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포 본당

鹽浦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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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울산시 북구 양정동 484-1 소재. 1981년 8월 25일 울산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통고의 성모. 관할 구역은 양정동, 염포동, 명촌동, 율동, 효문동 전 지역. [교 세] 1981년 751명, 1985년 1,416명, 1990년 1,944명, 1995년 1,777명,2000년 1,607명. [역대 신부] 초대 최득수(崔得壽) 안드레아(1981. 8~1986. 1), 2대 박태식(朴泰植) 프란치스코(1986. 2~9), 3대 김남수(金南洙) 루가(1986. 9~1987. 1) , 4대 이시찬(李時贊) 다니엘(1987. 1~1990. 1), 5대 김창대(金昌大) 엠마누엘(1990. 2~1991.2), 6대 김윤근(金潤根) 베드로(1991.2~1993.2), 7대 정승환(鄭丞煥) 베드로(1993.2~1994. 2), 8대 황철수(黃哲洙) 바오로(1994. 2~1995. 2), 9대 박성태(朴成泰) 그레고리오(1995. 2~1998. 1), 10대 석판홍(石判洪) 마리오(1998. 2~2000. 2), 11대 도정호(都定浩) 바오로(2000. 2~2001. 2), 12대 박근범(朴根範) 레오(2001.2~현재).
울산만을 접하고 있는 염포 지역은 1967년 말 양정동 700번지에 현대 자동차 울산 공장이 세워지고, 현대 그룹 계열사 공장들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수많은 외지인들이 유입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던 울산(현 복산) 본당은 늘어나는 신자들을 모두 관리하기 어려웠고, 또 1976년에 양정동에 있던 양정 공소가 철거되면서 냉담자도 속출하게 되었다. 이에 울산 본당에서는 염포 지역에 성당을 신설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현재의 위치에 성당 부지를 마련한 뒤, 1980년 11월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성당이 완공될 무렵인 1981년 8월 25일, 교구에서는 염포 본당을 울산 본당에서 분리 ·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최득수 신부를 임명하였다. 최득수 신부는 부임 직후 사목 위원회를 구성하여 본당의 체계를 세워 나갔고, 9월 15일에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또 1982년 12월에 사제관을 신축한 데 이어 이듬해 2월에는 수녀원을개원하여 본당이 갖추어야 할 제반 조건들을 완비했다.
한편 2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태식 신부가 7개월 만에 전임되면서, 울산 본당의 김남수 신부가 주임을 겸임하게 되었다. 이에 심순보(沈淳輔, 스테파노) 보좌 신부(1986. 9~1987. 1)가 본당 일을 주관하였는데, 심순보 신부마저 5개월 만에 전임됨에 따라 염포 본당의 분위기는 점점 침체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시찬 신부는 본당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가정 방문 등 신자들과의 유대를 강화해 나갔고, 1987년 9월에 성모 동굴을, 이듬해 2월에는 협소한 성당을 보완하기 위해 유아실과 회합실을 새로 마련하였다. 또 그 해 4월 종각의 증축 공사를 마치면서 5월에 예수 성심상을 종각 위에 봉안하였고, 8월에는 성령 세미나를 개최하여 신자들의 영적 쇄신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이시찬 신부가 전임되면서 염포 본당은 다시겸임 신부 체제를 맞게 되었다(5대 김창대 신부 : 야음 · 염포 겸임, 6대 김윤근 신부 : 울산 · 염포 겸임, 8대 황철수 신부 : 전하 · 염포 겸임). 이에 본당 업무를 전담하게 된 조규홍(趙圭弘, 루가) 보좌 신부(1990. 3~1991. 2)는 1년의 짧은 기간 동안 지성소를 수리하였고(1990년 9월), 주보상을 안치하였으며(1990년 12월), 본당 신자 및 주일학교 학생들의 신앙 생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2년 간보좌 신부(1991. 2~1993. 2)로 있다가 7대 주임으로 임명된 정승환 신부는 본당의 내실화를 다지기 위해 신자 재교육과 여러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1991년 9월에 주보상의 축복식을 가졌다. 그리고 이듬해 5월에는관할 구역의 변경에 따라 학성동의 20세대 48명을 울산본당으로 전출시켰다.
이어 박성태 신부가 1년 간 보좌 신부(1994. 2~1995. 2)로 있다가 9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는데, 1995~1996년 현대 자동차에 근무하는 신자들이 타지역으로 전근되고,또 본당 관할인 염포 아파트의 재개발로 전출자가 늘어나면서 본당의 신자수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에 본당에서는 1996년 5월 본당 소식지인 《하늘 소금》을 창간하여 신자들의 공동체 의식을 높임과 동시에, 6월에는 가두 선교를 통해 직접적인 전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소공동체의 활성화 및 피정 · 성지 순례 · 가족 캠프 등의 행사를 실시하여 본당의 내실화를 다져 나갔다.
박성태 신부에 이어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석판홍 신부는 부임 직후인 1998년 4월부터 수녀원과 성당의 보수 공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하였고, 이듬해 4월에는 주님 유언 전하기 운동' 발대식 및 70일 연결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11대 주임 도정호 신부는 신앙 생활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가운데, 2000년 6월에 온 가족 성서 쓰기' 를 시작하였다. 12대 주임 박근범 신부는 2001년 3월 월요일 평일 미사를 부활시키는 한편, 2002년을 '공동체 의식 함양의 해' 로 정하고 '나부터 변화되는 삶' · '가정 성화' · 반 공동체의 활성화' 를 위해 전 신자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
※ 참고문헌  천주교 부산교구 염포 성당, 《염포 성당 이십년》, 200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