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사용되는 경우에는 어떤 인물의 내면적인 비중 즉 그 사람의 실존과 행동의 묵직함을 의미하며, 하느님께 사용되는 경우에는 하느님 존재의 찬란한 드러남을 뜻하며 하느님의 권능과 거룩하심과 연결된 하느님의 속성.
[용 어] '영광' 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카봇'(┯〕)이다. 이 낱말은 '무겁다' 를 뜻하는 '카벳' (ㄱ그구)이라는 형용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사람이나 사물의 '중요함' 을 나타낸다. 사람의 경우에는 재물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인품이 훌륭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경우 '영광' 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자기 계시' 와 관련하여 사용된다.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당신을 드러내는 형태' , '하느님 자신' 또는 하느님의 '권능' , '거룩함'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칠십인역 성서는 '카봇' 을 '독사' (δόξα)로 옮겼는데, 고전 그리스어에서 '독사' 는 '생각하다' 를 의미하는 동사 '도케오' (δοκέω)에서 파생된 명사로 '생각' · '의견'을 뜻한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이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고 히브리어의 '카봇' 과 같이 영광을 뜻한다.
신약성서 역시 칠십인역 성서와 마찬가지로 영광의 의미로 '독사' 를 사용하였는데, 주로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인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그리고 독사' 의 동사형으로 '독사조' (δοξάζω)가 사용된다.
[구약성서] 인간의 영광 : 인간과 관련하여 '영광' 은 주로 부(富)나 재산(창세 31, 1 : 1열왕 3, 13 : 이사 61, 6: 시편 49, 17 : 잠언 3, 16 : 8, 18 : 22, 4)의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요셉과 같이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창세 45, 13), 욥과 같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이(욥기 29, 20), 아시리아나 모압과 같은 나라의 힘(이사 10, 18 : 16, 14 :21, 16), 이스라엘의 귀족층(이사 5, 13) 등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이스라엘의 영광' 은 임금(미가 1, 15) 이기도 하고, 계약의 궤(1사무 4, 22)이기도 하며 주님(시편 106, 20)이기도 하다. 임금(이사 14, 18 : 시편 21, 6 : 잠언 25, 2), 사제(출애 28, 2. 40), 현인(잠언 3, 35)에게는 영광이 어울리지만 미련한 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잠언 26, 1. 8). 결국 인간의 영광은 물질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위치에 있어 사람들에게 자랑이 되고 존경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영광 : 시나이 전승에 의하면 하느님의 영광은 주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자연 현상과 그분의 구원 행위 안에서 드러난다. 하느님의 영광은 산을 뒤덮고 있는 구름 속에 있으며(출애 24, 16) 광야의 구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난다(출애 16, 7. 10). 또한 만남의 장막을 덮고 있는 구름 안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차있다(출애 40, 34-35 : 레위 9, 6. 23 ; 민수 14, 10 : 16, 19 ; 솔로몬의 성전 : 1열왕 8, 11 참조). 하느님의 영광은 산봉우리를 태우는 불로도 나타난다(출애 24, 17 ; 신명 4, 11-12).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는 이집트인들을 쳐부수어 하느님은 당신의 영광을, 곧 당신께서 주님이심을 드러낸다(출애 14, 17-18).
예언자들 가운데 이사야와 에제키엘은 특이하게 하느님의 영광을 체험한다. 이사야서에서는 시나이 전승에서와 같이 하느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 위에 머무르는 구름 · 연기 · 불길 등으로 묘사된다(이사 4, 5). 이사야는 연기가 자욱한 성전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는데, 여기서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당신을 드러낸다(이사 6,3-4). 메시아가 머무르는 곳이 하느님의 영광이 될 것이며(이사 11, 10), 유배 후 하느님이 시온으로 돌아올 때에그분의 영광이 찬란히 드러나게 된다(이사 24, 23 ; 35,2). 제2 이사야서와 제3 이사야서 역시 같은 표상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묘사한다(이사 40, 5 : 59, 19 ; 60, 1. 2.13 ; 62, 2 ; 66, 11. 18. 19). 에제키엘은 환시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이 폭풍 · 불 · 광채 · 무지개 등으로 나타남을 본다(에제 1, 4. 27-28). 또한 하느님의 영광은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형상을 지녔다(에제 1, 26-28). 이 표상들로 에제키엘은 하느님이 인간과 가까이 계신 분인 동시에 인간과는 다른 초월적인 분임을 강조한다. 하느님의 영광은 땅 위에서(에제 3, 12. 23 8, 4), 그리고 특히 성전에서 나타난다(에제 9, 3 : 10, 18-19 : 11, 23). 하느님의 영광은 성전에서 나가 동산 위에 자리잡기도 하고(에제 11, 23)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하느님의 영광과 성전의 밀접한 관계에서 사제인 에제키엘의 전례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은 그분의 권능과 거룩함을 드러낸다(에제 28, 22).
공적인 예배에서 불려지던 시편들 역시 하느님의 영광을 자주 노래한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시편 19, 2), 하느님은 천둥 소리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낸다(시편 29, 3). 찬미가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은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고 고백함을 뜻한다(시편 29, 1.9 ; 30, 13 ; 66, 2 : 96, 7 : 115, 1). 주님의 영광, 곧 그분의 신성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분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다(시편 79, 9). 따라서 하느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은 그분의 권능, 그분의 구원 행위를 증거한다는 것을 뜻한다(시편 63, 3). 마침내 모든 민족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시편 97, 6), 그분의 영광은 영원히 머무를 것이다(시편 104, 31). 시편 역시 성전이 하느님의 영광이 머무르는 곳, 곧 하느님이 현존하는 장소임을 거듭 강조한다(시편 26, 8 : 29, 9 : 63, 3).
시나이 전승 · 이사야서 · 에제키엘서, 그리고 시편에서 드러나듯이 '하느님의 영광' 은 주로 구름 · 연기 · 불 · 광채와 같은 자연 현상으로 나타나며 성전에 머무른다. 이 사실은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당신의 '초월적 신성' 을 드러냄과 동시에 '사람들 가운데 현존하는 분' 이심을 계시하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영광이 그분의 현존을 드러낸다는 사실에서 하느님의 영광은 '하느님 자신' 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출애33, 22 : 레위 9, 4. 6. 23 : 시편 113, 4).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드러냄으로써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계시하고, 사람들은 자연 현상과 구원 행위, 성전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봄으로써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고 믿음을 고백하며 그분께 찬양을 드리게 된다. 사람들의 이러한 고백과 찬양의 행위가 바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신약성서] 공관 복음서와 사도 행전 : 공관 복음서에서 '영광' 은 예수가 말하는 '솔로몬의 영광' (마태 6, 29 ; 루가 12, 27) 또는 사탄이 예수를 유혹하며 말하는 '세상의 영광' (마태 4, 8 : 루가 4, 6)의 경우처럼 인간적 차원에서 사용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 예수 탄생 사화에서 하느님은 구약성서에서처럼 빛 가운데서 당신의 현존과 구원을 드러낸다(루가 2, 9). 그리고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와 천상의 군대들이 목자들에게 하느님의 현존과 구원 행위를 '하느님의 영광' 이라는 말로 선포한다(루가 2, 13-14). 공관 복음서에서 예수의 영광은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다.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와 영광을 공유하는데, 이 영광은 그분께서 심판자로 다시 오실 재림 때에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마태 16, 27 : 24, 30 : 25, 31 : 마르 8, 38 ; 13, 26 ; 루가 21, 27). 세상 종말 때에 예수는 하느님과 함께 영광의 옥좌에 앉아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마태19, 28). 그렇지만 예수의 영광은 이미 변모 사건(루가9, 31-32)과 수난과 죽음(루가 24, 26)에서 앞당겨 드러나기도 한다. 사도 행전에서 스테파노는 죽기 전에 하느님과 부활하신 예수가 하느님의 영광을 공유하고 있음을 증언한다(사도 7, 55).
요한 복음서 : 요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서와는 달리 지상에 있는 예수 안에서 이미 하느님과 예수 자신의 영광이 드러남을 강조한다. 예수의 영광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수난과 십자가 죽음에서이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부활과 영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때를 예수는 '당신의 때' 라고 한다(요한 2, 4). 예수의 때는 하느님의 현존과 구원이 드러나는 때이며,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이 분명히 계시되는 영광의 때이다(요한 17, 24). 예수는 '당신의 때' 이전에 이미 가르침과 표징(기적)들을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낸다. 하지만 여기에는 믿음이 요구된다. 예수가 행하는 표징은 믿음을 요구하며, 이 믿음으로 제자들은 그분의 영광 곧 그분의 실재를 보게 된다(요한 2. 11 : 11, 4. 40). 하느님의 영광은 영원으로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말씀' 안에서 드러난다(요한 1, 1). 말씀을 통하여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되는 것이다(요한 1, 3-4). 사람이 되신 말씀 안에서 사람들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요한 1, 14-15). 예수는 당신의 영광을 스스로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가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 준다(요한 8, 50. 54 : 13, 32 ; 17, 5). 또한 예수는 아버지께 대한 순종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들이시는 수난과 죽음 안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한다(요한 13, 31-32 : 14, 13 : 17, 4). 진리의 성령은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 예수를 영광스럽게 한다(요한 16, 14). 제자들은 예수를 충실히 따르고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써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된다(요한 15, 8).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제자답게 그분의 가르침과 모범대로 살고 사람들에게 예수를 알릴 때에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바오로 서간 : 사도 바오로에게 '하느님의 영광' 은 그분의 신성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영광이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룬 구원 계획의 동기가 된다(에페 1, 12 : 필립 1, 11 : 2, 11). 그래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 을 위해서, 곧 그분의 신성이 사람들에게 드러나도록 하라고 권고한다(1고린 10, 31). 바오로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하여 '영광의 주님' 이 되었고(1고린2. 8) 영광 속에 승천하였다(1디모 3, 16).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의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로마 5, 2).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이며(로마 8, 17-18), 이 영광으로 인하여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로마 8, 21). 그러나 죄인은 하느님의 영광을 잃게 된다. 하느님은 죄를 짓는 사람 안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로마 3, 23). 새로운 계약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받아 변화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비추게 된다. 그들은 성령으로 인하여 변화된 자신들의 모습안에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2고린 3, 6-18).
그 외의 신약성서 : 히브리서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기 때문에(1,3) 마땅히 찬양의 대상이 되었으며(3, 3) 죽음의 고통을통하여 영광과 영예의 관을 받아 썼다(2, 7. 9)고 선언한다. 히브리서의 저자에게는 예수가 대사제의 직무를 수행하고 당신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바침으로써 영광을 받게 된 것이다.
베드로의 편지들은 예수가 변모 때(2베드 1, 17) 그리고 수난과 죽임을 당하고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영광을 받았다고 단언한다(1베드 1, 11. 21).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충실히 실천한 예수의 수난과 죽음으로 그가 당신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이심을 밝혀 보이셨다. 동시에 하느님은 예수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1베드 4, 11).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그가 다시 오실 때에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1베드 4, 13 ; 5, 1).
묵시록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구약성서에서처럼 성전을 가득 채우는 연기(15, 18)로, 하늘에서 내려와 온 땅을 비추며(18, 1), 새 예루살렘을 비추는 광채(21, 11. 23)로 묘사된다. 하느님은 성전에서, 온 땅 위에서, 그리고 종말 때에 완성되는 새 도성에서 현존하며 세상의 역사를 당신의 섭리로 이끄는 분인 것이다. 교회는 전례 안에서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1, 6 ;5, 12-13). 하느님은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에게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다(네 생물 4, 9 ; 24명의 원로 4, 11 ; 천사들 7. 12 : 하늘의 군중 19, 1. 7).
신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영광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다. 예수의 가르침과 그가 행한 기적들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특히 하느님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그가 영광의 주님이심을 보여 준다. 곧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계시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 참고문헌 S. Aalen, The New Interpreter's Dictionary ofNew Testament, vol. 2, pp. 44~481 C.J. Collins, כבר>, The New Interpreter's Dictonary of Old Testament, vol. 2, pp. 577~5871 G.H. Davies, pp.401~403/ W. Eichrodt,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Bd. Ⅲ , pp. 11~15/F. Hesse . E. Fascher, Herrlichkeit Gottes, (RGG), pp. 273~2751 P. van Imschoot, Herrlichkeit, Bibellexikon, pp. 724~727/ G. Kitttel G. von Rad, S05a, 《TDNT》, pp. 232~253/ J.L. McKenzie, (DB), pp. 313~314/ R. Schnackenburg, Doxa, 《LThK》 3, PP. 532~533/ C. Spicq, 805a , Theological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pp. 362~379/ M. Weinfeld, כבר 《TWAT) IV , pp. 23~401 -, Deuteronomy and the Deuteronomic School, Oxford, 1972, pp. 200~209/ C. Westermann, כבר, 《THAT》 I , pp. 794~812/ -, Die Herrlichkeit Gottes in der Priesterschrift, Forschung am Alten Testament(TB 55), PP. 115~137/ W. Zimmerli, Grundriss der Alttestamentlichen Theologie, Stuttgart, 1978, Pp. 32~33, 67~68. 〔鄭泳漢〕
영광
榮光
〔히〕כָּבוֹד · 〔그〕δόξα · 〔라〕gloria · 〔영〕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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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하느님.
