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사

燕行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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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청나라에 파견된 외교 사절. 여진족이 한족의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운 뒤 1645년에 수도를 심양(瀋陽)에서 연경(燕京)으로 옮겼는데, 이후 청나라에 사행(使行) 가는 것을 '연행' (燕行)이라 불렀다. 한편 그 이전에 조선에서 명나라에 사행 가는 경우는 천자국에 조하하러 간다는 뜻에서 조천' (朝天)이라고 하였다. 이런 호칭의 차별은 중국족의 명나라에 대해서는 사대의 예를 적용하지만, 여진족의 청나라에 대해서는 사대의 예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청나라에 대한 조선의 외교 사절 파견은 1637년(인조 15)에 시작되어 1893년(고종 30) 청일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257년 동안 지속되었다.
정기적인 연행사로는 절행(節行)이 있고, 부정기적인 연행사로는 별행(別行)이 있다. 사안이 중대하지 않아서 절행이나 별행의 격식을 갖추지 않고 역관을 비롯한 실 무자들만을 파견하는 약행(略行)으로는 역행(曆行) · 뇌자행(賚咨行) 등이 있다.
절행이란 동지에 파견되는 동지사(冬至使), 정월 초에 파견되는 정조사(正朝使) 황제의 생일에 파견되는 성절사(聖節使), 황후와 태자의 생일에 파견되는 천추사(千秋使)를 말한다. 1637년(인조 15, 청나라 태종 2)부터는 절행 중에 천추사가 없어지고 대신 조공을 바치기 위한 세폐사(歲幣使)가 생겼다. 그리고 1645년(인조 23, 청나라 세조 2)부터는 절행 중에서 정조사 · 성절사 · 세폐사를 동지사 하나로 통합하였다. 별행은 조선 국왕의 훙거(薨去) · 사위(嗣位) · 책비(冊妃) · 건저(建儲) · 추숭(追崇) 등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였거나, 청나라에 동일한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 파견되었다. 각 사행의 목적에 따라 사은사(謝恩使) · 진주사(進奏使, 또는 奏請使) · 진하사(進賀使) · 진위사(陳慰使) · 진향사(進香使) · 변무사(辯誣使) · 문안사(問安使) 등으로 불렸다.
1645년에는 청나라와 조선 정부와의 약정에 의하여, 연행사의 규모는 절행과 별행을 막론하고 정사(正使) · 부사(副使) · 서장관(書狀官) 각 1명, 대통관(大通官) 3명, 압물관(押物官, 또는 護貢官) 24명 등 모두 30명으로 규정되었다. 이들을 정관(正官)이라 불렀다. 의원(醫員) · 사자관(寫字官) · 화원(畵員)들은 간혹 정관 외에 별도로 추가되기도 하였다. 또한 3명의 사신과 역관들에게 일정 수의 마부(馬夫) · 노자(奴子) · 구인(驅人)들이 허용되었으므로, 그 총수는 300~500명에 이르렀다. 대통관 이하의 정관은 대체로 역관들이었지만, 정사 · 부사 · 서장관을 수행하면서 돕도록 배정된 7~8명의 군관(軍官)들은 거의 다 무관 아닌 문관 사대부 출신으로 채워졌다. 수행 군관은 정부에서 선발하지 않고 사신들이 직접 선발하였으므로, 대체로 자제나 친척들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 관례여서 자제 군관(子弟軍官) 또는 자벽군관(自辟軍官)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군관 명목으로 수행한 사대부들 중에는 연행록을 남긴 인물도 많았는데, 《노가재 연행록》(老稼齋燕行錄)을 쓴 김창업(金昌業) 《담헌연기》(湛軒燕記)를 쓴 홍대용(洪大容),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쓴 박지원(朴趾源)들이 특히 잘 알려져 있다. 1784년에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한 뒤 조선 천주교회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이승훈(李承薰) 역시 서장관인 부친 이동욱(李東郁)의 자제 군관으로 연행하였다.
연행사는 매년 6월의 도정(都政)에서 결정되었고, 그해 10월 말 또는 11월 초에 출발하였다. 연경에 머무르는 날수는 40일 이내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60일 가량 머무른 경우도 있었다. 연행사는 대체로 다음해 3월 말이나 4월 초에 서울에 돌아왔다. 이전 시기의 사신들과는 달리 청나라로 가는 조선 사신들은 모두 해로가 아닌 육로를 택하였는데,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넌 후 초기에는 책문(柵門)→봉황성(鳳凰城)→요양(遼陽)→우가장(牛家莊)→광녕(廣寧)→영원위(寧遠衛)→산해관(山海關)을 거쳐 연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1679년(숙종 5)부터는 요양→십리보(十里屋)→심양(盛京府)→변성(邊城) →거류하(巨流河)→자기보(自檱堡)→이도정(二道井)→소흑산(小黑山)→광녕을 거치게 되었다. 봉황성에서부터는 사행에 쓰는 경비를 청나라에서 담당하였다. 조선 사람들은 이러한 연행 과정을 일기 형식인 연행 일기 또는 기행문 형식인 연행록으로 남겨 놓았다.
연행사는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므로, 공사(貢使)라고도 불렸다. 이를 통하여 양국간에 공식 · 비공식의 무역이 성립되었다. 조선에서 파견되는 사신들은 공식적인 예물인 세폐(歲幣)의 교환뿐 아니라, 조선에서 구하기 어려운 서적 · 약재류를 비롯하여 국가 유지에 필요한 군수 물자 같은 특수 물자를 구입하는 임무도 주어졌다. 이때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개시(開市) 무역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허용되는 후시(後市) 무역을 통하여 사무(私貿)에 종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연행 무역은 곧 청나라 문물 수입의 공식적인 통로였다. 연행사들은 조선에서 구할 수 없는 학술 서적 및 조선에 필요한 물화들을 구입하고자 애썼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청나라에서 수출을 금지하는 중국 각 지역의 세밀한 지도라든가 지리서인 《일통지》(一統志) 청나라 자체에서 금서로 지정된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日知錄)을 비롯한 개인 문집들을 구해 오려고 노력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학자들이나 선교사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귀중 도서를 기증받는 것 외에도, 연경에 있는 유리창서사(琉璃廠書肆)가 희귀 도서를 구입할 수 있는 장소로 조선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곧 연행사를 통하여 명말 청초 경세학파 학자들의 저술, 그 이후 《사고 전서 제요》(四庫全書提要)를 비롯한 고증학파 학자들의 저술뿐만 아니라, 천주교 관련 서적들이 세계 지도를 비롯한 서양 물화들과 함께 들어왔다. 이미 명나라 말기인 1614년 이전에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가 수입되었고 12단(渴十二章)이 소개되어 있었던데다가, 청나라에서는 아담 살 등 서양 선교사들을 중용하여 천문역상(天文曆象)의 학술을 진작시키고, 총포류를 비롯한 무기의 제조와 세계 지도 제작 등에 종사시켰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서학 관련 서적을 직접 들여온 인물로 확인되는 사람은 허균(許筠) · 정두원(鄭斗源) · 이의현(李宜顯) 등이다.
1785년(정조 9)에는 천주교가 사교(邪敎)로 규정되면서 서양 서적 수입도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18세기에 연행사를 통하여 조선에 유입된 천주교 서적들 가운데 신자들이 직접 본 것으로 파악되는 중요 서적은 《교요서론》(敎要序論)) · 《기인십편》(畸人十篇) · 《만물진원》(萬物眞源) · 《성경직해》(聖經直解) · 《서학범》(西學凡) · 《성경광익》(聖經廣益) · 《성년광익》(聖年廣益) · 《성세추요》(盛世芻蕘) · 《영언여작》(靈言蠡勻) · 《직방외기》(職方外紀) · 《진도자증》(眞道自證) · 《천주강생언행기략)(天主降生言行紀略) · 《천주교요》(天主敎要) · 《칠극대전》(七克大全) · 《천학초함》(天學初函) 등이다. 이 밖에도 정조 연간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가 소각된 천주교 관련 서적들을 포함하여 60종 이상이 확인되고 있으며, 조선에서 한글로 번역된 것만도 10여 종에 이른다. 중국에서 저술된 한역 서학서(漢譯西學書)는대략 350종에 이른다고 하므로, 20% 정도가 연행 사행 등을 통하여 조선에 전래된 셈이다. 18세기까지는 한역 성서 내지 라틴어 성서 역시 전래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명확하게 확인되지는 않는다.
연행 사행은 조선 천주교회와 북경 천주교회의 연락에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1784년 자제 군관으로 연행하여 세례를 받고 천주교 서적과 십자가와 성패 등을 가지고 돌아온 이승훈뿐만 아니라, 1793년 이후 북경 교회와 연락을 담당하면서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영입하거나 서양 선박을 청하기 위하여 상인으로 변장했던 윤유일(尹有一)과 역졸 출신 김유산(金有山), 황사영의 <백서>를 중국 교회에 전달하려고 상인으로 변장하였던 황심(黃沁)과 마부 출신 옥천희(玉千禧) 1816년 이래유 파치피코 신부 및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을 영입하려고 종으로 변장하기도 했던 정하상(丁夏祥)과 역관 유진길(劉進吉) 등의 노력도, 모두 연행사를 통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 부연사)

※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瀋陽日記》/ 燕行 日記 類/ 《萬機要覽》/ 《大典會通》 《通文官志》/ 《推案及鞫案》/ 《邪學懲義》/ 藤塚鄰,《清朝文化東傳 の研究》, 國書刊行會, 1975/ 金聖七, 〈燕行小孜〉, 《瀝史學報》 12집, 歷史學會, 1960/ 裴賢淑, <17 · 18世紀에 傳來된 天主敎書籍〉, 《教會史研究》 3집, 韓國敎會史研究所, 1981. [朴光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