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학

年代學

〔라〕chronologia · 〔영〕chro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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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사건들이 발생한 연대를 정확히 계산하여 그 사건들을 시대적인 순서에 따라 배열하려는 목적을 지닌 이른바 '시간의 학문'.
역사가 로트(F. Lot, 1866~1952)는 자신의 "연구 방법은 모든 것을 묘사하는 것이며, 그것은 모든 자료들을 연대적인 순서로 정리하는 작업을 토대로 하였다" 고 언급한 바 있다. 그의 관점은 실증주의적 역사학의 관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많은 사건들로 가득 찬 기록들을 연대학을 통해 정리하기 때문에 연대학 그 자체는 역사가에 의해 새롭게 인식된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연대학과 역사학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 사건의 시간적 위치나 다른 사건들과의 시간적 상호 관계를 찾아내는 것 역시 역사학의 본질적인 임무이다. 그러므로 연대학을 토대로 과거의 역사를 개관적으로 기술하거나 혹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과거 사건들을 연대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작성되는 연대기는 당연히 역사가의 역사 연구 및 역사 기술 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구 분] 과거의 기록을 분석하는 중추적인 분야라 할 수 있는 연대학은 크게 이론 연대학과 실용 연대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천문학 · 수학 등과 같은 과학적 이론에 기초하여 역사적 사건의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1940년대 이후 원자 물리학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결과 과학적인 연대 측정 방법이 개발됨으로써 이론 연대학 분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특히 1947년 이후 리비(W.F.Libby, 1908~1980)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개발한 이후 방사성 원소의 붕괴 현상을 이용한 방법은 널리 보급되었다. 이와 함께 산업 혁명 이전의 사회들을 연구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되는 기후 연대학 역시 발전되었다.
그렇지만 연대학이 과학적 기술의 발전에만 의존할 경우 그 설명적인 가치를 상당 부분 상실할 위험성이 있다. 연대학은 실용적인 또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실용 연대학은 고증학적 역사학을 보조하는 분야로 과거에 시행되었던 역법을 기초로 사건에 대한 기록의 진실 여부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 전] 연대학을 기초로 한 역사 서술이라 할 수 있는 연대기가 최초로 나타난 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고대 그리스에서였다. 즉 그 시대에 아르고스(Argos)에 있는 헤라 신전 여사제들의 명단 목록이 작성되었으며, 소피스트였던 히피아스(Hippias, 기원전 5세기경)는 올림포스 산에 살고 있는 신들의 명단을 목록으로 작성함으로써 고대 연대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고대 로마 시대에 카토(M.P. Cato, 기원전 234~148)는 《로마의 기원》을 저술하면서 로마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관찰하였던 내용과 개인적인 견해 역시 포함시켰다. 타치투스(C. Tacitus, 55~120)는 "분노와 열정없이 연구한다" 는 자세로 《역사》(Historiae)를 서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책에서 많은 역사적 사건들의 방대하면서도 모호한 상호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각종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서술하는 데 그쳤다.
연대기가 본격적으로 역사 서술의 한 형식이 된 것은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였으며, 서양 중세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 서술 형식으로 채택되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적인 사회로 전환되면서 성서에 등장하는 사건들이나 인물들을 중요시하게 되었으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과 관련된 각종 날짜, 그리스도교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순교자와 고위 성직자들의 출생 및 사망 날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날짜들이 그리스도교의 축일로 지정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연대학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역사 서술의 목적은 신앙을 강화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데 있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들은 구약성서의 내용을 자신들 선조의 공식적인 역사로 받아들였으며, 그 역사를 그리스 · 로마의 역사와 연대기적으로 연결시켰다. 그 결과 역사의 중심은 그리스 · 로마로부터 유다 민족으로 바뀌었고,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행위와 죽음, 교회의 성립과 발전 등이 역사의 주된 내용이 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숙명적으로 특정 국가 혹은 특정 민족의 종교가 아닌 보편 종교를 추구하였기 때문에 미시적인 역사 서술이 아닌 아담의 창조 이후 모든 인류의 발전 과정을 포함하는 보편적인 세계사 서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초의 그리스도교 역사가라고 일컬어지는 아프리카누스(S.J. Africanus, 180~250)는 《연대기》 (χρονολογία)를 작성하면서 인류의 창조부터 서기 221년까지 유다 민족의 역사와 그리스 · 로마의 역사를 발췌하여 양자를 병치시켰다. 이 연대기에 의하면 기원전 5499년에 세계가 창조되었고,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 500년 동안 세상이 지속되다가 그 이후에는 천년 왕국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이 연대기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저술된 최초의 그리스도교적 연대기로서 고전적 연대기와 성서적 연대기를 상호 연결시킴으로써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을 유다 국가의 연속으로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프리카누스의 《연대기》에 비해 더 조직적이고 완전한 연대기는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260/265?~339)가 저술한 《연대기》(χρονικόι), 《교회사》(εκκλησιαστική ιστορία) , 《콘스탄틴의 생애》(De Vita Constantini) 등을 통해 나타났다. 《연대기》에 나타난 그의 저술 의도는 교회사 서술을 위한 역사적 배경과 연대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기존의 모든 연대기를 비교하여 이집트 · 아시리아 · 그리스 및 로마의 역사를 성서의 연대기와 상호 일치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역사적 사건들을 두 가지 범주로 구분하고 왼쪽에는 종교적인 역사를, 오른쪽에는 세속적인 역사를 배치시켰다. 또한 그는 이 두 가지의 역사를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지표로 삼아 아브라함의 탄생(기원전2016~2015) 이후부터 서기 303년까지를 서술 대상으로 하였다. 이처럼 종교적인 역사와 세속적인 역사를 상호 병치시키는 작업은 결국 그 두 가지의 역사가 하나의 통일성 속에서 사고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의 저작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聖)과 그 사명을 강조하고 호교론적 관점에서 저술되었기 때문에 그의 서술에 나타나는 비과학성 외에도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을 공평하게 다루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한 종교의 승리와 영광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이상을 설명하기 위한 그의 역사 서술은 중세의 보편사적 역사 서술의 틀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외에도 술피치오(Severus Sulpicius, 360?~420/425?)는 에우세비오의 연대기를 모방하여 성서의 역사와 고대 그리스 · 로마의 역사를 융합시킨 《연대기》(Chronica)를 저술하였다. 또한 오로시오(Paulus Orosius, 380~420)는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의 영향을 받아《대(對)이교도 투쟁사》(History against the Pagans)를 서술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많은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이교도와 그리스도교 시대의 행복과 불행을 비교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에우세비오의 저술에 비해 보다 확장된 세계 연대기로서, 서양 중세의 역사가들에게 세속적 역사를 취급하는 모범을 제시하였다.
서양 중세의 역사 서술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 역사 서술의 연속으로 나타난다. 즉 주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라틴어로 저술된 중세의 역사 서술은 그리스도교적세계관을 기초로 언제나 창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중세의 역사 서술은 대부분 연대학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졌다. 당시의 그리스도교적 역사관은 세계사를 여섯 개의 시대로 구분하거나 혹은 네 개 제국들의 연속으로 파악하였는데, 그 영향을 받은 역사 서술은 당연히 보편사적인 세계 연대기의 형식을 취하였다. 11세기 이전에 비해 그 이후에 저술된 연대기들은 상대적으로 넓은 지역을 다루고 있으며, 사건들의 단순한 나열 수준을 벗어나 그 사건들에 대한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이는 11세기부터 교황권과 황제권의 대립, 십자군 운동, 교회의 내적인 개혁 운동에 따라 세계관이 확대된 결과이다. 이처럼 중세의 역사 서술이 신학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세의 그리스도교적 이념과 역사관은 보편주의적 사고와 함께 역사의 궁극적 목표에 대한 진지한 사고 태도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평가 및 의의] 연대학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역사 서술은 역사적 사건을 일어났던 그대로 충실하게 복원한다는 점에서 객관적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수집과 정리 및 편찬을 강조하는, 따라서 상상과 사색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분석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 역사적 사건들의 표면적이고 외면적인 형상만을 언급할뿐, 사건들 사이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연관 관계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그러므로 연대기적인 역사 서술은 살아 있는 역사가 아닌 죽은 역사가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연대기 작성자들은 특정한 역사관을 갖고 사건을 선택하기보다는 단지 자신들에게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이지 않은 관습과 풍습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르네상스 시기 이후 태양력과 비교하여 다수의 복잡한 달력이 만들어지면서 기원(紀元) 문제에 있어서 연도(年度)와 그 시작 일은 물론 달〔月)과 날(日)을 표시하는 방법 역시 지역 · 종교 · 시대 등에 따라 다르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로 인해 연대기에 기록된 사실들의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이 나타났다. 특히 서양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의 위치가 강화됨에 따라 태음력과 태양력 사이의 일치,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오력 사이의 일치라는 미묘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 결과 근대의 역사 서술에서는 연대기적 역사 서술 형식을 거의 채택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연대기적 형식을 취하였던 교회사 서술은 16~18세기의 생 모르 학파 수도자들로 하여금 연대기들 사이의 일치와 상호 관계에 대한 문제들을 탐구하게 함으로써 근대 고증학적 역사학 연구의 모범을 제시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르네상스 이후의 역사 서술이 대부분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사건의 경과를 설명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그 주제에 관한 설명이 그 사건의 시간적 전개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여전히 연대기적 형식이 남아 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특히 브로델(F. Braudel, 1902~1985)이 제시한 세 가지 다른 층위의 시간 개념으로 인한 단일한 시간의 종식, 역사적 요인들이 지속성의 의미를 지닌다는 관념 등은 연대학의 설명적인 특성을 최소화시킬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의 정확한 시간 배경을 확립하는 연대학의 역할은 여전히 역사적 연구의 중요한 기반으로 존재하고 있다.
※ 참고문헌  0. Dumoulin, Chronologie, Dictionnaire des sciences historiques, André Burguière ed., Paris, PUF, 1986, pp. 131~132/ 이상신, 《서양 사학사》, 청사, 1984/ 김성태, 《세계 교회사》 I,성바오로출판사, 1986/ 조인형, 《초기 기독교 시대의 역사 서술>, 《서양 고대와 중세의 사회》, 지동식 편, 신양사, 1993, pp. 795~8271 고려대학교 대학원 서양 고대사 연구실 편역, 《서양 고전 고대 역사가와 역사 서술사론》, 법문사, 1983. [珙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