년 사이에 활동한 교황들의 축일과 이들이 매장된 장소를 적고 있다. 사실 《연대기 작가》는 '로마 주교들의 목록'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적 · 종교적 연대기를 모아놓고 있다. 이 중 교황 연대표의 초석을 놓은 <로마시 소식>(Notitia regionum urbis Romae)과 《연대 교황표》에 온전히 수용된, '필로칼로 교황표' (Catalogus Filocalianus)라고 도 불리는 《리베리오 교황표》(Catalogus Liberianus)를 찾아볼 수 있다. '필로칼로 교황표' 라고 부르는 것은 다마소 1세 교황의 필사가였던 디오니시오 푸리오 필로칼로 (Dionisio Furio Filocalo)의 이름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현재 전해지지 않는 《레오 교황표》(Leonine Catalogue)는, 특별히 교황들의 재위 기간에 영향을 주었다. 이외에도 예로니모의 《명인록》(De viris illustribus) 등에서 많은 부분을 추출한 것으로 보인다. 몸젠(T. Mommsen, 1817~1903)은 이외에 《이탈리아 연대기》(Chronicica Italica)도 포함시켰다.
[가 치] 뒤센은 중세 문학에 대한 《연대 교황표》의 중요성을 교황이 중세에 정치적으로 중요했던 것에 비유하고 있다. 《연대 교황표》는 그 서술과 역사적 사실이 항상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6세기까지의 교황사와 로마사를 아는 데 있어 중요한 문헌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 교황)
※ 참고문헌 L. Duchesne, Le Liber Pontificalis. Texte, Introduction et Commentaire I~I Paris, 1886, 1892/ F.L. Cross . E.A. Livingstone, 《ODCC》, p. 9771 E. Josi, 《EC》 7, pp. 1278~1282/ J.B. Lightfott, The Apostolic Fathers I , 2nd ed., 1989, pp. 303~325/ F. Monfrin, Dizionario Storico del Papato I , traduzione di Francesco Saba Sardi, Milano, 1996, pp. 890~891/ C. Vogel, Dizionario Patristico e di Antichità Cristiane Ⅱ, Casale Monferrato, 1994(1 ristampa), p. 1947. [邊宗燦]
《연대 교황표》
年代教皇表
〔라〕Liber Pontificalis
글자 크기
9권

12세기에 펴낸 <연대 교황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