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사도

使徒

〔그〕δώδεκα απόστολοι · 〔라〕duodecim apostoli · 〔영〕twelve apostles

글자 크기
9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발된 열두 사도의 모자이크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발된 열두 사도의 모자이크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발된 열두 명의 제자들.
〔사도의 의미〕 '사도' 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아포스톨로스 (ἀπόστολος )의 어원은 '보내다, 파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포스텔로' (ἀπόστολος)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작품들을 보면 사도란 일반적으로 '소식을 가져 가 전달하는 사람' 이라는 뜻을 가지며(Herodotus 1, 21 ; Plato, Ep. 7. 346a), , 종교적인 의미로 쓰인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와 비슷한 개념을 유대교 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살리아흐' (סליח)는 율법 문서를 전하거나, 모금 요청이나 지시를 전달하고, 회중 기도를 이끄는 이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 · 엘리야 · 엘리사 · 에제키엘에게도 '살리아흐' 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는데, '하느님을 대신하는 자'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살리아흐' 는 랍비를 대리하는 이, 혹은 하느님의 뜻을 대리하는 자로서 '사도' 보다는 '대리인' 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앞의 용법들을 고려해 볼 때, '사도' 라는 말은 그리스도교로 넘어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독특한 의미를 획득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열두 제자와 열두 사도] 예수가 3년 간의 공생활을 시작하던 무렵에 열두 제자를 선택했다는 보도가 공관 복음서에 나온다(마르 3, 13-19 : 마태 10, 1-4 ; 루가 6,12-16). 공관 복음서와 사도 행전에 따르면, 열두 제자는 예수의 공생활 동안 항상 그의 측근에 있었고, 예수가 승천한 후에는 복음을 세상 널리 전파하게 되었다. 물론 '열두 제자' 와 '열두 사도' 는 같은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행하던 역할에 따라 달리 불린다. '열두 제자' 라고 할 때는 역사의 예수와 동고 동락하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측면이 강하고, '열두 사도' 라 할 때는 예수에게서 선교의 사명을 받아 복음을 전해 나간다는 '복음 선포의 사명' 이 부각된 명칭이다(마태 28, 16-20). 예수는 지상에서 활동할 때 이미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어 이스라엘 방방곡곡에 파견한 바 있다(마르 6, 7-13 ; 마태 10, 5-15 ; 루가 9, 1-6). 따라서 '열두 사도' 라는 명칭의 기원도 역사의 예수에게로 소급될 수 있는 것이다.
신구약 성서를 통틀어 '12' 처럼 자주 등장하는 숫자도 아마 드물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파수가 열둘이었고 (창세 35, 23-26 : 49장), 한 해가 12달로 구성되어 있으며(1열왕 4, 7-19 ; 1역대 27, 1-15), 요한 묵시록에도 12라는 숫자가 수시로 등장하고(21, 12-14 ; 22, 2 등) ,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 (마태 26, 54)나 예수가 음식 기적을 베푼 후에 남은 조각들을 모아 보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는 보도(마태 14, 20)도 있다. 이렇게 12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이스라엘에서는 '12를 완전함과 완성을 상징하는 숫자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예수가 특별히 열두 제자를 선택했던 이유는 흔히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기 위함이다. 즉, 열두 제자를 뽑음으로써 전체 이스라엘을 모으겠다는 예수의 의지가 상징적으로 드러났다는 말이다. 그리고 종말에 이루어질 '메시아 공동체' 를 상징하는 숫자, 곧 종말론적인 성격을 더할 수 있겠다(마태 19, 28).
그러나 열두 제자에게 '사도' 라는 명칭이 붙여지는 경우에는 반드시 '12' 라는 숫자로 국한시키기는 어렵다. 루가 복음서 10장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는 72명의 제자를 뽑아 둘씩 짝지어 선교 여행을 보내는데, 이는 선교의 사명이 열두 제자에게만 주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실제로 복음사가 루가는, '사도' 라는 단수형명사를 쓴 마태오와는 다르게 '사도들' 이라는 복수를 사용하고 있다(17, 5 ; 22, 14 ; 24, 10). 물론 루가 복음서의 보도가 갖는 역사성을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복음선교의 사명' 이 갖는 보편적인 성격을 감안할 때, 예수가 열두 제자에게만 사명을 주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열두 사도' 는 사도들 중의 사도, 혹은 상징적인 의미의 사도를 뜻하는 말로 여겨야 한다.
[1세기경 교회의 사도] 예루살렘 모(母) 교회의 모습과 그리스도교의 전파 과정을 다룬 사도 행전에서도 '12' 라는 숫자는 여전히 그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다. 배신자 유다의 탈락으로 12라는 숫자에 결손이 생기자 보궐 선거를 통해 마티아가 유다의 자리를 메우게 된다 (사도 1, 12-26). 그리고 '열두 사도' 는 초창기의 선포문에서도 발견된다(1고린 15, 5). 이는 모두 1세기 교회에서 '열두 사도' 가 갖는 상징성이 얼마나 중시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들이다.
하지만 바오로의 편지에 보면 실제적인 모습은 그와 상당히 달랐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리스도교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모 교회는 베드로 · 요한 야고보 등 세 명이 이끌고 있었는데(갈라 2, 1-10), 그중 야고보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의 동기였다. 그리고 바오로와 사도들 사이에 벌어졌던 사도권 논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예수를 직접 모시고 다녔어야 정식 사도가 될 수 있다' 는 주장을 한 반면, 바오로는 '부활한 예수를 만나 사명을 받아도얼마든지 사도가 될 수 있다' 는 입장에 서 있었다(로마1, 1 ; 1고린 9, 1-2 ; 15, 1-11 : 2고린 11, 4-6 : 갈라 1, 11-24). 바오로가 예루살렘 사도들에 맞서 자신도 엄연히 '이방인을 위한 사도' 임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그런 현상들을 볼 때, 1세기 교회에서 이미 '열두 사도' 가 갖는 고유성이 시험대 위에 올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선교의 사명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을 선포하였다. 1세기 교회에서 사용되었던 선포문의 내용은 표현상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대체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 · 부활 · 재림(再臨)이라는 세 가지 내용을 포함한다(1데살 1, 9-10 ; 로마 1, 3-4 ; 1고린 15, 3-7). 예수의 열두 사도 역시 예수 승천(사도 1, 6-11) 이후 전세계를 향해 선교를 떠났고(사도 1, 8), 각각 자기가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것이다. 이런 전통을 물려받아 중세에 열두 사도를 그린 그림에는 그들의 고유한 신분과 개성을 밝히는 글 띠가 한 구절씩 붙여져 있다. 그리고 오늘날 미사 시간 중에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참 믿음을 다지며 바치는 '사도 신경' 도 모두 열두 가지의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바로 열두 사도의 고유한 상징들이란 견해도 있다. 시대를 관통해서 흐르는 '열두사도' 의 의미를 잘 보여 주는 예라 하겠다. (⇦ 십이 사도 ; → 마태오 ; 바르톨로메오 ; 베드로 ; 사도 ; 시몬 ;안드레아 ; 야고보 ; 요한 ; 유다 ; 토마스 ; 필립보)
※ 참고문헌  정양모 역주,《마르코 복음서》, 200주년 기념 성서, 분도출판사, 1983/ 정양모, 《마태오 복음 이야기》, 성서와 함께, 1999/ 정태현 편역, 《성서 비평 사전》, 성서와 함께, 1993/ G. 로핑크, 정한교 역,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분도출판사, 1985/ 《기독교 대백과 사전》 2, 기독교문사, 1980/ A. Kemmer, 박태식 역,《사도 신경》, 성서와 함께, 1996/ 《TDNT》 21 H.D. Betz, 《ABD》 1, pp.309~311. 〔朴泰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