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하는 열두 갈래의 부족.
[성서 자료들]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했던 지파들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나온다. 그러나 지파의 숫자가 열이거나(신명 33, 6 이하), 열하나인 경우도 있고(1열왕 11, 31-32),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열셋인 때도 있다(창세 46, 5 이하). 그리고 지파의 이름도 각각이어서 지파의 이름들이 겹치거나 빠지는 일도 종종 있다. 즉 이스라엘의 지파에 관해서는 구약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통일성을 찾기 힘들다. 특히 민수기에는 열두 지파의 목록이 일곱 번이나 소개된다(1, 5-15. 20-43 : 2, 3-29 : 7,12-83 : 13, 4-15 : 26, 5-50 : 34, 19-28). 이 중에서 34장의 목록에는 요르단 동쪽에 자리잡았던 르우벤과 가드지파가 빠져 있다. 그러나 나머지 다른 목록에는 열두 지파가 다 나온다. 그런데 민수기에는 레위 지파의 이름이 한결같이 빠져 있다. 이는 민수기가 땅의 분할과 관련되어 있는데, 레위 지파는 땅을 상속받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목록의 첫머리에는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이 자리잡기도 하고, 사제계 문헌에서 중요시되는 유다지파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목록마다 지파의 이름 순서가 다르다. 이는 목록의 앞뒤 문맥에 따라 저자가 의도적으로 바꾼 것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지파 전통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신명기(33, 1-29)에서는 시므온의 이름이 빠지고 대신 레위의 이름이 들어간다. 아마도 이 문헌이 작성될 시기에 시므온 지파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열두 지파에 대해 그런대로 정착된 자료로 꼽을 수 있는 본문들(창세 35, 23-26 : 49장 : 민수 1, 5-16 ; 26장 : 신명 33장 : 여호 13-19장 : 역대기 자료)을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이 각 지파의 명칭과 일치한다. 즉 르우벤 ·시므온 · 레위 · 유다 · 즈불룬 · 이싸갈(레아의 아들들) ·단 · 납달리(빌하의 아들들) · 가드 · 아셀(질바의 아들들) ·요셉 · 벤야민(라헬의 아들들) 등이다.
[열두 지파의 역사] 학자들은 열두 지파의 기원을 이스라엘의 지파 동맹에서 찾는다. 고대 지중해권 세계에서는 부족간에, 혹은 도시간에 맺는 동맹이 널리 이루어졌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 사이에는 맹주를 중심으로 하는 아테네 동맹, 펠로폰네소스 동맹, 고린토 동맹 등이 있었고, 에트루리아 · 수메르 등지에도 동맹 형태가 있었다. 동맹이 이루어지게 된 이유는 다양했다. 우선 적의 위협을 받을 때 군사적으로 공동 방위를 할 수 있었고, 정치적 · 경제적인 효율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열두 지파와 관련된 동맹은 각 지파의 영토 점유를 전제로 하는, 말하자면 지역 분할 통치 동맹이 그기본 개념이 된다.
열두 지파의 모태가 된 지파 동맹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것은 노트(M. Noth, 1902~1968)의 주장이다. 그는 레아 집단의 여섯 부족(레아의 여섯 아들)이 처음 가나안에 정착하여 최초의 지파 동맹을 형성하였고, 벤야민 지파-요셉 지파-나머지 지파 순(順)으로 가나안에 들어와 결국 열두 지파 동맹이 생겼다고 한다. 물론 노트의 견해는 다각도에서 비난을 받았지만, 지파 동맹에 대한 선구적인 가설로 존중을 받고 있다. 아무튼 정복설이든, 유입설이든 일단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약기원전 1250~1200) 부족간에 설정된 경계선 목록(여호 13-19장)에서 열두 지파의 기준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경계선 목록은 판관 시대(기원전 1200~1030)의 팔레스타인 토지 점유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때, 열두 지파의 실제적인 기원이 야곱의 열두 아들이라는 도식과는 무관함을 알 수 있다. 다윗(기원전 1010~970)이 등장하여 팔레스타인에 통일 왕국이 성립되자 자연스럽게 '열두 지파' 라는 의식에서 점차적으로 '이스라엘' 이라는 민족 의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즉 지파란 왕정 시대 이전의 이스라엘 상황을 보여 주는 좌표라 하겠다.
[개별 지파] '12' 라는 숫자는 비단 이스라엘에만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고대 지중해 문화권에서 널리 선호되던 숫자였다. 우선 바빌론에서 유래되어 이집트를 거쳐 로마 제국에까지 유입된 12달[月]의 구분이 있고, 로마의 12신 체계, 수메르인들의 12진법 등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열두 지파' 라는 구분도 고대 지중해권 지역의 문화적인 영향을 알려 주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흔히 '12' 를 완전함과 완성을 상징하는 숫자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이 숫자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지파들의 실제적인 숫자가 늘어나거나 줄어들었을 때, 억지로라도 12라는 숫자에 맞추려 하였다. 예를 들자면 레위지파가 사라졌을 때, 12라는 숫자를 채우기 위해 요셉지파를 에브라임 지파와 므나쎄 지파로 나누어 계산했을 정도이다(창세 48장).
르우벤 : 드보라의 노래에서는 르우벤이 비난받고(판관 5, 15-16), 모세의 축복에서는 소멸해 가는 지파로 묘사된다(신명 33, 6). 이 지파의 거주지는 요르단 강의 남동부였다(여호 13, 15-23).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였기에, 이 지파가 한때 강한 세력을 가졌으리라는 추측만 가능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지파이고, 일찍 몰락하였다.
시므온 : 시므온 지파는 유다 남쪽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여호 19, 1-9). 그러나 그 지명들이 유다의 몫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여호 15, 26-32. 42), 실은 유다 지파에 흡수된 것 같다. 르우벤 지파처럼 일찍 몰락하였다.
레위 : 야곱의 유언(창세 49, 5-7)과 여호수아서(21장)에 보면 이 지파는 세력이 약했던 것 같다. 레위 지파는 사제 일을 맡아보도록 구별되었는데(민수 3-4장 : 18장 ; 신명 12, 12), 후에 모든 제사가 예루살렘으로 집중되자 예루살렘 제사장을 거드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음악가 · 문지기 · 성전지기로 일하였고(1역대 25-26장), 종교 교육을 맡아서 할 의무도 있었다(느헤 8, 7-8).
유다 : 팔레스타인의 남부에 정착한 지파로 다윗 왕을 배출하였다. 다윗 왕조가 들어서자 유다 지파는 크게 부각되어 북쪽 지파들과 따로 조약을 맺어 세력을 강화시켰고(2사무 2, 4 : 5, 3 : 19, 42-44), 솔로몬은 부역과 왕국의 양식 공급 의무에서 유다 지파를 제외시켰다(1열왕4, 7-20). 솔로몬의 사망 후에 유다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자, 유다 지파는 벤야민 · 시므온 지파의 땅을 규합해 '남부 유다 왕국' 을 탄생시켰다. 유다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틀어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 지파였다.
즈불룬 : 즈불룬 지파의 거주지는 해변가였다(오늘날의 하이파 지역 : 여호 19, 10-16). 이스라엘 민족은 원래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항해를 하는 데는 부적합했는데, 즈불론 지파는 예외적이었던 것 같다.
이싸갈 : 이 지파는 예전에 산악 내륙에 살았으나(판관 10, 11), 점차 내륙 평지로 이동하였던 것 같다(여호 19, 17-23).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섞여 살았는데, 가나안인들의 지배를 받아 정치적인 독립성을 잃고 말았다. 드보라의 노래에 보면 이싸갈 지파에 대한 찬미가 등장한 다(판관 5, 15).
단 : 단 지파는 처음에는 서쪽에 자리를 잡았지만 판관 시대에 팔레스타인 북부까지 진출하였다(여호 19, 40-48 : 판관 18장). 단 지파의 한 씨족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굴복한 적이 있었는데, 이 씨족에서 나온 판관이 삼손이다(판관 13-16장). 이스라엘 영토의 범위를 정할 때 흔히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판관 20, 1)이라고 한 점을 보아 이스라엘의 최북단 성읍이 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로보암 1세 때 단은 벧엘과 함께 국가 성소로 승격되었다(1열왕 12, 29-30 : 판관 18, 30).
납달리, 가드, 아셀 : 이 세 지파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아셀은 서부 갈릴래아의 기름진 땅에 살면서 풍부한 소출을 내는 지파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왕궁에 좋은 음식을 공급하였다(여호 19, 24-31 ; 1열왕 5,7). 가드는 야뽁 강 남부의 동부 요르단 지역에 거주하였으며(여호 13, 24-28), 동쪽에서 약탈을 일삼던 베두인의 공격을 막아냈다. 납달리 지파의 거주지는 갈릴래아 호수의 서쪽이었다(여호 19, 32-39).
요셉 : 요셉 지파는 팔레스타인의 중심부인 에브라임 산지에 거주하였다. 가나안 정복에 큰 역할을 담당했고, 하느님의 큰 축복을 받은 지파이다(창세 49, 22-26). 그들은 판관 시대, 왕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지파였다. 요셉 지파는 에브라임 지파와 므나쎄 지파로 나누어진다(여호 16-17장 : 창세 48장. 판관 5, 14에는 므나쎄 자리에 마길이 나옴)
벤야민 : 팔레스타인 북부에 정착한 지파로 그 과정이 여호수아서 8-10장에 묘사되어 있다(여호 18, 11-28 : 판관 20, 25) . 이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이 나왔다(1사무 9-10장). 벤야민 지역은 솔로몬이 죽자, 남 · 북 왕국의 분쟁 지역이 되었다(1열왕 12, 21). 바빌론 유배 생활을 마친 후 유대인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가드 ; 납달리 ; 르우벤 ; 베냐민 ; 벤자민 ; 시므온; 십이 지파 ; 즈불룬 ; → 단 ; 레위 ; 요셉, 구약의)
※ 참고문헌 G. von Rad,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 역, 《창세기》, 국제 성서 주석, 한국신학연구소, 1993/ G. 포러, 방석종 역, 《이스라엘의 역사》, 성광문화사, 1986/ H. Ringgren, 김성애 역, 《이스라엘의 종교사》, 성바오로출판사, 1990/ J. Bright, 김윤주 역, 《이스라엘의 역사》 상권, 분도출판사, 1978/ 《성서 백과 대사전》 2 · 5, 성서교재간행사, 1980/ 《성경 전서》, 독일성서공회 해설판, 대한성서공회, 1997/M. Noth, Geschichte Israels, Gottingen, 1950/ 《TDNT》 2. 〔朴泰植〕
열두 지파
支派
〔라〕duodecim tribus · 〔영〕twelve tribes
글자 크기
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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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로 변화된 생명의 물이 열두 지파로 흘러 나가는 모습을 그린 회당 벽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