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11~12번째 책. 왕국의 기틀이 잡힌 솔로몬 임금 시절부터 유다의 마지막 임금 여호야긴의 바빌론 유배살이까지 400여 년 정도의 왕정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룬다.
히브리어 성서의 분류로 보면 열왕기는 여호수아서 · 판관기 · 사무엘서와 더불어 전기 예언서에 속하지만, 칠십인역의 분류를 따르는 가톨릭 성서의 분류에 의하면 역사서에 속한다. 그런데 대다수 구약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열왕기가 속해 있는 역사서는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신명기의 종교적 이념에 바탕을 두고 쓰였다 해서 '신명기계 역사서' 라고 불린다. 따라서 열왕기의 내용, 표현, 용어는 신명기에 자주 나오는 것들이다.
[명 칭] 히브리어 성서와 우리말에서 열왕기라고 부르는 이 책은 사무엘서처럼 본래 하나로 취급되었으나, 칠십인역 성서에서 둘로 나누어진다. 기원전 3세기경에 그리스어 번역자들은 사무엘서에 이어 열왕기도 둘로 나누고 거기에 '왕국기' 라는 이름을 붙여 사무엘 상 · 하는 '제1 왕국기' 와 '제2 왕국기' , 열왕기 상 · 하는 '제3 왕국기' 와 '제4 왕국기' 라 하였다. 대중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도 이 구분을 받아들였다. 1516/1517년 첫 번째 랍비 성서가 출간될 때 처음으로 히브리어 성서에도 이 구분이 적용되었고, 1524/1525년에 두 번째 랍비 성서에도 적용된 이래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칠십인역에 따른 이 구분은 내용상으로 볼 때 합리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본래 하나로 묶여 있어야 할 아하지야의 통치(1열왕 22, 52-54 : 2열왕 1장)와 엘리야 이야기(1열왕17-19 : 21장 ; 2열왕 1-2장)를 갈라놓기 때문이다.
[내 용] 열왕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다윗의 통치 말년과 솔로몬의 통치(1열왕 1-11장), 둘째 부분은 남북 왕국의 분열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까지(1열왕 12장-2열왕 17장), 셋째 부분은 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에서 유다 왕국의 마지막까지(2열왕 18-25장)이다. 그리고 둘째 부분과 셋째 부분에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가 끼여들어 있다.
제1부(1열왕 1-11장) : 1-2장은 다윗의 말년과 솔로몬이 어떻게 왕위에 오르는지를 다룬다. 그래서 이 대목을 사무엘서의 왕위 계승 사화에 연결된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리하여 솔로몬의 손 안에서 왕권이 튼튼해졌다"는 2장 46절의 마지막 말이 이 사화의 결론이다. 3장에는 솔로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그는 자신을 겸손되이 낮추고 하느님께 그분의 백성을 올바로 다스리기 위한 분별력을 청하여 그분으로부터 지혜와 분별력뿐 아니라 명예와 재산까지도 얻었다. 4-10장은 솔로몬의 정치적 성공담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성공은 종교적 실패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것이어서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11장에서 저자는 솔로몬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 그는 다윗의 길에서 벗어나 우상 숭배를 끌어들임으로써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제2부(1열왕 12장-2열왕 17장) : 12장은 솔로몬이 죽고 난 직후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이 어떻게 갈라졌는지를 다룬다. 분열의 씨앗은 이미 솔로몬 통치 때에 뿌려졌지만, 실제로 분열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과 그에게서 북쪽 열 지파를 떼어낸 여로보암이다. 여로보암은 단과 베델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남쪽과의 정치적 단절에 이어 종교적 단절까지 조장하였다. 열왕기 저자는 금송아지를 세움으로써 바알 숭배와 야훼 신앙을 혼합한 '여로보암의 죄' 또는 '여로보암의 길 을 적어도 스무 번 이상 단죄하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그의 죄와 그의 후계자들의 잘못을 단죄한다(1열왕 15, 26-2열왕 17, 23).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은 이 여로보암의 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제2부에서 북쪽의 임금들은 모두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여로보암이 불충한 북왕국 임금들의 표본이라면, 다윗은 남왕국의 충실한 임금들의 표본이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야 사건 말고는, 주님의 눈에 올바른 일만 하였으며,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기"(1열왕 15, 5) 때문이다. 북쪽의 임금들과는 달리 남쪽 다윗 왕조의 임금들 중에는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임금들이 적지 않다. 적어도 네 임금, 곧 아사와 여호사밧과 히즈키야와 요시아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1열왕 17-19장 ; 21장 ; 2열왕 1-9장) : 엘리야와 엘리사 대목은 남북 임금들에 대한 기록의 정상적인 흐름을 방해한다. 두 이야기는 왕정 시대에 임금과 예언자 사이의 실제 관계가 어떠했으며 또 그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 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예언자의 소명과 관련된 소중한 언급을 담고 있다. 엘리야 예언자(1열왕 17-19 ; 21장 : 2열왕 1-2장)는 북왕국의 임금 아합과 그의 아들 아하지야 치세 동안에 활약하였던 예언자이다.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1열왕 19장 : 2열왕 2장 : 4-9장)는 하느님이 호렙 산에서 엘리야를 위로하러 나타났을 때, 엘리야의 후계자로 점지해 준 예언자이다. 그는 스승의 행적을 많이 따랐는데, 특히 기적을 일으킨 행적에서 스승을 많이 닮았다. 그러면서도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와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요람 · 예후 · 여호사밧 · 여호아스의 치세 때에 활약한 예언자인데, 종교적 개혁에 몰두한 즈승 엘리야보다는 정치 · 군사적 상황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외정과 내정에 매우 깊이 관여하였다.
제3부(2열왕 18-25장) : 홀로 남은 유다 왕국에 관한 역사는 히즈키야부터 시작된다. 이 시기의 임금 여덟 명 가운데 올바른 임금은 히즈키야와 요시아뿐이다. 그래서 열왕기 저자는 이 두 임금을 중요하게 여겨 그들의 치세를 보고하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18-20장에서는 아시리아의 침범을 이사야 예언자의 도움을 받아 슬기롭게 막아낸 히즈키야의 통치를 다루고, 22-23장에서는 성전에서 발견한 법전에 따라 종교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룬 요시아의 통치를 다룬다. 제3부의 나머지 장, 곧 21장과 24-25장에서는 유다 왕국의 혼란스런 정치 상황과 바빌로니아 침공을 다룬다.
[사 료] 열왕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19세기 이래 구약학자들은 여호수아서 · 판관기 · 사무엘서 · 열왕기가 본래 역사 문헌으로 한데 묶여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세우며(여기에 신명기도 포함될 수 있다), 이 문헌의 이름을 '신명기계 역사서' 라고 불렀다. 열왕기에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책의 구성 요소들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질 뿐 아니라,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이미 본문 안에서 열왕기 저자 자신이 이전의 기록을 이용하였으며, 자기가 의존한 사료를 인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다른 한편 이 작품이 한 번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완성되었음을 시사한다. 본문 안에서 적어도 세 가지 사료를 확인할 수 있다. "솔로몬의 실록" (1열왕 11, 41)과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 19: 15, 31 : 16, 5. 14 등)과 "유다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 29 ; 15, 7. 23 : 22, 45 등)이 그것이다. 이 사료들은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본문을 편집할 때 출발점이 되었던 문헌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료들은 열왕기 저자가 이용한 사료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다른 사료들도 많이 이용하였는데, 예를 들어 성전 문서고에 있던 자료도 알고 있었다(1열왕 4, 1-6. 7-19 : 5, 7-8 참조). 또 다른 대목에 나오는 일부 교훈들은 이미 문헌으로 정리되었거나, 아니면 그 정확한 성격을 규정하기가 어렵지만 구전 전승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세바 여왕의 이야기는(1열왕 10,1-13) 또 다른 사료에 속한다. 아합 임금과 관련된 일화들은 한편에서는 그를 맹렬히 비판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를 용감한 임금으로 묘사하는(1열왕 22, 9. 35) 것으로 보아 전혀 다른 관점의 두 사료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다.요시아 임금에 관하여 우리에게 전해진 기록(2열왕 22, 1-23, 30)은 부분적으로 공식 연대기가 아닌 다른 사료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임금들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어떤 대목들은 예언자들의 행적을 함께 다룬다. 이런 대목들은 예언자들의 제자들이 전해 준 자료에서 나왔을 것이다. 예언자들의 일화들이 임금들에 관한 이야기에 함께 나오는 이유는 그 둘이 같은 시대에 속해 있으면서 깊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곧 예언자들은 임금들 앞에서 조언과 중개 역할을 맡아 하였기 때문이다. 엘리야와 엘리사와 이사야 예언자의 이야기들이 두드러진다. 열왕기 안에는 이 밖에도 아히야나 이믈라의 아들 미가, 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언자들에 관한 짧은 일화들이 있는데(1열왕 13장; 2열왕 21, 10-15), 모두 사료에 바탕을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료들의 저자나 출처는 정확히 밝힐 수 없다.
[편 집] 서로 다른 이 사료들이 어떻게 하나로 모아져 오늘 우리가 보는 책으로 편집되었는가? 그리고 편집자는 한 사람 또는 집단인가? 아니면 여러 시대의 여러 집단인가? 필자는 열왕기에 일관된 주제와 정식이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동일한 인물(들)이 이 책을 편집하였다고 믿는다. 아래에 제시될 신명기계 역사관의 주제들은 열왕기 전체를 통제하고 지배한다. 또한 남북 임금들의 통치를 요약하는 정식도 일관성 있다. 보통으로 이 정식은 다른 왕국의 임금과 병행으로 시작된다. "유다 임금 아사 제이년에"(1열왕 15, 25) 또는 "이스라엘 임금 여로보암 제이십칠년에"( 15, 1)가 좋은 예들이다. 이 병행에 이어 통치 기간, 통치 장소, 통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나온다. 유다 임금들의 경우 왕위에 오른 나이와 어머니 이름도 덧붙여진다. 임금의 통치를 마감하는 정식도 일관성 있다. 이 정식에는 사료, 죽음과 장례, 후계자가 공통 요소로 등장한다. "르호보암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는 늘 전쟁이 있었다. 르호보암은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성에 조상들과 함께 묻혔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나아마인데 암몬 여자였다. 그의 아들 아비얌이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1열왕 14, 29-31).
열왕기의 편집은 언제 이루어졌을까? 열왕기의 편집을 유배 이전으로 앞당겨 잡는 주석가들이 있다. 그들은 "오늘날까지”(1열왕 8, 8 : 9, 20-21 ; 12, 19 ; 2열왕 8, 22)라는 표현을 증거로 제시한다. 이 표현은 예루살렘 성전과 유다 왕국의 실재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저자가 사료에 이미 나와 있는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반면에 북쪽 왕국이나 남쪽 왕국의 몰락이 주님께 대한 반역에 기인하고 있음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점으로 미루어, 이 책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에 편집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더구나 열왕기의 마지막(2열왕 25, 27-30)에 보면 여호야긴이 바빌론 임금 에월-므로닥에게서 은전을 입었다는 언급이 있다. 에월-므로닥은 기원전 561 560년에 바빌로니아를 다스렸다. 따라서 이 부분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쓰여졌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 기록을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종합하면 열왕기 편집은 바빌론 유배 기간 중인 기원전 550년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리고 열왕기 마지막 네 구절을 후대의 첨가로 보는 견해를 받아들이면 이 부분은 기원전 560년 이후에 작성되었고, 나머지 부분의 편집은 유배가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열왕기의 편집자는 누구일까? 어떤 이들은 바빌론 유배 때에 유다에 남아 있던 사람으로 추정하고, 다른 이들은 열왕기 저자를 예레미야 예언자로 보는 탈무드의 영향을 받아 예레미야나 예레미야의 제자로 추정한다. 그러나 신명기계 역사의 다른 책들을 편집한 인물이 이 책도 최종 편집한 것으로 생각하면 무난할 것이다.
[임금 이름과 연대] 열왕기에 나오는 임금들의 이름과 통치 연대는 매우 혼란스럽다. 이름이 같은 임금(아하지야)이 남북 양편에 나오기도 하고,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이름(아하지야/우찌야, 요람/여호람)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통치 연대의 경우, 이집트 문헌들, 아시리아-바빌론 임금들의 역대기와 그 관련 문헌들은 열왕기의 몇몇 사건들에 관하여 매우 정확한 정보를 알려 준다. 이런 몇몇 경우를 빼놓고는 열왕기 연대를 정확하게 정립하기가 어렵다. 우선 유다 임금들의 통치 연대를 보면 언제나 이스라엘 임금들의 통치 연대와 함께 언급된다. 이스라엘 임금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서로 모순되는 연대체계를 끌어들이는 원인이 된다. 그 다음 필경사들의 오류를 들 수 있는데, 그들은 본래의 문헌에 나오는 숫자를 뒤바꿔 놓거나 다른 숫자와 혼동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솔로몬(1열왕 1장)과 요담(2열왕 15, 5)의 통치에서 볼 수 있듯이, 세자들이 선왕과 함께 나라를 통치하게 되는 경우 임금들의 통치 연대를 나누어 배치하는 데 정확성을 기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예는 솔로몬과 요담의 통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연대 측정에 어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은 열왕기 안에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연대 체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다양한 연대 체계는 저마다 다른 사료들에서 나왔다. 따라서 이 책을 대하는 사람들은 연대를 측정하는 데에 세 가지 서로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유다의 통치에 근거한 연대, 둘째는 이스라엘 통치에 근거한 연대, 셋째는 둘을 조화시켜 얻은 연대이다. 예를 들어 왕국 분열에서 아합 통치의 끝에 이르는 기간(933~853)을 우리는 80년으로 보는데, 유다의 연대로는 84년, 북왕국 연대로는 78년, 그리고 둘을 조화시켜 얻은 연대는 75년이다.
다음에 제시하는 연대표는 프랑스 공동 번역(TOB)과 《구약성서 새 번역》을 참조한 필자의 《성서 입문》 뒤쪽에 실린 연대표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에 보면 통일 왕국의 임금은 사울 · 유다 · 솔로몬 3명이고, 분열된 왕국의 임금들은 이스라엘이 19명, 유다가 12명이며, 홀로 남은 유다 왕국의 임금들은 8명이다. 이들 34명이 왕정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렸는데, 그 가운데 하느님께 충실한 임금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신학 사상] 열왕기는 판관 시대 이후부터 바빌론 유배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과 그 임금들의 역사에 관한 신학적 반성이다. 열왕기에 나오는 왕정 시대의 역사는 특별한 역사관에 따라 기술되었다는 점에서 일반 세속의 역사와 다르다. 임금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정치적 성공이 아니라 야훼 신앙에 대한 충성도이다. 예를 들어 열왕기 저자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임금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우상 숭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오므리 임금의 통치는 매우 간략하게 다룬다(1열왕 16, 23-26). 반면, 정치적으로는 성공을 못하고 자신도 이집트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요시아의 통치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룬다. 가장 일반적인 견해에 따라, 열왕기에 소개된 역사를 통제하는 편집 사상은 신명기계 신학과 이 신학과 연결된 예언자들의 신학이다. 이 신학이 이스라엘 역사와 연결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열왕기의 중요한 주제 몇 가지만 아래에 소개한다.
왕정 제도 : 열왕기는 신명기계 저자와 예언 신학이 품고 있는 왕정 신학을 그대로 반영한다. 참다운 임금은 주님의 규정을 지키는 인물이다. 그는 주님의 길을 걸으며 모세의 율법에 쓰여진 대로 그분의 법과 계명과 관습과 명령을 따른다(1열왕 2, 3). 임금에게 맡겨진 임무는 백성이 하느님께 속하여 있기 때문에(1열왕 3, 8-9 참조), 그 백성을 지혜와 정의로 다스리고, 동시에 백성을 '섬기는' (1열왕 12, 7) 것이다. 주님께 충성을 다하고, 예루살렘에서 그분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데 전념하는 일은 임금에게 부여된 의무이다. 열왕기 저자는 이런 의무와 관련하여 모든 임금의 통치마다 짧은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불행히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임금들은 남북을 통틀어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엄격한 비판을 받는다. 열왕기 저자는 잘못된 길을 따르는 임금들에 관하여 "주님의 눈에 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비난을 후렴처럼 되풀이한다. 주님에 대한 불충은 우상 숭배와 혼합주의이다. 임금들은 갖가지 가나안의 풍산 신들을 숭배하고, 야훼 신앙과 가나안 종교를 혼합하는 데 앞장섰다. 그들은 거짓 신들에게 신전이나 제단을 세워 바치며, 이방 신들에게 문의하고 온갖 억압과 불의로 백성을 괴롭히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하느님의 동의 없이 전쟁에 임하고 아이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 등으로 야훼 하느님께 반역하였다.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의 멸망은 결국 임금들과 그들에게서 책임을 부여받은 자들이 저지른 우상 숭배와 혼합주의에 대한 정당하고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윗과 그의 왕조 옹호 :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끌어들인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임금들의 맨 앞에 있듯이, 유다 임금들의 맨 앞에는 가끔 하느님의 '종' 이라고 불리는(1열왕 3, 6 : 8, 24 : 11, 13 등), 이 왕조의 창시자 다윗이라는 인물이 자리잡는다. 주님에 대한 다윗의 충성과 열심은 올바른 임금의 본보기가 되어, 그 후계자들의 평가 기준이 된다. 앞에서 밝힌 대로 열왕기 저자에게, 다윗 후계자들의 불순종은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의 분열과(1열왕 11, 9-11) 유다 왕국의 멸망을(2열왕 23, 26 이하 참조) 가져온 직접 원인이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는 다윗 집안이 영원히 존속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다. 이 약속은 다윗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나오지만(2사무 7. 12-16), 다윗 이후의 임금들에게는 조건이 붙는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자손들이 제 길을 따라 내 앞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성실히 걷는다면, 너에게서 이스라엘 왕좌에 오를 사람이 끊기지 아니하리라"(1열왕 2. 4). 주님께서는 "다윗을 보시어 "예루살렘에 "등불을" 하나(다윗 왕조의 왕자) 남겨 두신다. 마침내 열왕기는 한 가닥 희망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다윗 왕조의 마지막 후손은 비록 갈대아에 유배된 몸이라 할지라도, 자기를 둘러싼 상황이 바뀌어 가는 것을 체험한다. 바빌론 임금은 그에게, 죄수복을 벗고 날마다 임금의 식탁에서 음식을 들 수 있는 은혜를 베푼다. 하느님의 이런 약속은 메시아 사상을 낳고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메시아적 해석으로 이어진다.
예루살렘과 성전 : 신명기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받은열왕기는 예루살렘과 성전 안에서 거행되는 예배에 특별한 자리를 부여한다. 무엇보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선택하신 성읍이다(1열왕 8, 12). 그리고 그곳은 성전의 성읍이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민족의 어떠한 생존 환경에서도 하느님과 교류하는 '만남의 장소' 이다(출애 33, 7). 요시아의 종교 개혁도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2열왕 22-23장). 율법 두루마리를 발견한 것도 성전 안에서이다. 성전을 예배의 중심으로 부각시킨 까닭에,사제들은 경신례 안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요시아의 종교 개혁에 따라 제사를 바치는 권한은 오로지 사제들, 곧 레위 지파에 속한 사제들에게만 귀속된다.그래서 그들이 솔로몬의 성전 봉헌 때부터 이미 본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묘사한다(1열왕 8, 1-6). 열왕기 저자는 나중에 아달리야가 다윗 가문의 혈통을 단절시키려 할 때에 다윗 왕조의 존속을 가능하게 한 일도 사제들의 공헌으로 돌린다(2열왕 11장). 저자는 요아스가 주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게 된 것도 여호야다 사제가 그를 잘 지도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2열왕 12, 3). 사실 솔로몬을 도유한 사람도 사제였다(1열왕 1, 39). 예루살렘 중심으로 레위 지파 사제들의 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예배를 철저히 강조하면서, 열왕기 저자는 다른 한편 여로보암의 주도로 단과 베델 같은 다른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예배를 완전히 배척한다. 저자는 '여로보암의 죄' 또는 '여로보암의 길' 을 엄하게 단죄하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여로보암 자신과 그를 따른 후계자들의 잘못을고발한다.
예언자들의 개입 : 예언자들을 통한, 특히 그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한 개입은 열왕기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열왕기 저자는 어떤 임금의 이야기보다도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룬다. 이 두 예언자말고도 열왕기에서 나단 스마야 · 아히야 · 미가야 ·이사야 · 여예언자 훌다가 큰 권위를 지닌 이들로 나타난다. 이들은 남북 임금들의 통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나단은 다윗으로 하여금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도록 만든다(1열왕 1, 11-17). 엘리야는 하자엘을 아람의임금으로, 예후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도유하라는 명령을 받는다(1열왕 19, 15 이하 : 2열왕 9, 1-3 : 8, 11-13) 죽음의 신탁을 전함으로써 임금과 그 가문의 파멸을 선언하는 것도 예언자들의 몫이다. 아히야 예언자와 여로 보암 임금(1열왕 14, 10-11), 엘리야 예언자와 아합 임금의(1열왕 21, 21-24) 경우가 그 좋은 예들이다. 이 밖에 이사야는 바빌론 임금의 승리를 예고한다(2열왕 20, 14-19). 어떤 경우에는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임금의 승리를 알려 주거나(엘리사 : 2열왕 7, 1 : 13, 17-19 ; 이사야 : 2열왕 19장), 군사 행동에 개입하기도 한다(이름 모를 예언자 : 1열왕 20, 13-14 ; 미가야 : 1열왕 22, 19-28 : 엘리사 : 2열왕 3, 9-19 ; 6, 8-7, 20).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열에 얽힌 이야기에서 스마야 예언자는 동족 사이의 전쟁을 막는 자로 나타난다(1열왕 12, 22-24). 마지막으로 엘리야는 아합 임금 앞에서, 임금이 포도 밭 주인 나봇의 조상 대대로 이어 오는 권리를 짓밟았다고 비난한다(1열왕 21,3-17). 이 모든 경우에 예언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면서 그분께 순종할 것을 호소하고, 그분께서 충성하는 이들을 보호하시리라는 약속도 선언한다. 열왕기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율법과 규정을 존중하게 하려는 예언자들의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요시아의 종교 개혁을 유도한 법전이 발견되었을 때, 여예언자 훌다가 한 역할이 그 좋은 예이다(2열왕 22, 14-22). 이처럼 열왕기에 나오는 예언자들은 종교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윤리와 정치 영역에서도 탁월한 자리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이런 영역들이 다 같이 이스라엘의 한분 '임금님'이신 주님께 속하기 때문이다. 결국 열왕기는 유다와 이스라엘 임금들의 통치 역사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왕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운명을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통치 역사이다. → 구약성서 ; 엘리사 ; 엘리야; 역대기)
※ 참고문헌 정태현 역주, 《열왕기 상 · 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정태현, 《성서 입문 상 : 성서의 배경과 이스라엘의 역사》, 일과 놀이 2000/ A.S. Van der Woude ed., The World of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82/ G. Hentschel, 1Konige, 2Konige,Die Neue Echter Bibel, Wiirzburg, Echter Verlag, 1984/ P.R. House, Old Testament Theology, Downers Grove, 1998./ S.W. Holloway, 《ABD》4, pp.69~83 〔丁太鉉〕
열왕기
列王記
〔히〕מלכים · 〔라〕Liber Regum · 〔영〕Book of 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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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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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란에서 발견된 열왕기 단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