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涅槃

〔산〕nirvāṇ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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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쌍림열반도.

쌍림열반도.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를 일컫는 말.
[어원 · 어의] 열반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를 음역한 말로서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이상의 경지를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수행을 통해 도달한 궁극적 경지를 해탈(解脫, vimoksa, vimikti) 또는 열반이라고 부르는데, 해탈은 결박이나 장애로부터 벗어난 해방이나 자유를 의미하며, 열반은 '불어서 끄다' [吹滅]는 뜻에서 전의(轉義)되어 타오르는 번뇌의 뜨거운 불길이 꺼진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의미한다. 니르바나를 음역하여 한자로 표기할 때는 주로 열반이라고 하였지만 종종 니원(泥洹)이라고도 하며, 완전함과 영원함을 강조하여 반열반(般涅槃, parinirvana)이라고도 한다. 의역을 할 경우는 주로 적멸(寂滅) · 멸도(滅度)라고 하며, 혹은 간단하게 적(寂) 또는 멸(滅)이라고도 한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열반이란 탐욕이 영원히 사라지고 성냄(瞋恚)이 영원히 사라지고 어리석음[痴暗]이 영원히 사라진 경지이니, 즉 일체의 모든 번뇌가 영원히 사라진 경지를 열반이라고 한다" 고 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열반은 사라짐[滅] · 사라져 고요함[寂滅] · 속박을 떠남[離繫] · 벗어남[解脫] · 완벽한 고요함[圓寂]의 뜻이 된다. 따라서 열반은 태어남과 죽음까지 포함하는 모든 번뇌를 극복하고 궁극적인 깨달음의 지혜(覺,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일컫는 말로 정의될 수 있다.
[열반의 체득]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실천은 계정혜 (戒定慧)의 세 가지 수행(三學)이다. 열반 역시 계율을 지키고, 선정(禪定)을 닦으며, 지혜를 터득함으로써 성취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열반은 어리석음을 타파하는 지혜를 터득함으로써 성취되는데, 어리석음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자아에 집착하고 위하는 집착심과 이기심을 가리킨다. 불교는 실체적 자아를 부정하는 무아설(無我說)을 기본 교리로 믿는다. 존재하지도 않는 자아에 집착하고 그것을 위하려고 함으로써 끝없이 윤회하는 괴로움을 스스로 초래한다. 그러므로 자존하거나 독존하거나 항존하는 실체적 자아는 없으며, 따라서 그러한 자아를 향한 집착심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죽음까지 포함하는 일체의 속박과 괴로움에서 벗어난 해탈, 즉 열반의 경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열반은 깨달음이라는 바람으로 고통의불길을 꺼버리는 수행, 즉 깨달음으로 도달하는 경지이다. 이러한 열반의 경지는 지혜를 터득한 자만이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초월적 경지이기 때문에 언어나 이론으로는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으며 오로지 체험으로만 성취할 수 있다. 열반의 체험을 위한 길은 쾌락의 길도 아니고 고행의 길도 아닌 제3의 길, 즉 중도(中道)인 깨달음의 길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계율을 지키고 그런 다음 선정을 닦고 드디어 지혜를 터득함으로써 체험하는 단계적 의미가 강했으나, 대승 불교 시대에 이르면 열반을 체득하기 위한 실천 방법은 주로 깨달음에만 집중되었다.
[열반의 분류] 열반의 경지는 이론으로는 알 수 없고 오로지 체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학파에 따라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었다. 또한 인도에서는불교 이외의 종교나 사상에서도 열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른 개념이다. 열반은 유여(有餘) 열반과 무여(無餘) 열반으로 구분하는데 소승 불교와 대승 불교의 주장이 다르다. 소승 불교에서는 번뇌와 육신이 사라지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둘을 구분한다. 번뇌는 극복되었지만 육신은 아직 남아 있는 상태를 유여 열반이라 하고, 번뇌가 극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육신마저도 사라진 상태, 즉 회신멸지(灰身滅智)의 상태를 무여 열반이라고 한다. 유여란 의존할 대상으로서 육신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고, 무여란 완전한 열반(parinirvana)으로 인간으로서 의지하고 있던 육신마저 벗어나 모든 형체와 현상을 떠난 진리 그 자체인 법신불(法身佛)의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후대에는 고승들의 단순한 육체적 죽음을 과장해서 열반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열반에 든다는 뜻의 입적(入寂)이라고 하기도 한다.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는 열반을 독자적 실체성을 갖는 어떤 물(物)로 보았고, 경량부(經量部)는 열반이란 단지 번뇌가 극복된 상태를 가리키는 명칭일 뿐 어떤 실체적 물(物)이 아님을 강조한다. 대승 불교에서는 무엇이 없어졌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소극적 기준이 아니라, 무엇이 갖추어졌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적극적 기준으로 이를 구분하여, 상 · 낙 · 아 · 정(常樂我淨)의 네 가지 덕성이 갖추어졌으면 무여 열반이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유여 열반이라고 한다. 열반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모든 변화를 초월하여 영원히 계속된다는 뜻에서 상(常)이라 하고, 죽음까지 포함하는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또한 고통의 상대적 의미인 쾌락마저 사라져 진정한 행복만이 있다는 뜻에서 낙(樂)이라 하며, 망아(妄我)를 벗어나 진정한 자아[眞我]에 도달함으로써 여덟가지 위대한 자재(自在)함(열반경, 23)을 갖추고 있다는 뜻에서 아(我)라 하고, 혼탁함[染汚]에 뒤덮인 생사 윤회의 세상을 벗어난 맑고 깨끗한 경지라는 뜻에서 정(淨)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승 불교에서 말하는 무여 열반이란 영원 · 행복 · 자유 · 청정의 4덕이 갖추어져 있는 최상의 경지이다. 대승 불교는 소승의 불자들이 체험하는 열반에는 몇 가지 미비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첫 번째가 번뇌여(煩惱餘)라고 하는데, 이는 삼계(三界) 안의 진리에 관한 미혹은 없지만 삼계 밖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 미혹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업여(業餘)라고 하는데 삼계 안에서의 미혹된 행동은 없지만 삼계 밖에서의 미혹된 행동은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뜻이며, 세 번째는 삼계 안에서 육신으로 받는 윤회는 벗어났지만 삼계 밖에서 겪는 영적인 차원의 윤회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천태종(天台宗)에서는 3종 열반설을 발전시켰는데, 첫째 성정(性情) 열반이란 우주와 인간의 모든 사물과 현상의 참모습은 본래 불생불멸이어서 처음부터 물듦도없었고 또한 깨끗하게 할 수도 없다는 점, 즉 열반이란 본래적이고 생래적인 것임을 가리킨다. 둘째 원정(圓淨) 열반은 본래적열반이 아니라 번뇌를 극복함으로써 증득한 열반을 말하며, 셋째 방편정(方便淨) 열반은 지혜로써 진리를 깨달은 뒤에 그에 머물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는 자비를 실천한 다음 인연이 다하면 다시 열반에 드는경우를 말한다. 이 천태종의 3종 열반설은 열반을 체(體) · 상(相) · 용(用)의 이론에 맞추어 전개한 것이다. 또한 유식종(唯識宗)에서는 4종 열반설을 발전시켰다. 즉 본래자성청정(本來自性清淨) 열반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성품이 본래 생멸이 없고 청정하여 다름아닌 절대적 진리 그 자체(眞如)라는 차원을 가리킨다. 유여의 열반(有餘依涅槃)은 번뇌를 극복하여 나타나는 열반의 경지인데 이 경지에서는 아직 육신이 남아 있다. 무여의 열반(無餘依涅槃)은 유여의 열반에서 한 단계 더 진보한 것으로서 번뇌는 물론 이제 육신마저도 소멸해 버렸을 때 체험하는 열반이다. 무주처 열반(無住處涅槃)은 존재하지도 않는 자아에 집착하고 그것을 위하려고 함으로써 겪는 끝없는 괴로움의 장애(煩惱障)를 끊었을 뿐만 아니라, 자존 · 독존 · 항존하는 실체적 자아가 없어 자아를 향한 집착심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괴로워할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는 했지만 도리어 그러한 깨달음에 집착(法執)하는 소지장(所知障)마저 극복함으로써, 생사와 열반의 차별마저 초월하여 열반의 법열(法悅)에만 머무르지 않고 온 세상 중생들의 구제에 자신을 헌신하는 자비의 실천으로 투신하는 경지를 가리킨다. 이 무주처 열반은 소승의 불자들이 열반의 적정(寂靜)한경지로만 이해함으로써 소극적 삶에 머물러 정체되는 것을 경계하고, '생사가 바로 열반이요, 번뇌가 바로 부처'(生死即涅槃, 煩惱即菩提)라는 대승적 깨달음에 입각하여 자비의 활동으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대승의 열반관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 준다. 한국에서 이러한 무주처 열반에 대한 이론을 가장 정연하게 정립한 이가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이다. 그는 《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라는 책에서 열반에 대한 모든 이설(異說)들을 총정리하고 대승적 입장에서 자신의 독창적인이론을 전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열반의 의미] 열반의 경지는 앎의 대상도 아니고 믿음의 대상도 아니므로, 오로지 스스로 체험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열반을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열반을 논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체험한 사람들의 고백과 기록을 논하는 것이다. 열반을 체험한 이들의 고백에 의하면, 열반은 상 · 낙 · 아 · 정의 4가지 미덕이 있고, 또 열반의 경지에는 팔미(八味)라 하는 여덟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열반에는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지 않고 계속되는 영원함이 있다는 상주(常住), 둘째 미혹의 번뇌에도 동요되지 않는 고요함이 있다는 적멸(寂滅), 셋째 영원히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한다는 불로(不老), 넷째 결코 죽음이 없다는 불사(不死), 다섯째 어떠한 번뇌에도 물들지 않고 맑고 깨끗함을 유지한다는 청정(淸淨), 여섯째 어떠한 장애에도 가로막히지 않고 자유롭다는 허통(虛通), 일곱째 어떠한 동요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있다는 부동(不動)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제나 행복감으로 가득하다는 쾌락 등이 그것이다. 열반의 이 모든 뜻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람이 불어 끄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깨달음의 바람이 불어 끄는 데서 생겨 나오는 미덕이다. (→ 구원, 종교학에서의 ; 해탈)

※ 참고문헌  E. Conze, Buddhism : It's essence and development, Harper and Row, New York, 1992/ M. Eliade ed.,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Macmillai Publishing Company, New York, 1987/ E. Lamotte, trans. by Sara Webb-Boin, History of Indian Buddhism,1988/ H.C. Warren, Buddhism in Translation, Atheneun, New York, 1984/ P.J. Kalupahana, Buddhist Philosophy ; a historical analysis, Univ. Press ofHawaii, 1976/ 中 村元, 鄭太爀 역, 《原始佛教》 東文選, 1993/ Walpola S. Rahula, 진철승역, 《붓다의 가르침》, 대원정사, 1988. 〔尹泳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