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靈感

〔그〕Θεόπνευστος · 〔라〕inspiratio · 〔영〕inspi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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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받아 복음서를 집필한 성 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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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받아 복음서를 집필한 성 루가.

성서의 신적인 원천.
성서가 하느님 또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책이라는 주장은 교부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헌장>(Dei Verbum)에서도 이를 분명히 하였다. "성서에 담겨 제시되는 하느님의 계시 진리들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인 성교회는 사도적 신앙에 따라 신약뿐 아니라 구약의 모든 책들을 그 모든 부분을 포함하여 거룩한 것으로 또 정경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이 책들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어(요한 20, 31 ; 2디모 3,16 ; 2베드 1, 19-21 ; 3, 15-16) 하느님을 그 저자로 모시고 있고, 또한 그러한 것으로 교회에 전승되었다"(11항). 그런데 성령의 영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영감이 성서 본문에 적용된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것인지, 성서는 영감받은 개인들의 책인지 아니면 공동체의 책인지, 성서가 영감받은 책이라는 말은 거기에 오류가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성서도 다른 책들처럼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인지 등 매우 복잡한 문제들이 영감과 연결되어 있다.
[성서에서의 영감] 신약성서에는 '영감' 에 관해 직접 언급되어 있다. "성경은 모두 하느님의 영감에 의거한 것이며 가르치고 논박하고 바로잡고 그리고 의로움을 위해 교육하는 데 유익합니다" (2디모 3, 16). 여기서 영감은 성서 본문에 적용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반해 영감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묘사된 언급도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알아두시오. 성경의 어떤 예언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예언은 인간의 뜻에서 나온 것이 없고 오히려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느님으로부터 (넘겨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2베드 1, 20-21). 성령의 영감은 성서 본문에 적용되는가, 아니면 성서에 나오는 등장 인물이나 성서 저자에게 적용되는가? 답은 둘 다이다. 영감을 받은 인물이나 저자가 전한 말은 그것이 기록으로 남겨질 때 영감을 받은 본문이 되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본 것처럼 성서 자체도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령은 하느님 아버지의 영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서의 말씀들은 신 · 구약 모두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격을 갖는다. "성서를 모르는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라는 예로니모(341?~420) 성인의 말씀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구 분] 성서의 말씀들은 어느 정도로 성령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자구적 영감' (字句的 靈感, verbal inspiration)을 주장하는 이들은 하느님이 당신의 말씀을 전달하시는 도구로 사람들을 이용하실 때, 그들의 정신과 마음을 끌어들이지 않으신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성령이 다윗의 입을 빌려 예언한" (사도 1, 16 ; 4. 25) 말 즉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도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시편 110, 1 : 마르 12, 36)는 하느님께서 다윗의 입을 빌려 직접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예언서들에 자주 나오는 표현인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는 "주님의 말씀이다"는 하느님이 예언자들에게 직접 전달하게 하신 당신의 말씀으로, 이를 글로 적어 놓은 성서 본문은 일종의 받아쓰기를 한 것으로 여긴다. 말하자면 하느님이 성서 저자들의 혀와 펜만을 빌려 그들로 하여금 기계적으로 당신의 말씀을 받아 적게 하였다는 것이다. 초기 프로테스탄트의 정통 교리는 성서의 모든 문자, 심지어 구두점 하나까지도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에도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일부 보수적 교단에서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주장은 역사 비평 방법론, 특히 본문 비평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자구적 영감에 대한 반발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에 성서를 다른 책들과 같이 다루면서 생겨났다. 역사 비평을 성서에 적용하면서 성서의 세계와 당대의 주변 문화와의 비교, 고대 근동의 문헌들을 성서 저자가 수집하고 편집한 과정 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영감 못지않게 저자의 인간적 노고와 편집 활동이 강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서는 이제 더 이상 영감받은 개인들의 작품으로 머물지 않고 다양한 전통들의 혼합과 사료 이용과 복잡한 편집 과정을 거쳐 탄생된 공동체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19세기 가톨릭 교회의 일부 성서학계에서는 이런 사조를 받아들여 자구적 영감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내용적 영감' (content inspiration) 또는 '실재적 영감' (real inspiration)을 주장하였다. 내용적 영감을 주장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영감은 성서 저자들의 마음과 정신에만 관여하였을 뿐 성서의 말마디 하나하나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성령의 영감이란 인간 저자들의 마음과 정신이 반영된 성서의 메시지와 내용에만 국한되고, 메시지와 내용을 둘러싼 작품의 구조와 표현과 낱말들에까지 확대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견해이다. 이와 비슷하게 '인격적 영감' (personal inspiration)론이 제기되었다. 인격적 영감론이란 영감은 저자의 저술 의도에만 작용하였을 뿐이고, 이 의도를 전달하는 언어적 표현은 온전히인간 저자의 책임이라는 주장이다.
자구적 영감설은 결국 하느님이 성서 저자들을 시켜 당신의 말씀을 받아 적게 하셨다는 받아쓰기 이론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내용적 영감설은 하느님이 당신의뜻을 이해하고 거기에 완전히 동의한 저자들을 선택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말씀을 쓰게 하셨다는 저자의 선택 이론으로 발전하였다. 받아쓰기 이론과 저자의 선택 이론 가운데 어느 쪽을 취할 것인가? 이 두 극단을 피하면서 중도적인 입장을 표명한 라그랑즈(M.J. Lagrange, 1855~1938) 신부의 주장에 따르면, 성서의 궁극적인 저자는 하느님이지만 그분은 당신의 대리인들인 성서 저자들의 인간적 지성을 존중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그들을 통하여 전달하시려는 진리들을 그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성서학자들은 다소 모호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중도 입장에 선 라그랑즈 신부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성서와 영감] 성령의 영감과 관련하여 1950~1960년대에 유행한 이론은, 성서의 초자연적인 요소는 성서 본문의 말마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증언하는 사건들 안에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이론에서 강조된 것은 공동체의 체험과 믿음이었다. 성서는 하느님과 친교를 맺은, 그러면서도 인간 정신의 정상적인 활동을 통하여 자체의 종교적 사상을 형성한 인간 공동체(이스라엘과 초대 교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공동체 이론은 결국 개인의 영감을 중요시하는 자구적 영감설과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되어있다. 자구적 영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동체 이론에 맞서 성서에 표현된 참 진리의 주체와 객체가 누구이냐를 따진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참 진리의 계시자는 하느님이시고 진리가 선포되는 대상은 믿음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곧 참 진리는 공동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들과 사도들처럼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권위 있는 인물들을 통하여 공동체를 향하여 선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믿음의 인물들,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사건들은 서로 완전히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개인과 공동체의 운명은 서로 직결되어 있고,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은 모두 공동체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개인의 삶에 대한 기록도, 공동체의 삶에 대한 기록도 모두 성령의 영감을 받은 저자들이 남겨 놓은 것이다. 동시에 성서 저자들은 모두 믿음의 공동체에 몸담고 있으면서 공동체가 겪는 사건들을 함께 겪었으므로 공동체가 성서를 낳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태어난 성서는 또 공동체의 삶에 방향을 제시한다.
[성령의 영감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성령의 영감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교황 비오 12세(1939~1958)가 1943년 9월 30일에 발표한 회칙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Divino Afflante Spiritu)에 잘 나와 있다. 이 회칙을 참조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계시 헌장> 3장에서 교회의 일관되고 전통적인 주장을 재천명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성서를 저술하는 일에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과 역량을 발휘하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친히 그들 안에서 그들을 통하여 활동하시고 그들이 참된 저자들이 되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모두를, 또한 원하시는 것만을 기록으로 전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영감받은 성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모두 성령께서 주장하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를 두고, 하느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이 거룩한 저서들 안에 담겨지기를 원하신 진리를 확고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그르침 없이 가르친다고 고백해야 한다"(11항)
한편, 하느님은 성서를 통하여 말씀하실 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성서를 해석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성서 저자들이 실제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본뜻이 무엇인지, 또 하느님이 그들의 언어를 통해서 도대체 무엇을 알리시려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여기에 <계시 헌장>은 몇 가지 해석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성서 저자들의 의도를 밝혀 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특별히 성서의 '문학 유형' 을 살펴보아야 한다. 문학 유형 안에는 성서 저자의 시대 상황과 문화적 배경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성서 본문의 뜻을 올바로 밝혀 내기 위해서는 교회 전체의 살아 있는 전통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셋째, 특정한 본문은 성서 전체의 내용과 통일성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서 해석 방법에 관한 모든 논의는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하느님의 명령과 이와 관련된 직무를 맡은 교회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성서 주석가들은 성서의 뜻을 더 깊이 깨닫고 설명하여, 그 연구 결과로써 교회의 판단이 성숙해지도록 도와야 한다.
회칙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에서 공의회가 제시한 이런 해석 원칙들과 관련된 대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영감을 받은 저자가 성서를쓸 때 성령의 살아 있는 합당한 도구가 되었다는 원칙을 먼저 밝혀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성서 저자가 하느님께서 부여하시는 동기에 이끌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사용했으며, 따라서 성서 저자가 쓴 책에서 누구나 저자 개개인의 성격, 곧 그의 개인적 특성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정확하게 간파한다. 그러므로 해석가는 거룩한 저자의 특성과 주변 환경, 그가 살던 시대, 그가 의존했던 기록이나 구전 사료, 그리고 그의 표현 양식들을 규정하기 위하여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최근의 연구에서 끌어낸 어떠한 학문적 결과도 외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33항).
1993년 4월 15일에 발표된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교회 안의 성서 해석>(L'Interpretatiton des Textes)도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회칙 <프로비덴티시무스 데우스> (Providentissimus Deus, 1893. 11. 18),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 및 <계시 헌장>과 같은 맥락에서 좀더 체계화된 해석 원칙을 제시하였다. 첫째, 성서 계시의 역사적 특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과 당신의 구원 계획에 관한 역사적 계시를 당대의 흔적이 찍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셨다. 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밝히기 위하여 필수적인 역사 비평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방법에 열려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들이 하느님 말씀을 해석하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성서 본문의 의미를 오늘을 위한 하느님 말씀으로 설명해야 한다. 셋째, 가능한한 성서 본문의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밝혀야 한다. 첫 계약의 책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에페 3, 4) 안에서 그 온전한 의미를 얻게 되고 펼치게 된다. "신약은 구약 안에 숨어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서 분명해진다" (아우구스티노). 넷째, 성서와 교회 사이에 맺어진 관계를 설명해야한다. 성서는 신앙 공동체들 안에서 생겨났다. 성서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나타내고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신앙을 표현한다. 또한 성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인 교회의건립과 성장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사용하시는 특권적 도구이다. 다섯째, 필연적으로 보편적 차원을 포함해야 한다. 이 차원은 다른 종교들과 현대 세계의 희망과 불안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성서의 절대적 무류성] 역사 비평을 성서에 적용하면서 성서의 절대적 무류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회칙 <프로비덴티시무스 데우스>와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에서는 자연 과학과 역사의 관점에서 성서의 무류성을 위협하는 구절들은 시간과 역사의 제한을 받는 표현들이라고 한계성을 인정하였다.<계시 헌장>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성서의 '절대적 무류성' 을 '인간 구원을 위한 성서의 진리' 로 바꾸었다.사실 성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달하려는 것이지 자연 과학의 진리나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서 자체가 이를 증언하고 있다. "성경은 모두 하느님의 영감에 의거한 것이며 가르치고 논박하고 바로잡고 그리고 의로움을 위해 교육하는 데 유익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람이 유능하고 온갖 선한 일을 위한 완전한 채비를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2디모 3, 16-17).
성서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믿음은 성서 자체와 교회의 오랜 전통 안에 확고히 자리잡혀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성령의 영감을 축소하려는 어떤 시도도 거부하였다. 성령의 영감이 성서 본문과 성서 저자, 개인과 공동체, 단어와 내용, 개인의 선택과 기록된 사건 어느쪽에 적용되는지 양자 택일하라는 견해는 모두 옳지 않다. 하느님의 영은 성서 저자들과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 다 같이 영감을 불어넣으신다. 믿음의 공동체가 사건을 겪어 나갈 때, 그리고 예언자와 임금과 사제와 같은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공동체를 이끌 때 깊이 개입하신다. 공동체의 오랜 신앙 체험을 기록으로 정리할 때에도 그 저자들은 성령의 감도(感導)를 받았다. 이렇게 성서의 본문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성령은 이 본문을 이해하는 독자나 공동체에도 영감을 주어 성서 본문의 깊은 뜻을 올바로 이해하게 해준다. 때로는 성서 저자가 의도한 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밝혀 주기도 하고, 본문의 메시지를 오늘 우리 시대에 연결시켜 주기도 한다. (→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 ; 라그랑즈, 마리 조제프 ; 성서)

※ 참고문헌  교황 비오 12세, 정태현 역,《성령의 영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2/ 교황청 성서위원회, 정태현 역, <교회 안의 성서 해석>,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창간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pp. 193~228/ P.G. Miiller, 김영남 역, <왜 오늘날 아직도 옛 성서를 읽는가?( Ⅱ ) : 성서의 영감>, 《성서 사도직 회보》 13호, 주교 회의성서위원회, pp. 32~36/ J. Goldingay, A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London, SCM, 1990, pp. 314~316/ J. Barton, Verbal Inspiration, A Dictionary ofBiblical Interpretation, London, SCM, 1990, pp. 719~7221 W. Klassen, Inspiration of the Bible,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Abingdon, 1999, pp. 543~545. 〔丁太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