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목포시 산정1동 1044-127 소재. 1967년 11월 16일 산정동(山亭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제라르도. 관할 구역은 산정1~3동, 용당1 · 2동 일부 지역과 신안군 비금면. [교세] 1968년 1,897명, 1978년 4,175명, 1988년 4,405명, 1993년 5,349명, 1997년 5,605명, 2000년 4,813명. [역대 신부] 초대 카(F. Carr) 프란치스코(1967. 11~1971. 8), 2대 스위니(R. Sweeney, 徐) 로베르토(1971. 8~1973. 4), 3대 모리세이(M. Morrissey, 牟) 미카엘(1973. 4~1974. 4), 4대 플래너건(I.Fanagan, 具) 요셉(1974. 5~1977.7), 5대 물바니(P. Mulvaney, 文) 베드로(1977. 7~1980. 4),6대 돌런(J. Dolan, 都) 요셉(1980. 5~1982. 10), 7대 머피(C. Murphy, 全) 고르넬리오(1982. 12~1983. 4), 8대 낼런(M. Nallon, 羅) 미카엘(1983. 4~1986. 3), 9대 정규완(鄭圭完) 토마스(1986. 3~1990. 1), 10대 고재영(高在榮) 야고보(1990. 1~1994. 2), 11대 박상수(朴常洙) 고스마(1994.2~1996. 1), 12대 김홍언(金洪彥) 요한 보스코(1996.1~2001. 1), 13대 김희항(金喜恒) 프란치스코(2001. 1~현재).
1952년 4월에 경동(京洞) 본당을 분리한 데 이어 1958년 9월 북교동(北橋洞) 본당을 분리한 산정동 본당에서는, 1960년대에 들어와서도 계속 신자수가 늘어나고 관할 구역도 너무 넓자 새 본당을 설립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한편 당시 광주대교구장 헨리 (H. Henry, 玄海) 대주교는 미국에서 호스트(R.Host)라는 건축 기사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그는 어린 나이에 죽은 아들에게 상속할 돈을 성당을 세우는 데 희사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한국에 돌아온 헨리 대주교는 산정동 본당 주임 브라질(S. Brazil, 진) 신부가 새 성당 건립을 건의하자, 1967년 초에 그 희사금으로 대지(1,048평)를 매입해주고 성당 건립을 추진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1월 연동 본당이 설립됨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카 신부가 임명되었으며, 관할 구역은 산정1 · 3동 일부 지역과 용당동 · 용해도 · 삼향면 대양리 지역으로 정해졌다. 카 신부는 산정동 본당 사제관에 임시로 기거하면서 성당과 사제관 신축 공사를 감독하는 한편, 신자 가정 방문을 실시하는 등 본당 기틀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사제관의 도장 공사와 내부 시설이 완비되자 이듬해 3월 5일 사제관에 입주한 카 신부는, 이튿날 신축 성당에서 첫미사를 봉헌한 데 이어 5월 5일에는 헨리 대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본당 관할의 읍동 공소가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이 많다는 그곳 신자들의 공소 이전 요청에 따라 1970년 12월 3일 대지 251평을 매입한 다음 24평 규모의 공소 강당을 신축하여 축복식을 가졌고, 이듬해 7월 1일에는 산정동 본당 관할이었던 산정1동이 연동 본당 관할로 이관되었다.
4대 주임 플래너건 신부는 노인들을 위한 성모회와 중년 여성 신자들의 모임인 성심회를 조직하고 보다 젊은층으로 성체회를 분산 · 조직시키는 등 본당 신심 단체를 통한 사목으로 본당 자립의 실효를 거두고자 하였으며, 1976년 5월 25일에는 성당 입구에 루르드 성모 동산을 만들었다. 이어 5대 주임으로 부임한 물바니 신부는 사도회 임원들과 여성 신심 단체 및 신자들 간의 친교에 중점을 둔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고, 본당 운영이 정착되고사목 활동이 다양해지자 1979년 2월 27일에 사랑의 씨튼 수녀회를 초청하였다. 한편 용당동 인근 지역에 아파트 · 상가 · 주택 단지 등이 형성되고 인구가 급증하여 1978년에 이 지역 신자수가 1,191명에 이르자, 연동 본당에서는 이듬해 11월 교구와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지원을 얻어 용당1동 1095-18번지의 대지 400평을 매입한 뒤 용당동(龍塘洞) 본당을 분리 · 설립하고, 용당1 ·2동 일부 지역과 용해동 및 무안군 삼향면 대양리 지역의 272세대 942명을 이곳으로 이관하였다. 6대 주임 돌런 신부는 구역 내의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인성회 활동에 중점을 두고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생활에 불편이 많았던 수녀원 건물을 철거한 뒤 1981년 12월 3일이를 신축하였다. 용당동 본당을 분리한 후에도 신자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자 8대 주임 낼런 신부는 1983년 2월 7일 삼학도(三鶴島) 본당을 분리하고 산정동에 소재한 남해 개발 주택 단지와 연동의 신자 일부 등 82세대 202명을 새 본당으로 이관하였으며, 10월 28일에는 비금 서부 공소 강당을 증축하였다.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교구로 사목권이 이양되면서 1986년 3월 9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규완 신부는, 이듬해 10월 26일 구세주 어머니 꾸리아를 창단한 데 이어1988년 10월 14일에는 성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를 창립하는 등 본당 신자들의 참여 의식을 고취시켰다.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고재영 신부는 1992년 10월에 교육관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8월 22일 이를 완공하였고, 12대 주임 김홍언 신부 때인 1996년 7월 28일에는 성전을 개축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3대 주임으로부임한 김희항 신부는 부임 직후 성당을 개방하고 성당 담장을 없애 노인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는 등 지역 공동체와의 공유를 중시하였다. 현재 연동 본당은 '참 그리스도인 공동체 우리 연동 본당' 이라는 표어 아래 신의 공소와 수녀원 신축 계획을 세우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광주대교구 ; 산정동 본당 ; 삼학도 본당 ; 용당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광주대교구 50년사》, 천주교 광주대교구, 1990. [白秉根]
연동 본당
蓮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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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